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꼬마 토끼에게 보내는 기도

달봉샘 2010. 5. 3. 22:37

추운 계절이 왔어요..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뒤뚱 뒤뚱

눈사람이 되어서 외투에 둘러 싸여 나타났어요..

조그마한 옷장이 커다란 옷을 자꾸만 토해 내요..

차곡 차곡..

예쁘게 접어 보지만 작은 옷장은 숨이 막힌 듯

자꾸만 옷을 토해 내기만 합니다..

점심시간이었어요..

생명반 언니들이 숨이 턱에 걸려 달려 왔어요..

"선생님.. 꼬마 토끼 지지가 토끼장에 발이 끼었는데요 발이 빠지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국을 떠 주다 말고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발이 끼인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죽어 있었던 것이에요..

아침까지만 해도, 생명반 선생님이 열심히 토끼장을 청소해 주실때만 해도

분명히 살아 있었는데..

"선생님.. 왜 발이 안 빠지는 거에요?"

"으..응.. 토끼가 죽었구나.."

"죽었어요?"

점심을 먹고 질경이반 녀석들 몰래

민들레반 친구들과 함께

난로가에 고구마 구워 먹듯이

도란 도란 둘러 앉았습니다...

"꼬마 토끼 꼬순이가 죽어서.. 오늘 꼬순이를 묻어 주러 가야 하겠구나.."

"꼬순이가 죽었어요?"

어른들은 지지라고 부르는데 일곱살 친구들은 꼬순이라고 부른답니다..

전에 있었던 토끼, 꼬마를 생각하고 지어 붙인 이름인데..

꼬마처럼 다시 죽다니..

선생님은 삽을 들고 아이들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따라 나섭니다..

커다란 십자가가 보이는 강아지 '바다'의 무덤 밑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 와.. 구멍 굉장히 크다"

"구멍이 커야 해.. 그래야 ... 편하게 누울 수 있거든.."

땅이 딱딱해서 잘 파지지 않는데 아이들은 한삽씩 뜰 때마다

쫑알 쫑알 한 말씩을 더해 줍니다..

볍씨반 언니들은 언덕베기 놀이집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커다란 바구니 하나를 주웠습니다..

볍씨반 언니인 성은이꺼라고 합니다..

"그거요.. 우리 아빠가 엄마 축하해 주려고 장미꽃 100송이 담아서 온 바구니인데요..

꽃은 시들어 다 죽어서 바구니만 남았어요"

"이거..선생님 써도 되겠니? 땅에 묻을건데.. 꼬마 토끼 넣을건데.."

"네.. 그러세요.."

꼬마토끼를 토끼장에서 꺼냅니다.. 온 몸이 벌써 딱딱하게 굳어 있습니다..

" 야.. 꼬마 토끼가 나온다.. 선생님 만져 봐도 되요?"

"아니.. 땅에 묻어야 하니까 만지지 마세요"

전에 나들이 갔을 때 질경이반 녀석들이 죽은 쥐를 들고서

나들이 선생님에게 쥐 구경 시켜 준다고 들고 와서

나들이 엄마 선생님께서 화들짝 놀란적이 있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꼬마 토끼를 바구니에 담고 아이들이 마른 건초를 덮어 줍니다..

"따뜻하게 덮어"

"이제 땅 속에 들어가도 춥지 않겠네.."

" 땅이 추워?"

"그럼.. 밖이 이렇게 추운데 땅은 얼마나 춥겠어?"

"아니에요.. 땅 속은 따뜻해요.. 그래서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겨울잠을 자잖아?"

"맞아.. 그런데 왜 풀은 또 덮어 줘요?"

"으..응.. 그래도 푹신하게 이불을 덮은것처럼 누워 있으라고..

그래야 따뜻한 마음에 더 따뜻하고 좋은 흙으로 다시 태어나지.."

마른 건초를 덮어 주고 땅에다 조심스럽게 놓아 줍니다..

선생님은 흙을 덮고 아이들은 무덤가를 장식할 것들을 찾아 나섭니다..

재훈이가 나무 두 개를 들고 와서

" 선생님.. 이걸로 '바다'처럼 십자가 만들어 주세요"

"그래.. 그러자꾸나"

재훈이가 가져 온 나무로 십자가도 만들고..

아이들이 예쁘게 장식한다고 어디서 자꾸 솜뭉치만 들고 옵니다..

"그런것은 바람에 다 날아가서 나중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쓰레기가 되니까

날아 가지 않는것으로 구해 오세요.. 꼬마 토끼 무덤을 잘 지켜줄 수 있는것으로.."

둥그렇게 무덤가가 만들어 지고 아이들이 가지고 온 예쁜 돌이랑 꽃잎이랑

무덤에 곱게 수 놓여 집니다..

서영이는 나뭇잎을 주워다가 무덤가에 예쁘게 꽂아 둡니다.

"이렇게 하면 꼬마 토끼도 좋아 할꺼야.. 그렇죠.. 선생님.."

"그래.. 좋아 할꺼야... "

예쁜 무덤가에 동그랗게 서서 작은 손들을 모아 곱게 기도를 합니다..

죽어서 슬프지만 그래도 보다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거야..

사람도 동물도 모두들 마찬가지지..

그래서 자연은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기 때문이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들 죽으면 우리를 지켜주는 커다란 땅이 되는 것이란다..

"눈물이 날려고 해요"

지훈이가 코를 씽긋거리며 말합니다..

"선생님.. 토끼가 죽어서 슬프죠? 정말로 슬픈거죠? 죽는것은 슬픈것이죠?"

성수가 눈을 반짝이며 얘기합니다..

"그래.. 죽는것은 슬픈것이에요.. 하지만 슬픔만 있는것은 아니지..

슬픔이 다른 커다란 기쁨이 되기도 해..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들 다 죽게되지..

그래도 우리 꼬마 토끼는 참 좋겠다.. 이렇게 민들레반 친구들이 무덤가를 지켜줘서.."

"내일부터 ymca오면 언제나 인사하던 것처럼 꼬마토끼에게도 인사하세요.. 알았죠?"

"녜.. 선생님"

"자..그럼.. 이제 들어 가자..."

손을 씻고 들어서는 길에 질경이반 녀석들이 묻습니다..

"선생님 어디갔다 왔어요?"

"토끼 묻어 주고 왔다..이놈아.."

"왜 우리랑 안 가고 민들레반 친구들이랑 갔어요?"

"너희들은 장난만 하니까.."

" 에이.. 정말요? 피... 그럼.. 내일 무덤이 어딘지 가르쳐 줘요.."

"민들레반 친구들에게 물어 봐라.. 친구들이 가르쳐 줄꺼야.."

"알았어요.."

추운 계절입니다..

다시 외롭게 남은 남자 토끼.. 용기, 씩씩이...

거 참 이상하죠?

ymca 회관에는 왜 남자들 밖에 안 살죠?

질경이반 선생님도 남자고..

용기도 남자고.. 씩씩이도 남자고..

하늘이도 남자 강아지이고..

오늘도 남자들만 지키는 ymca 회관은 하늘에서 내려 온

커다란 밤의 이불을 덮고 조용히 잠들어 가고 있답니다..

꼬마 토끼 꼬순이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친구들이 만들어 준 예쁜 무덤을 보고 행복하게 잠이 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