국수 한 그릇 앞에 놓고
"아버지! 저 왔어요"
"왔냐!"
가방을 내려 놓습니다.
"에고, 다리야!"
"밥은 먹었냐?"
"아뇨!'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국수 먹을래?"
"국수! 좋지요"
국수를 삶던 아버지
듬뿍 듬뿍 국수가락 담으십니다.
큰 아들 올 것을 아신것처럼.
"먹자!"
상 다리 휘어지게 국수그릇 담깁니다.
상 위에 국수그릇 달랑 두 그릇.
한쪽 귀퉁이 간장 종지 하나!
"싱거우면 간장 넣어라"
"예!"
후루룩 후루룩
"아버지!"
"왜!'
"저, 내일 선 봐요."
"선? 정말?"
"예"
"누가 해 주는건데"
"막내 고모부께서 해 주시는 거에요. 회사 직원 동생이라고..."
"뭐하는 사람인데?"
"소방서에서 일한데요?"
"소방관?"
아버지 두 눈이 아들 눈만 해집니다.
"아니요, 소방서에서 컴퓨터 일 한데요. 공무원이래요"
"나이는!"
"서른 하나래요"
"그럼 모아 놓은 돈 좀 있겠네"
어째 돈 얘기 안 하신다 했습니다.
"돈이 중요한가요? 사람이 중요하지."
"왠만하면 올해 안에 장가가라"
"올해요?"
국수가락 입에 물고 쳐다 봅니다.
"그래. 올해!"
"아버지, 올해 한 달밖에 안 남았어요"
"일주일만에도 결혼하는 사람 있더라."
"에이, 그래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하면 안 되요"
"그럼. 내년 봄까지 기다리마"
"내년 봄이요?"
"그래"
"아버지, 내일 처음 만나는 거에요. 얼굴도 본 적 없어요"
"그러니까 왠만하면 결혼하라고"
젓가락질 한 번에
여러가락 말이 오고 갑니다.
"여자는 착실하고 알뜰한게 최고다.
넘 예뻐도 안 되고
넘 잘 살아도 안 되고
넘 없어도 안 된다"
"그게 더 까다롭네요"
아버지 젓가락 치켜 드시며 말씀하십니다.
"이놈아! 넌 어째 여자 사귀는 능력도 없냐.
이 애비는 여자 만났다 하면 삶아 먹는다.
너무 정 붙을까 해서 조심한다.
정 붙으면 내 호주머니 다 털리니까!"
"삶아 먹어요?"
아버지 국수 삶으시던 생각 하시나 봅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
"종로요"
"몇시에?"
"세시요"
"옷 잘 입고 가라. 없어 보이면 안 된다."
"양복 맡겨 놨어요."
아버지 국수그릇 드십니다.
큰 아들 덩달아 국수그릇 듭니다.
후루룩 후루룩 마지막 국물을 마십니다.
"아버지 걱정말고 니네 둘이 잘 살면 된다.
오순도순 둘이 벌어 그렇게 알뜰하게 살면 된다"
"아버지, 저 내일 처음 만난다니까요?"
"처음이 중요한거다. 이놈아!"
상을 내 갑니다.
"설겆이 하지마라. 아버지가 아침에 할께"
"제가 할께요. 오늘은 안 바빠요"
그릇이 수북합니다.
어제는 무엇을 드셨는지 그릇이 말해 줍니다.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합니다.
"아버지, 전대는 하고 다니세요?"
"뭐?"
"전대요"
일하시다 핸드폰 잃어 버리시길 두 번!
일하시다 지갑 잃어 버리시길 세 번!
보다 못해 사다드린 가죽 전대.
"첫날부터 자끄가 고장나서 놔 뒀다"
"에이- 그거 비싼건데..."
"비싸고 뭐고 불편해서 안 할란다. 너나 해라"
"죽염은 드세요?"
"뭐?"
"소금이요. 소금. 감기 때문에 드린 소금이요"
"거 안 맞아서 안 쓴다. 너나 써라"
"에이- 거 좋은건데..."
이상합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 사다 드리는 건
허구헌날 안 맞으십니다.
그래도 아버지, 벙글벙글 연신 웃으십니다.
"설거지 다 했어요"
"그만 가라. 푹 쉬고 내일 잘 해라"
"예, 그럼 쉬세요. 갔다와서 전화 드릴께요"
아버지 입에서 파이팅 소리가 나올 것만 같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여동생에게 전화를 겁니다.
"잘 지냈냐?"
"응, 오빠"
"목소리가 왜 그러냐?"
"김장해서 피곤해서 그래"
"아버지 뵙고 집에 가는 길이다"
"밥은 먹었어?"
"아버지께서 국수 말아 주셨다. 아버지 이제는 국수장사 해도 되시겠더라."
"오빠는 아빠 사랑 많이 받아 좋겠다."
"그래. 어렸을 때 못 받았던 사랑 보너스로 받고 있다"
오늘 저녁은
아버지께서 말아주신 국수를 먹었습니다.
밤새동안 꺼억꺼억
배 불러 트름할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 담아주신 사랑으로
밤새동안 히죽이죽 트름할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 사랑
한올 한올 국수가락 같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아버지 말씀대로 내일은 잘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