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비 님 오시는 저녁에
달봉샘
2010. 5. 4. 23:35
비가 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옥길동 저녁에
비님이 오십니다.
대문열어 반기는 이 없는 저녁에
비님이 오십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손님처럼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손님처럼
소리없이 오시는 비님입니다.
하늘이 내려왔습니다.
희뿌연 도시 불빛 머리 위로
하늘이 내려왔습니다.
낮아진 하늘아래
찌푸린 얼굴들이 보입니다.
흐린 안경처럼 도시는 잔뜩 움츠려 있습니다.
아침 나절엔
낙엽위로 굴러가는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등 돌려 빗물 개워내는
아스팔트 둔탁한 마찰음이 아닌
옹알 옹알 빗물 머금은 정겨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꼬랑지 추겨세워 빗물 떨어내는
아침 새의 앙증맞은 날개짓에
얼굴 타고 빗물 흐르는 줄 몰랐습니다.
아이들 돌아가는 버스 정거장마다
하늘처럼 땅을 덮은 노란 은행잎이 깔립니다
해지는 도시의 저녁 빛은 노란 은행 빛입니다.
군데 군데 하늘을 머금은 노란 은행 빛입니다.
고개들면 하늘인데
하루쯤 하늘을 잊을때면
소리없는 손 짓으로 하늘을 가르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비님과 눈길이 만나면
가슴으로 빗물이 흐릅니다
흘러 흘러 온 몸을 흐릅니다.
밤 사이 빗물되어 소리없이 흐르도록.
밤 사이 흘러 흘러 하늘과 만나도록.
밤 사이 하늘덮고 가슴으로 살도록.
아침이면
먼 산너머 깨끗한 하늘보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켤랍니다.
옥길동 하늘아래 무지개를 걸랍니다.
툭툭 털어 빨래 널 듯
희망 하나 널어 볼랍니다.
오늘 저녁엔
소리없는 비님이 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