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시골 쥐와 서울 쥐

달봉샘 2010. 5. 3. 22:44

시골쥐 한 마리가 서울쥐를 만나러 갑니다.

입학식 때 한 번, 졸업식 때 한 번

1년에 딱 두 번 입는 양복을 입고서

쿨쿨 잠만 자던 서울 구두를 신고 갑니다.

구겨진 옷은 살짝 가리고

얼룩진 옷은 침을 바르고

허겁지겁 버스에 오릅니다.

헐레벌떡 지아철을 탑니다.

아는 얼굴 반가운 얼굴만 보다가

모르는 얼굴 굳은 얼굴들만 봅니다.

참새 재잘되는 소리 나무잎 떨어지는 소리만 듣다가

기계 꺽꺽대는 소리 귀청 떨어지는 소리만 들립니다.

가만히 섰다가 걷다가, 가만히 섰다가 걷다가

시골쥐가 서울쥐를 만나러 갑니다.

" 다시 말씀해 주세요! "

성냥갑같은 공중전화 박스에서

성냥알같은 빨간 얼굴로

주섬 주섬 길을 찾습니다.

" 녜...녜... 찾아 볼께요 "

이 집 저 집 너무나 반짝이고

이 놈 저 놈 너무나 뻣뻣해서,

이 집이 저 집같고 이 놈이 저 놈같아

이 집도 안 보이고 저 집도 안 보이고

이 놈도 안 보이고 저 놈도 안 보이고,

서울 살던 옛날 생각 서울에다 두고 온 듯

시골 살던 지금 생각 시골에다 두고 온 듯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서울쥐도 아니고 시골쥐도 아닌

빙 빙 돌고 도는 서울에서

빙 빙 돌고 돌아 어지럽기만 합니다.

" 저기.. 혹시 서울쥐 맞습니까? "

시골쥐가 서울쥐를 만났습니다.

시골쥐는 시골얘기

서울쥐는 서울얘기

고무줄처럼 죄여오는 목 줄이

꼴깍 꼴깍 침만 삼킵니다.

" 저기.. 저 약속있는데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

" 예.. 안녕히 가세요 "

터벅 터벅 발자욱따라 되짚는 길에

조그마한 인형가계 아이들 얼굴이 생글생글

" 이거 얼마에요? "

' 우리 아이들 좋아하겠다!! '

만지작 만지작

호주머니 작은 인형 다섯개만

번쩍 번쩍 서울에서

작은 얼굴 다섯 개만

시골쥐 한 마리가 서울 쥐를 만나는 날에

작은 얼굴 다섯 개만

작은 행복 다섯 개만

시골쥐 한 마리가 서울 쥐를 만나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