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언제나처럼
주방에서 설겆이를 할 시간이면
미닫이 문에 걸린 아이들의 고갯짓을 봅니다.
"선생님.. 뭐 하세요?"
"응? 왔니? 설겆이 하고 있지?"
"남자가 왜 맨날 설겆이만 해요?"
"재미있어서.. 그리고, 남자니까 설겆이 하는거야'
"에이.. 설겆이는 여자가 하는건데.."
"누가 그래? 그릇들이 그러든? 아니면 수세미가?"
"히히.. 그게 뭐야!"
"선생님은 그릇들이 깨끗해지는게 좋단다.."
"선생님.. 어서 가요.. 친구들이 온단 말이에요"
"알았어.."
젖은 손을 옷에다 훔치면서 아이들을 맞으러 갑니다.
"질경이반 모여라"
무릎아래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늘은 새로운 약속을 해 봅니다.
"오늘 날씨 좋지?"
"예..."
"그래서 오늘은 베란다에서 해바라기(햇볕구경)를 할텐데.. 약속할게 한가지 있어"
"그게 뭔데요?"
"음.. 말을 하지 않는거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거지
만약에 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선생님이 조용히 손을 잡고 교실로 데리고 올꺼야.. 그 친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어때.. 할 수 있겠어?"
"예.."
"좋아..그럼 지금부터 시작이다.."
햇볕 가득한 베란다에 서서 조용히 불어 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봅니다.
형들이 무엇을 하나 빼곡히 창을 채운 동생들의 얼굴들도 보이고
멀리 아침 불을 지피는 옥길동 아저씨도 보입니다.
장난을 하느라고 교실로 돌아 간 다섯녀석을 제외하곤
눈부신 햇볕에 바짝바른 빨래마냥
아이들이 바람에 출렁 출렁 출렁이고 있습니다..
"자..이제 들어가자.."
얼굴 가득 봄 햇살을 받은 아이들은
얼굴마다 봄 꽃이 피어나는 듯 합니다.
"그럼.. 우리 무엇을 봤나 얘기해 볼까?"
손을 드는 녀석들을 한명씩 불러 봅니다.
손가락을 꼽아 보며 세어 봅니다.
장화 한짝.. 지붕..버스.. 강아지.. 교회.. 쓰레기더미..
아저씨.. 풀..나무.. 흙.. 하늘..구름.. 햇님.. 참새..까치..
염소.. 무덤.. 볍씨반 형아들.. 호미.. 하늘이.. 산.. 언덕..
철조망..거름.. 동생들..그리고..
"우와.. 많구나.. 정말 많지? 그럼.. 지금부터 밖에서 본 것을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보는거야.. 밖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밖에서 다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야.."
.
.
.
.
.
"자.. 그만.. 어때? 기분 좋지?"
"예.."
"좋아.. 그럼.. 우리 운동 좀 해 볼까?"
"예.. 좋아요.."
아이들의 얼굴에 햇볕이 찾아 듭니다.
해바라기는 햇볕을 따라 작은 씨앗들을 만들어 내지만
아이들은 햇볕을 달고 꿈을 만들어 냅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