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기차 여행

달봉샘 2010. 5. 4. 21:46

기차에 대한 첫번째 기억...

어머니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옷을 입으라 하십니다.

눈 비빌 시간도 없이 허겁지겁 집을 나섭니다.

아버지 분주히 택시를 잡으시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부산역입니다.

연신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니

달도 잠든 깊은 밤입니다.

기차를 탑니다.

졸린 눈이 활짝 열립니다..

"기차를 타다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기차를 타는것이 마냥 좋습니다..

오래 오래 탔으면..

많이 많이 탔으면..

오래 오래 탔습니다.

많이 많이 탔습니다.

기차 유리는 버스보다 휠씬 컸습니다.

기차 의자는 버스 의자보다 훨씬 푹신했습니다.

검은색 유리창 너머

또 다른 기차가 보입니다.

어머니 근심어린 얼굴

아버지 한숨섞인 얼굴

동생들 새근 잠든 얼굴이 보입니다.

두 손으로 빛을 막고

두 눈으로 바깥세상을 봅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타 보는 기차입니다.

기차에서 보는 세상은 모두가 검은색입니다.

나중에 나중에 한참이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려워진 살림으로 도망열차를 타는 길이었습니다.

검은색 세상으로 달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기차를 탑니다..

"대전행 기차표 한 장이요"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환한 대낮에 하얀 창을 바라보며

덜컹거리는 기차에 마음을 담습니다.

의자가 뒤로 재껴집니다.

다리 발판이 올라옵니다.

음료수 판이 따로 있고

기차 천정에서는 텔레비전이 나옵니다.

콩닥 콩닥 뛰는 가슴으로

가만히 등을 기댑니다.

징-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징- 자동으로 문이 닫힙니다.

재미있는 여행입니다.

옆자리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반가움에 눈 인사를 하지만

발바닥만 연신 바라보십니다.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계란을 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삶은 계란..

기차에서 먹는 삶은 계란은

제사를 마치고 먹는 계란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왜 그리도 계란을 좋아했던지

계란 한 줄을 다 먹고도

연신 손가락을 빨던 기억이 있습니다.

덜컹 덜컹

기차가 흔들립니다.

흔들 흔들

흔들거리는 모자가 보입니다.

바리깡에 까칠머리

작은 모자 눌러쓰고

6개월만에 집에 갈 때도 기차를 탔습니다.

깨끗한 군복에

일등병 노란 마크를 달고

어머니 품에 안길 마음으로

덜컹거리던 기차였습니다.

삼킬듯이 달려오는 산 들과

허리 꺽인 나무들이 지나가면

'쿵'하고 어둠으로 부딪히고

'쾅'하고 빚으로 달립니다.

터널속에 들어가면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던 기억..

'이번 터널은 스물아홉이야'

언제 어디서 시작된 놀이인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쿵'하고 들어가면

절로 세어지는 숫자놀음입니다.

'꽝'하고 나오면

절로 세어지는 시간놀음입니다.

기차를 탔습니다.

오랜 시간 잊어졌던

시간들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