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 상담
" 오늘부터 꼬맹이 상담을 시작합니다~ "
1학기 때 몇 번 한 적이 있는 터라
별 동요가 없는 아이들.
하지만 그 중에서 꼭 이런 녀석 있습니다.
" 나 꼬맹이 아닌데요! "
" 알았어요. 꼬맹씨~ "
" 아니라니까요!!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온풍기를 틀어
실내공기는 따뜻한데
발바닥이 차갑습니다.
교실 바닥에 이불 한 장을 펼칩니다.
한 녀석을 부릅니다.
" 금방 끝나요? "
" 왜? "
" 놀아야 되니까요 "
" 이야기 하기 싫어요? "
" 싫은 건 아닌데 놀고 싶어서요. "
" 그래. 알았어요. 자~ 이거 받으세요 "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 하나를 건넵니다.
" 이게 뭐에요? "
" 뜨거운 물이에요. "
" 뜨거운 물을 왜 줘요? "
" 뜨거운 물 다 마실 때까지만 할 꺼에요."
" 이거 다 마시면 끝나요? "
" 네~ 그런데, 급하게 마시면 혓바닥 데이는 거 알죠? "
" 네~ "
" 후후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셔요. 천천히 이야기 할 꺼니까. "
급한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뜨거운 물은 벌컥벌컥 마실 수 없으니까.
감기에 걸린 녀석들이 많아서 입니다.
따뜻한 물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테니까.
" 아까 동생 왜 발로 찼어요? "
" 동생이요? "
다섯 살 녀석이
복도에서 플라스틱 블럭을 가지고
자동차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는 녀석 곁으로
바로 이 녀석이 지나가며 발로 툭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목청 큰 녀석이
더욱 큰 소리로 웁니다.
" 그냥이요! "
" 그냥? "
" 그냥이 무슨 말이에요? "
" 몰라요 "
아이들이 얘기 하기 싫을 때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그냥... 몰라요...
다시 묻습니다.
" 다시 물을께요. 아까 동생 왜 발로 찼어요? 그냥 말고 다른 말로 해 봐요. "
" 음.... 차면 어떻게 되나 해서요 "
" 차면 어떻게 되는지 몰랐어요? "
" 알았어요. "
" 그럼 알면서도 찬 거에요? "
" 네~ "
" 동생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찬거라구요? "
" 네~ "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 그건 나쁜 마음이에요. 나쁜 마음인건 알아요? "
" 네~ "
" 알면서도 왜 하죠? "
" 몰라요 "
말똥말똥 쳐다보는 눈.
오똑한 코, 작은 입술.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말들이
가끔씩 툭 튀어 나오는 녀석.
" 내일도 얘기해도 되죠? "
" 선생님. 그런데요? 왜 숨쉬기는 안 해요? "
" 응~ 숨쉬기는 네게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내일도 오늘처럼 뜨거운 물 천천히 마시면서 얘기해요. 알았죠? "
" 네~ "
" 좋아~ 그럼, 내일 또 얘기해요. "
" 놀아도 되요? "
" 네~ "
뛰어가는 녀석을 봅니다.
밝고 건강해 보이는 녀석인데
무엇인가 단단히 감추고 있는 녀석입니다.
어디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아 차리지 못하는 선생님이 못내 미안하기만 합니다.
컵을 씻고
뜨거운 물을 다시 담습니다.
새로운 물처럼 새로운 녀석이 옵니다.
" 누구랑 친해요? "
" 다 친해요. 근데 이거 다 마셔야 되요? "
" 네~ 몸이 따뜻해 질 꺼에요. "
" 아이~ 더운데... "
" 안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
" 한 명 있는데, 걔 랑은 조금만 친해요. "
" 응~ 그렇구나. "
" 아빠하고도 친해요? "
" 아빠가 화 났을 때는 안 친해요. "
" 어떨 때 아빠가 화를 내시는데요? "
" 아빠 말 안 들을 때요. "
" 어떤 말을 안 들었는데요? "
컵에 입을 대던 녀석이 눈만 껌벅이며 말합니다.
"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홀짝이며 물 마시는 녀석을 잠시 봅니다.
" 요즘에는 어른들에게 인사 잘 한다면서요? "
" 네~ "
"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인사를 잘 하게 됐어요? "
" 엄마가 화내서요. 무서워서요. 그래서 인사해요. "
" 인사 하기 싫어요? "
" 네~ "
" 왜요? "
" 그냥 하기 싫어요. "
" 그럼 인사는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
"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하고 싶고 어떤 때는 하기 싫은데 엄마는 계속 계속 하라해서 요즘은 계속해요. 안 하면 엄마가 화 내요. "
" 음..그렇구나 "
" 선생님! 다 마셨어요~ "
" 그래. 알았어요.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
다시금 컵을 씻습니다.
시계를 보니 한 녀석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 녀석을 부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불러도 들은 체 만 체 입니다.
또 다시 부릅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쭈? 이 녀석봐라?
그때, 다른 녀석이 오더니 말합니다.
" 제가 먼저 하면 안 되요? "
" 응? 아니, 쟤 먼저 하고. "
평상시에도 몇 번을 불러야 겨우 눈길 한 번 주던 녀석.
오늘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보다 못한 한 녀석이 녀석에게 뭐라 속삭이더니 달려옵니다.
" 블럭 다 쌓고 온데요. 기다리래요 "
" 알았어요~ "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다시 부릅니다.
몇 번 더 부르니, 블럭을 만지며 엉덩이를 듭니다.
" 어떤 얘기 할 껀데요? "
" 네 얘기 듣고 싶어서요. 이거 뜨거운 물인데 마셔요. 감기 걸린데 좋아요. "
" 나 감기 걸린거 어떻게 알았어요? "
" 목소리 들으면 알지요~ "
이때, 다른 녀석 하나가 뛰어와
선생님에게 뭐라뭐라 합니다.
선생님도 뭐라뭐라 하고.
뭐라뭐라 몇 마디 주고 받자니
컵 들고 있던 녀석이 컵을 톡 떨어뜨립니다.
물이 조금 쏟아졌습니다.
" 괜찮아요? "
" 네~ 괜찮아요. 히히..잘됐다~ "
딴 생각하다가 컵을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일부러 떨어뜨린 것 같지는 않고.
물이 줄어 들어서 좋은 모양입니다.
얘기하기가 싫은 모양입니다.
" 내일부터는 이야기 좀 많이 들려주세요. 알았죠? "
" 챙피한데... "
여운을 남기며 돌아서는 녀석.
땡땡~ 땡땡~
" 자~ 밥 먹을 시간이에요~ 정리합시다!! "
오늘은 세 녀석과 상담을 하였습니다.
작은 아이들과의 상담에는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하지만
녀석의 표정과 분위기도 잘 봐야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정으로 전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한 번의 이야기로 무엇인가를 얻고
무엇인가를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될 것 같은 충동은
언제나 함께 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야기가 끝이 아닙니다.
끝이 없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어제와 오늘에 이른 이야기.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행복 속에 살고 있는지
그 행복이 어른들만이 느끼는 행복인지 기쁨인지
아이들도 진정 느끼는 사랑이고 즐거움인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고픈 선생님은
오늘도 아이들 마음 집 밖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 ○○야~ 놀~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