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나랑 놀아줘요!

달봉샘 2010. 5. 4. 22:51

현관문을 엽니다.

축구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실내화 신은 발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살금이.

몸을 비비며 머리를 비빕니다.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라"

사료를 한주먹 꺼냅니다.

동물병원에서 가지고 온 회충약도 꺼냅니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에 담아주니 뽀드득 뽀드득 씹어 먹습니다.

"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

찐득이에게는 작은 참치 캔에 회충약을 말아서 줍니다.

사무실입니다.

극성맞은 옥길동 모기들을 위해 모기향을 피웁니다.

의자에 앉습니다.

멍청한 컴퓨터를 바라봅니다.

사무실 유리문 너머 살금이의 귀가 보입니다.

쓰레기통 위에 올라서서 선생님이 뭘 하나 쳐다봅니다.

검고 동그란 두 눈. 쫑긋 세운 귀를 톡톡 털며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나랑 놀아줘요!'

수업시간입니다.

고개 숙인 한 녀석이 다가옵니다.

팔을 붙들고 이리 저리 흔듭니다.

옷 소매도 잡아보고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줘요"

"그래? 친구들에게 한 번 물어볼게"

"이 친구랑 같이 놀 사람!"

"저요.. 저요.."

"저 봐.. 저렇게 많잖아.. 가서 놀아!"

"싫어요.. 재미없어요."

"그럼.. 어떻게?"

"나랑 놀아줘요. 선생님이!"

햇님 꺼진 현관에 앉습니다.

낮은 계단에 앉습니다.

턱 괴이고 앉아 옥길동을 쳐다 봅니다.

핸드폰을 꺼냅니다.

오후 10시 50분

시간만 알려주는 시계입니다.

눈 앞의 검은 숲이 커다랗습니다.

면도 거품같은 하늘 구름이 보입니다.

풀 벌레 똑 또르르 구르는 소리 들립니다.

커다란 장승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 봅니다.

ymca 버스는 엉덩이만 내민 채 잠을 잡니다.

멀리서 오토바이 방귀뀌는 소리도 들립니다.

구부린 무릎 위로 두 팔을 포개고

두 팔 위에 턱을 고이고

흥얼 흥얼 따라합니다.

살금이를 따라 합니다.

고개 숙인 녀석 따라합니다.

"나랑 놀아줘요!"

내일은 '아빠랑 추억 만들기 행사'가 있습니다.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놀아 주는 날입니다.

스무명이 넘는 아빠들 중에는

놀아 주고 싶지 않은 아빠도 있을 것입니다.

푹신한 베게베고 쿨쿨 잠 자고 싶은 아빠도 있을 것입니다.

리모컨을 손에 들고 텔레비전만 보고 싶은 아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들은

푹신한 베게를 놔 두고

리모컨과 텔레비전도 놔 두고

아이들 손을 흔들며 오실 것입니다.

아이들과 놀아 주기 위해...

무릎에 두 팔을 얹고

두 팔에 턱을 괴고 앉아 생각합니다.

살금이가 놀아 달라고 하면

엉덩이 바닥에 앉아 놀아줍니다.

아이들이 놀아 달라고 하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놀아줍니다.

놀아주고 놀아주고 놀아주고 나면

온 몸이 씩씩 숨을 쉬며 말합니다.

"어때? 재미있게 놀았지?"

놀아 준 것이 아닙니다.

함께 놀았을 뿐입니다.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아빠랑 추억 만들기'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놀아주는 날입니다.

재미없게 놀아주기 보다는

재미있게 함께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도 아이들도

일요일은 놀기에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