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자정에 면도하는 선생님

달봉샘 2010. 5. 3. 22:21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에 맡깁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줄기 한줄기 물줄기를 따라

새록 새록 아이들의 얼굴들이 스쳐 갑니다.

입 언저리에 비누거품을 칠하며

거칠어진 수염을 면도기로 쓱쓱 문지르며

지난 2박3일을 되 세겨 봅니다.

2002년 1월 11일 금요일

오늘은 캠프를 가는 날입니다.

방학특강 중간에 살짝 가는 캠프라

캠프시간까지 허둥지둥 바쁩니다.

마지막 특강 귀가차량을 타기 위해

수업시간이 끝나자 마자 문단속을 하기 바쁩니다.

강사 선생님들을 밀어내듯 환송하고

이박삼일동안 못 볼 용기하고 토토에게

큼지막한 양배추를 쫘~악 쪼개어 넣어 줍니다.

머리맡에는 팔둑만한 당근도 놓아 줍니다.

따뜻한 밥에 국을 말아 하늘이와 바다에게 건네 줍니다.

김이 모락 모락..

바쁜 시간만큼 식지 않은 사랑입니다.

캠프를 못 가시는 선생님에게 동물들 식사를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출발 시간이 다가 옵니다.

버스가 보입니다.

일찍 온 아이들이 즐거운 농담을 건넵니다.

캠프는 시작부터 즐거움입니다.

차례차례 아이들이 옵니다.

엄마는 다른 버스를 타고 엄마캠프를 가고

아이들은 다른 버스를 타고 겨울 캠프를 갑니다.

엄마 손가락 하나를 움켜주고 뒤뚱뒤뚱 40개월이 못 된 녀석이 버스에 오릅니다.

4살에서 13살까지 작고 커다란 아이들이 버스에 오릅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들도 버스에 오릅니다.

들쑥날숙 아이들 37명..

들쑥날숙 선생님 10명..

47명이 버스를 타고 캠프 길에 오릅니다.

명단이 뒤죽박죽입니다.

온다던 아이 오지 않고

이름 없던 녀석 버젓이 버스에 올라

모둠을 다시금 구성합니다.

마이크는 마이크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끄럽고 들뜬 출발입니다.

고속도로입니다.

버스가 엉금엉금 거립니다.

버스의 히터관이 새고 있습니다.

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가방에서 물통을 꺼냅니다.

생수통을 바다만큼 싣은 트럭이 '휑'하며 비켜 갑니다.

물이 필요해!!

비닐하우스 마을입니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물통을 지고 허둥지둥 뜁니다.

버스가 눈을 뜹니다.

아이들이 함께 합니다.

하늘모둠, 땅모둠, 땅모둠, 달모둠, 산모둠, 별모둠

버스가 들썩들썩 합니다.

강화도에 도착입니다.

짐은 트럭에 싣고

아이들은 걸어서 오릅니다.

한발 한발 웃음이 쏟아집니다.

네 살박이 녀석 뒤뚱뒤뚱 엄마를 잊은지 오래입니다.

질퍽질퍽 진흙탕을 지나고

얼음쨍쨍 살얼음을 지나

흙살림 캠프장에 도착입니다.

환호성이 터집니다.

재미있는 도착입니다.

구불거리는 나무계단도 재미있고

쿵쾅거리는 이층집도 재미있고

방마다 별모양 동그라미 모양으로 난 창도 재미있습니다.

벽을 콩콩 쥐어박아 보기도 하고

집구석 구석 아이들 눈길이 쫓아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강아지를 쫓아 다닙니다.

한달은 굶은 듯한 손바닥만한 강아지랑

벼룩이 있는지 연신 앞다리로 배를 긁어대는

복실이를 쫓아서 하루해가 얼른 넘어 갑니다.

식사시간입니다.

손에 손에 식판을 들고 저녁을 준비합니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처음이라 들뜨기만 합니다.

네 살박이 녀석 숟가락질이 바쁩니다.

이박삼일 동안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숟가락을 삼킬 듯한 모습으로 싸악 자취를 감춥니다.

종이를 꺼내 약속을 정합니다.

누가 큰 형을 할까?

방청소는?

동생은 누가 돌보지?

우리는 무엇을 할까?

엉덩이를 흔들며 쏟아내는 얘기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시간입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질세라 천정까지 목젖이 오릅니다.

겨울이야기 시간입니다.

선생님들은 배꼽을 찾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겨울이야기에는 따스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시 찾아 온 듯 합니다.

징글벨이 울려나고 엽기토끼가 출현합니다.

이불방석으로 방아도 만들고 원숭이 역할을 하는 5살, 6살녀석들은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는 원숭이입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등장합니다.

네 살박이(이후 뽀찌) 녀석 앙증맞은 귀마개를 하고 나타나

"불장난 하지마" 중얼거립니다.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6살, 7살녀석들이 줄없는 사슴이 됩니다.

선생님이 대사를 잘 못 외어서 큰 언니에게 계속 야단을 맞습니다.

사슴들이 계속 길을 잃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계속 '가자 가자'만 연발합니다.

