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오는 날!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눈을 뜹니다.
창밖이 환합니다.
'아차! 늦잠 잤구나!'
구멍만 대충 끼워 옷을 입습니다.
문을 엽니다.
'어? 아무도 없네?
이상하다? 분명 문 소리를 들었는데?'
현관을 내다 봅니다.
대낮처럼 환합니다.
'아! 이건...'
눈이 옵니다.
첫 눈이 옵니다.
흰 눈이 펑펑 내립니다.
찬물에 세수한 듯 두 눈이 번쩍 뜨입니다.
현관문을 엽니다.
옥길동이 온통 눈바다입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처럼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세상입니다.
순간 복도를 가로 뜁니다.
베란다가 있는 별꽃반 교실로 갑니다.
온통 하얀물결입니다.
커다란 창으로 들이치는 빛은
감히 두 눈뜨고 쳐다 볼 수 없는 눈부심입니다.
잠에 취한 몸이 채 깨어나기도 전에
하얀 눈 빛에 홀려 버립니다.
살갗을 스치는 찬 기운에 정신이 듭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얇은 겉옷 사이로 찬 바람이 들락거립니다.
종종걸음 방으로 뛰어 갑니다.
담요를 뒤집어 씁니다.
킥킥킥... 웃음이 납니다.
하얀 눈 빛 사이로 아이들 얼굴이 보이는 까닭입니다.
신나게 양치질을 합니다.
콧노래 부르며 면도를 합니다.
쏟아지는 물길이 온 몸을 간질이듯
베시시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청소 얼른 끝내고 눈 맞으러 가야지!'
청소를 시작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선생님! 차가 움직이질 않아요. 아이들 집에 전화 좀 해 주세요.
차량코스 단축한다구요!"
아! 그러고보니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눈이 오면 버스도 미끄럼을 타서
가파른 아파트 길은 올라갈 수 없습니다.
아이들 집으로 전화를 합니다.
세 대의 전화가 동시에 울립니다.
두 개의 손으로 전화를 받고
한 개의 입으로 말을 합니다.
"예! 눈이 와서요. 차가 많이 밀린데요"
선생님들로부터 문자가 날아 옵니다.
'차가 밀려서요 밥 좀 부탁드려요'
'차가 밀려서요 청소 좀 부탁드려요'
세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맡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마냥 신나기만 하니...
'어서 끝내고 눈 맞으러 가야지!'
장대 비 손에 들고 현관을 나섭니다.
고양이 야옹하며 밥 달라 보챕니다.
"이놈아! 눈 봐라. 눈! 너는 눈도 없냐!"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리없이 쏟아집니다.
"네가 문 두드렸냐? 너 오는 것 보라구?"
하얀 입김을 뚫고 눈이 내립니다.
한 번 비 질에 눈발이 날립니다.
두 번 비 질에 눈덩이가 생깁니다.
세 번 비 질에 검은 땅이 솟습니다.
"쓸지 마세요! 저희들은 즐기기만 하면 되나요!"
볍씨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그러네! 아이들하고 같이 쓸어야 되겠다'
차가 막혀 시간도 더딥니다.
길이 막혀 아이들도 더딥니다.
주방으로 뛰어 갑니다.
어젯밤 남겨 둔 볶음밥을 꺼냅니다.
'신나게 놀려면 아침은 먹어야 되겠지?'
입 안가득 밥알이 굴러 다닙니다
킥킥킥... 웃음이 납니다.
밥그릇 가득 아이들이 뛰 노는 까닭입니다.
버스가 옵니다.
엉금엉금 거북이 옥길동 언덕을 오릅니다.
창가에 아이들이 붙었습니다.
눈 송이처럼 뽀송뽀송 붙었습니다.
얼굴 가득 하얀 눈이 비칩니다.
헛바퀴 돌던 버스가 멈춥니다.
문이 열립니다.
겨울아이들이 내립니다.
퐁당 퐁당 흰 눈속에 빠집니다.
두 손 가득 눈을 뭉쳐 들고
인사대신 눈을 던질 태세입니다.
"지금 눈 만지는 녀석은 이따가 눈싸움하러 안 나올건데..."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안녕? 그런데, 눈은 안 내려 놓을꺼니?"
슬그머니 눈을 떨어 뜨립니다.
살그머니 손을 떨어 뜨립니다.
"눈 안 만졌어요. 그냥 묻은거에요"
눈처럼 하얀 거짓말을 하는 녀석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습니다.
'그래, 이 녀석아! 오늘만큼은 속아준다.
하얗게 속아준다. 요 눈덩이 같은 녀석아!'
동그랗게 앉습니다.
동글동글 눈덩이마냥 동그랗게 쳐다봅니다.
"선생님! 안 나가요? 지금 안 나가요?"
"왜? 나가야 돼?"
"나가야죠. 눈 오는데..."
"눈 오는거랑 나가는거랑 무슨 상관이냐?"
