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
봄 햇살이 창을 비집고 들어 옵니다.
"선생님.. 오늘 바깥놀이 하는 날이죠?"
선생님의 다리를 무겁게 하는 말..
"으-응? 그래.. 맞아.. 나가야지.."
칠십먹은 할아버지마냥 몸이 영 부실한 선생님..
비실 비실 대답에 우렁찬 함성소리....
머리칼이 쭈삣섰다 내려 앉습니다..
돌려 쓴 모자 물통 든 아이들 룰루랄라..
작업장갑에 삽을 든 선생님 원기충전..
'그래..죽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
비장한 각오속에 현관문을 나섭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봄 햇살 혓바닥을 낼름..
선생님의 얼굴을 화사하게 감싸줍니다.
오늘은 그물침대에서 놀이하는 날..
지난 시간 열심히 만든 그물침대...
질경이반 녀석들.. 만들기만 하고
민들레반 녀석들..실컷 놀고 간 다음
이제서야 놀이터의 주인이 납십니다.
"이야호!!.."
출렁 출렁 그물침대..
선생님의 마음이 울렁 울렁
"선생님.. 여기 봐요.번데기에요.. 번데기.."
그물을 둘 둘 말아 한 녀석이 대롱 대롱..
번데기가 희죽 희죽 세코롬한 하늘 빛..
"자.. 얘들아.. 내려가자.. 밥 먹을 시간이다.."
"에이... 놀 때는 왜 이리 시간이 빨리가지?"
선생님이 앞장서고 아이들이 따라오고..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립니다.
"새치기 하지마!"
바깥놀이 내내 친구들과 퉁퉁거리던 녀석입니다.
"둘 다 뒤로 가라..."
생각없이 내뱉고 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뒤로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 녀석이 새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근데 제가 왜 가요!!"
맞는 말입니다.
새치기를 한 녀석은 따로 있는데
가만히 있던 녀석이 뒤로 가면 안 됩니다.
"새치기 한 녀석이 누구냐?"
주위를 둘러 보던 녀석..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새치기 한 녀석이 멀찌감치 뒤에 있습니다..
새치기 하는 것을 본 아이들이 없습니다..
"제가 정말 새치기 했냐?"
"모르겠는데요?"
"제가 정말 새치기 했단 말이에요.."
울먹이며 뒤로 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제가 정말 새치기를 했든 안 했든
고맙다.. 선생님 말을 들어줘서...
흔들리는 어깨를 살며시 안아 줍니다.
...................
점심 시간
먼저 받으려고 달려 오는 녀석 있습니다.
등원시에 귀가시에
먼저 타려고 앞장서는 녀석 있습니다.
차례를 지키지 않는 녀석은
차례를 지키는 아이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배워야 합니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적절한 통제방법을 찾게되고..
그 적절함이 익숙해지면 통제만이 남습니다.
해얄 할 일을 모르고 다른 일만 하는 선생님은
하던 일을 하는 아이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배워야 합니다.
새치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순서를 어기고 앞에 있는 남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하던 일을 계속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선생님도 새치기를 하였습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