아이들의 노래 소리도 즐겁고

아이들의 몸짓 하나도 정겹습니다.

캠프의 하루밤이 깊어 갑니다.

치카 치카 양치를 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내복 차림으로 질주하던 녀석들이

하나 둘 조용합니다.

캠프가 좋은 이유 하나!

아이들의 자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꿈꾸는 천사들입니다.

뒷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선생님들이 모입니다.

내일 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생 선생님들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신나고 있는 중이랍니다.

고등학생 선생님들.. 선생님이란 이름이 아직도 쑥스럽기만 합니다.

흙살림 캠프장에

단 한 사람만이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

입 언저리에 비누거품을 만드며

면도기로 쓱싹쓱싹 두터운 수염을 깎으며

캠프장의 하룻밤을 닫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뜹니다.

내복 차림의 훼방자들이 눈에 가물 가물거립니다.

베개 머리맡에 커다란 두 눈이 껌뻑껌뻑 거립니다.

"선생님이 네 옆에서 잤어요?"

마지막 남은 잠 한방울을 마져 떨어내며

하품으로 아침을 엽니다.

남산만해진 머리를 추스릴 틈도 없이

아침체조를 합니다.

뿌드득 뿌드득 밤의 흔적들을 털어 냅니다.

겨울아침이지만 시원한 아침입니다.

아장 아장 뒤뚱뒤뚱 풀썩풀썩 첨벙첨벙

아침산책을 알리는 귀여운 소리들입니다.

냠냠 아침밥을 맛나게 먹고

탐험준비를 합니다.

놀이터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오후에는 썰매를 타러 가야 하는데 썰매를 탈 곳을 찾아야 합니다.

모둠의 큰형들이 앞장을 서서 동서남북으로 흩어집니다.

아이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얼음이 없으면 썰매를 만들어도 꽝입니다.

얼음이 없다면 썰매에다 바퀴를 달까 생각합니다.

바퀴썰매라..

한시간을 걸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게가 보입니다.

'가게에 올 려면 한시간을 걸어야 하는구나'

가게에 올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되짚어 걸어갑니다.

저 산만 넘으면 바다가 있을 것 같은데 산을 넘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되짚어 돌아섭니다.

썰매를 탈 만한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찾았을까'

산 중턱에 한 모둠이 눈에 들어 옵니다.

선생님은 뒷찜을 지고 걸어가고

아장 아장 걸어가는 애기들도 보이고

애기들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하는 언니들도 보입니다.

산과 들판 사이에 작은 그림들이 움직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그림 한폭입니다.

논두렁에 반짝이는 물들이 보입니다.

물인가.. 얼음인가..

얼었던 얼음도 녹을 것 같은 날씨입니다.

다행입니다.

논두렁에 쌓였던 눈들이 녹아서

녹은 물들이 얼어서

커다란 얼음논을 만들었습니다.

'찾았다'

아이들 셋이 걸어갑니다.

달을박질 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야지..'

차가운 숨이 턱에 걸려 하얀 입김을 쏟아냅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뛰는 걸음을 멈춥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닙니다.

이곳 마을에 사는 아이들입니다.

한 손엔 가방을 들고

한 손엔 동생 손을 잡고

정겹게 걸어가는 어린이가 세명 입니다.

도란 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입니다.

황순원님의 소나기에서 보았던 모습입니다.

살아있는 동화의 모습입니다.

캠프장에 왔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이층방에서 뛰어 내리는 곰 인형이 보입니다.

점심을 먹고 큰 형, 큰 언니들이 모였습니다.

"찾았니?"

"예.. 우리는 삼단으로 된 논을 찾았어요.. 얼음이 삼단이에요"

별모둠 큰형인 영승이가 말합니다.

"저희도 찾았어요. 저수지인데요 얼음이 꽝꽝 얼었어요"

산 모둠 큰 언니인 다희가 말합니다.

다른 언니, 형들은 신통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끼리 먼저 한 번 갔다와서 결정하자"

길을 나섭니다.

먼저 영승이가 찾아낸 삼단 논으로 갑니다.

얼었던 길이 녹아 길이 질퍽질퍽 합니다.

삼단 논에 얼었던 얼음들도 녹았습니다.

빙수마냥 숟가락을 꽂으면 푹푹 들어가는 논이 세 개입니다.

"다희네 모둠이 찾은 곳은 선생님이 찾은 곳하고 같은곳 같애."

논을 저수지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아이들 눈에는 꽝꽝 언 얼음만이 들어 왔었나 봅니다.

옷을 단단히 입고 동생들을 챙깁니다.

먼저 썰매를 만들어야 합니다.

널찍한 판자에다 나무뭉치를 두개대고 철사를 구부려 날을 만듭니다.

망치질이 서툽니다.

여자선생님의 못은 울뚱불뚱

아무곳이나 뚫고 나옵니다.

왕 썰매를 만들기로 합니다.