"눈이 나오라고 하잖아요. '어서 나와라' 그러잖아요"
"선생님에게는 안 들리는데?"
"에이- 정말 안 나갈거에요?"
"질경이반! 외투 입어라!"
"우와- "
우당탕탕- 하얀 먼지 일으키며
아이들이 옷을 입습니다.
실실 쏫아지는 저 웃음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고구마 밭으로 가자!"
"에이- 그냥 여기서 놀면 안 되요?"
"가 보면 안다"
작은 언덕을 오릅니다.
하얀 발자국 찍어가며 아이들이 오릅니다.
"우와-"
설탕나라에 온 것 같습니다.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단맛나는 벌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폴짝폴짝 눈이 뜨거운지 연신 뛰어 다닙니다.
"자! 눈 싸움 시작이다!"
선생님 대 질경이반!
눈 하나 뭉칠 때 눈뭉치 서너개가 날아 옵니다.
작은 아이들이지만 뭉치면 역시 못 당합니다
"얼굴에는 던지기 없기. 얼굴 맞으면 기분 나쁘잖아"
하얀 수염을 단 선생님이 말합니다.
아이들이 뛰어 옵니다.
선생님이 뜁니다.
힘없이 던진 눈을 받아 되돌려 줍니다.
"그러기가 어딨어요!'
"여깄지!"
"얘들아! 한꺼번에 던지자! 와-!"
눈에 눈을 맞습니다.
눈에 눈을 맞으니 눈이 아픕니다.
"얼굴에 던지기 없다니까!"
"얼굴에다 안 던졌어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오릅니다.
모락모락 몸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
"얘들아! 눈사람 만들자!"
"좋아요!"
눈을 굴립니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 사람을 만들자!
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 사람을 만들자!'
"선생님꺼는 왜 그렇게 커요?"
"응? 뚱뚱보 눈 사람 만들꺼다"
"저랑 합쳐요"
"싫어! 네 것은 너무 작아"
"머리하면 되잖아요"
"그럴까?"
울퉁불퉁 고구마 밭, 울퉁불퉁 배추 밭
눈덩이에 배추 줄기가 달립니다.
"선생님, 눈에 배추가 붙었어요"
"좋지! 배추 먹고 튼튼해지라고 해라"
눈덩이가 커다래질수록 눈덩이가 거무틱틱해집니다.
"선생님! 눈덩이가 시커멓게 됐어요"
"밭이라 그래. 일단 크게 먼저 만들고 색칠하자"
"색칠을 어떻게 해요?"
"하얀 눈 퍼다가 붙이면 돼"
눈덩이가 점점 커집니다.
"자! 이제 눈 덩이를 붙이자!"
선생님 눈덩이 위에 아이들이 만든 눈덩이를 올립니다.
"선생님! 눈 사람이 왜 이렇게 울퉁불퉁해요!"
"운동을 많이 한 눈 사람인가 보다. 와- 이 근육 좀 봐"
"선생님! 위에다 하나 더 올려요"
"하나 더?"
"예, 아주 큰 눈 사람 만들어요"
"좋다. 올리자!"
눈덩이를 하나 더 올립니다.
"이게 뭐야! 땅콩이잖아"
별자리 선생님 기창이가 말합니다.
"아냐. 아냐. 곤충이야. 곤충"
"선생님. 우리 개미 만들어요"
"개미? 좋다. 개미 만들자!"
눈사람에서 땅콩으로
땅콩에서 개미로
개미에서 흑인 눈사람으로
계속 변신하는 눈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하얀 눈 위에서 하얀 눈을 굴리는데
아이들 옷은 흙빛입니다.
온통 흙 투성입니다.
"자! 완성이다. 짜자잔!"
"이게 뭐에요. 괴물 같잖아요"
기창이가 또 다시 거듭니다.
"사람들도 다 다르게 생겼는데 눈 사람도 다 다르게 생겨야지"
"그래도 하나도 눈 사람 같지 않아요"
"선생님 보기에는 너무 멋있다"
"아무리 봐도 괴물이에요"
"이놈이-!"
고구마 밭에 눈 사람이 섰습니다.
질경이반 눈 사람 넷!
괴물 눈 사람 넷!
도깨비 방망이를 뒤집어 놓은 모양같은 눈 사람,
민들레반 눈 사람 하나!
옹기종기 귀여운 별꽃반 눈 사람 셋!
고구마 없는 고구마 밭에
한 겨울 허수아비, 한 겨울 눈 사람.
"얘들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엉덩이 질질 끌며 내려오는 길에는
엉덩이 썰매를 탑니다.
"집에가서 눈 놀이 했다고 하지 마라!"
"왜요?"
"엄마들이 절대 안 믿을꺼야!"
그도 그럴것이 온통 흙투성이입니다.
얼굴은 기분좋은 붉은 색
몸은 색깔좋은 땅 색
고구마 밭에서 흙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오늘은 첫 눈이 내린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