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를 넘어

소 주인

달봉샘 2010. 5. 5. 14:44

소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죽어라 일만 하는 소였고

또 한 마리는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게

웬 종일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소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소는 생김새가 하도 닮아서

겉으로 봐서는

어떤 소가 일만 하는 소인지

어떤 소가 놀기만 하는 소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소 주인은 중대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일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소를

장에 내다 팔기로 한 것입니다.

음식만 축내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의 이런 결정을 눈치 챈 두 소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밤 새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소 주인은

밤 새 울어 두 눈이 퉁퉁 부은

두 소 중 한 마리를 이끌고 장으로 향합니다.

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는 또 한 마리의 소는

슬픈 나머지 일어설 줄을 모릅니다.

 

정오가 지날 무렵

소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헐값으로 소를 판 주인은

기분이 몹시 상했습니다.

오후 한 나절동안 방구석에만 처 박혀 있다가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문을 열고나옵니다.

날이 마저 저물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을 할 모양입니다.

 

홀로 남은 소를 이끌고 밭으로 향합니다.

오늘따라 소가 말을 잘 듣질 않습니다.

밭으로 가는데도 한참이나 씨름합니다.

밭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놈의 소가 통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안 좋은 기분에

소까지 말을 안 들으니 주인이 화가 납니다.

힘 가는대로 채찍질을 해댑니다.

그래도 소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소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있는 대로 화가 난 주인은

저녁밥을 챙겨주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깜깜한 밤이 되었습니다.

외양간에도 밤이 찾아옵니다.

외양간에 홀로 남은 소는

떠나간 소를 생각하며

또 다시 밤새 눈물짓습니다.

 

소는 그 다음 날도 일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일은 일대로 못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게 된 주인은

화가 난 나머지

'나머지 소 한 마리도 장에 내다 팔 결정을 내립니다.

 

다음 날 주인은

소를 이끌고 장으로 향합니다.

이제는 울어 주는 소도 없는데도

소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웁니다.

 

며칠 사이

두 마리의 소를 모두 팔아 버린 소 주인은

방바닥에 누워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 망할 놈의 소들... "

 

오늘은 내 사는 모양이

'꼭 이 소 주인 같아

함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