모둠 친구들이랑 논쟁을 벌이다가 썰매를 내동댕이친

별모듬의 수현이와 함께 고기를 굽는 석쇠를 주워다 판자를 대신하고

땔감목을 세 개 주워 와 썰매다리를 만들고

안테나 봉을 뜯어다가 썰매날을 만듭니다.

망가진 의자 시트를 주워 다 썰매 위에 얹으니

근사한 왕 썰매가 만들어 졌습니다.

커다란 강목을 영차 영차 들고 가는 꼬멩이들도 있습니다.

못이 부족해서 나무에 막힌 못을 뽑기 위해서입니다.

썰매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썰매다리를 들고 썰매줄을 잡고 썰매판을 들고

아이들이 길을 나섭니다.

길을 가시던 동네 아저씨가 방글방글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아이구.. 왠 썰매에요?"

"예.. 아이들하고 썰매를 타려구요.."

가볍게 목 인사를 나누며 스쳐갑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지나치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도시 생각이 납니다.

자연과 함께 하다보면 그냥 스쳐 지날 수가 없을 듯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인사하는 새들과 커다란 산을 보고 살다보면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자연과 함께 살다보면

자연을 닮아가나 봅니다.

썰매장에 도착했습니다.

왕 썰매가 얼음을지치며 질주합니다.

여자 선생님들이 만든 썰매는 얼음에 박혀버린 돌멩이마냥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못이 가로 질러 박혀서 오히려 얼음 위를 지치는 썰매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썰매가 부족합니다.

노란 바구니에 끈을 달아

산타 할아버지 썰매를 만듭니다.

큰형들이 사슴이 되어서 썰매를 끌어 줍니다.

뽀찌녀석은 썰매를 보더니 작던 눈이 왕방울 사탕만큼 커졌습니다.

"썰매.. 썰매"

살얼음이 언 곳도 많습니다.

썰매를 타던 녀석의 한쪽 발이 푹 물 속에 잠깁니다.

허둥지둥하는 녀석을 잡아주다 선생님이 물 속에 풍덩합니다.

신발이 물에 빠지고 엉덩방아를 찧지만

마냥 즐거운 썰매놀이입니다.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신발이 젖지 않은 녀석이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온몸이 후끈거린다고 합니다.

썰매를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등에 업힌 네 살박이 혜수는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뽀찌녀석은 벌써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여섯 살이 된 투덜이 상민이가 연신 투덜거리며 따라옵니다.

"발이 아프단 말야.. 발이 얼마나 아픈 줄 알아..정말 발이 아프단 말야"

"그럼.. 발을 떼어 놓고 오렴.. 그럼 발이 안 아플텐데.."

"에이.. 발이 아프다니까.. 발을 어떻게 떼어 놓고 가.. 이잉..."

투덜거리면서도 잘도 따라옵니다.

더럽고 차가워진 옷을 벗고 다시 내복차림이 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활갯짓을 하는 녀석들입니다.

고등학생 선생님들이 이불빨래를 하듯

아이들 옷을 커다란 대아에 담그고

질끈 질끈 발로 밟습니다.

세탁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썰매타기를 하던 오후를 다시 얘기합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비밀놀이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꼬치꼬치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던 시간입니다.

여섯가지 놀이가 있습니다.

선물놀이..

가지고 온 선물을 서로 바꾸는 시간입니다.

떡구워먹기

모닥불에 맛있는 가래떡을 구워먹는 시간입니다.

재미있는 방놀이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의 놀이 시간입니다.

엄마, 아빠에게 편지쓰기

제기 만들기

퀴즈 퀴즈 대결...

선생님들은 놀이 주인이 되어 아이들을 맞습니다.

큰형, 큰언니들을 따라 다니며 시장을 보듯

이곳 저곳을 다니며 놀이들을 사고 팝니다.

절대로 선물을 바꾸지 않겠다고 선물을 놓지 않는 다섯 살 형근이

그 안에는 팽이가 들어 있습니다.

떡을 구워 먹으며 왜 나는 안 주냐고 계속 묻다가 형 뒤로 몰래 숨는 형근이

한 손에는 거무틱틱한 가래떡이 들려 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엉덩이들이 예쁘고

이층방에서 불어 오는 이구동성 퀴즈 열풍

집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손에서 놓지 않던 동전제기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처럼 굳은 몸들이 우스꽝스러운

비밀놀이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애찬식 시간입니다.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한줄기 촛불만 바라보며

가느다란 촛불을 한곳에 모으며

서로 건네이는 땅을 먹으며

서로 건네이는 포주주스를 마시며

서로 얼싸안고 안아주는 가슴마다

'사랑해'라는 말들이 오고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캠프만 오면 저녁에 면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면도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저녁 시간 면도를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던 기억 때문입니다.

겨울캠프가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과의 2박 3일이 지났습니다.

캠프를 마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나누었던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말들이 생각납니다.

"이상해요.. 옆구리가 허전한 것이..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느낌..

허전하네요. 참 이상해요.. 기분이.."

지금

아이들은 곁에 없지만

아이들이 가슴에 묻어 두고 간 소중한 기억들이

오늘도 선생님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즐거운 겨울캠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