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되기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나왔어요.
엄마 잔소리에 밥을 먹는지 잔소리를 먹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버스 정류장엔 벌써 동생들과 친구들이 나와 있어요.
신발을 내려보니 아침부터 잔소리 하시던 엄마 얼굴이 보이네요.
"아니, 얘.. 엄마가 몇번 말했니? 신발을 왜 맨날 반대로 신는거야!"
걷다말고 신발을 벗어서 반대로 신어요.
'뭐야? 편한데? 반대로 신어도 편한데 왜 그러지? 엄마는?'
편하면 반대도 없잖아요, 뭐!
동생들하고 친구들하고 버스를 기다려요.
엄마들이 여러명 나오셨는데 굉장히 시끄러워요.
엄마들은 맨날 우리보고 시끄럽다고 그러시죠..
사실 엄마들이 더 시끄러워요.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요.. 그러면 혼날게 뻔하니까요.
버스가 왔어요.
선생님이 버스에서 내리셔서 인사를 하시네요.
반갑지만 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선생님이 인사하자고 그러세요
선생님.. 미안해요.. 오늘은 인사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기분 안 좋은 날이 있다구요.
버스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친구들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유치원에 도착했어요.
버스가 덜컹 덜컹 거리더니 섰어요.
버스가 꼭 토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내리라고 하세요.
말 안해도 나는 잘 알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어요.
선생님이 말하는데도 친구들을 밀치고 먼저 내리려는 친구들이 있어요.
선생님 말이 맞는것 같아요
먼저 내리든 나중에 내리든 내리는 것은 다 똑같아요.
그런데, 친구들 말을 말을 들으면 저도 먼저 내리고 싶어져요.
먼저 내려야 신발 벗을 때 친구들과 부딪히지 않고 빨리 벗을 수 있고
그리고, 교실에 가서 한 번이라도 더 뛰어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선생님은 아주 빨라서 제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가방을 놓자마자 동그랗게 앉아야 해요.
만약 블럭이라도 만질려고 하면 선생님이 장난하지 말고 오라고 하세요.
난 그냥 만져본 것 뿐인데 말이에요.
아침에는 느낌 나누기를 해요.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쉬는건데 배를 풍선처럼 생각해야 한데요.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배꼽에 코가 있다고 생각하래요.
정말 웃겨요. 배꼽에 코가 있다니..
그럼 배꼽에서 콧물이 나고 배꼽에서 코피가 나겠네요..
그러면 정말 웃기겠어요..
몸 놀이 시간이에요.
선생님을 따라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선생님만큼 되지는 않아요.
이상하다? 나는 왜 잘 안 되지?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분명히 잘 움직일꺼에요.
그래서 아무리 해도 똑같이 따라할 수 없을꺼에요.
나만 이상한가 해서 친구들 움직이는 것을 보면
선생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요. 꼭 내 얼굴이 뻥 뚫릴 것 처럼요.
선생님 보다가 친구들 보다가 하다보면 나도 몰래 이마에 땀이 생겨요.
그런데..
언제 놀지? 놀고 싶은데..
푹신 푹신한 뜀틀에도 올라가 보고 싶고
길게 누워있는 매트에도 마음대로 눕고 싶은데
오늘 선생님 얼굴을 보니 놀 수 없을지도 몰라요.
장난을 잘 하는 친구들 이름을 자꾸 부르는 것을 보면
오늘 손 들고 벌을 설지도 몰라요.
우리 선생님 특기는 손들기거든요..
역시..
'머리에 손'이래요.
나는 처음부터 잘 따라했는데 장난꾸러기 저 친구들 때문에 또 이렇게 됐어요.
선생님은 그 친구들 때문에 우리가 벌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저 친구들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계속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뜀틀에도 안 가고 매트에도 안 가고 말이에요..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손을 자주 들면 키가 커진데요.
거짓말쟁이 선생님!!
손을 든다고 키가 크면
매일 나만 야단하는 우리 엄마는 키가 하늘만큼 커졌을꺼에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왜 키가 작을까요? 거짓말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우리 선생님 말이니까 믿어야 해요.
우리 선생님은 매일 '선생님은 거짓말 안 한다'고 하시거든요.
손을 머리에 올리고 창 밖을 내다 봐요.
커다란 나무들이 보여요.
내가 여섯살 때에는 앉아서 안 보이던 나무였는데
지금은 앉아서도 잘 보이니 키가 많이 큰 거에요.
나도 저 나무처럼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잔소리도 안 듣고
이렇게 손을 머리에 올리지도 않고
놀고 싶으면 놀고 눕고 싶으면 눕게 말이에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나무처럼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그래서, 어른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것은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렸을 때의 내가 있고
내 앞에는 어렸을 때와 같은 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손을 머리에 올리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지니 어쩌죠?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이 된 것처럼
다시 아이가 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선생님은
"손- 머리!" 하면
선생님도 "손- 머리" 한답니다..
혹시나 아이가 될까해서....
선생님의 이 마음
우리 아이들이 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