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의 성장통

휴가지병

달봉샘 2010. 5. 5. 13:40

몸 뚱아리도 휴가인 줄 아나 봅니다.

눈퉁이에 낀 눈곱

떨어낼 줄 모르게 바쁘다가

하릴없이 묻어나는 하품에

절로 떨어지는 휴가 첫 날!

마지막 수업 때 삐끗한 허리가 말썽을 부립니다.

숨 한 번 들이쉬니 온 신경이 허리에 모입니다.

집중하지 말래도 절로 집중되는 통증입니다.

신기하게도 휴가 때면 묵은 병이 살아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안 그래도 쉴텐데 더욱 쉬라 그러나 봅니다.

태평양이 비좁아 허리 굽은 새우마냥

구부정한 모양으로 하루를 지냅니다.

어떤 모양도 편하지 않습니다.

더위에 지친 강아지 마냥 누워있다 보니

옥길동 강아지들이 생각납니다.

선생님들이 휴가라

밥 챙겨줄 이가 없습니다.

일어서기는 일어서야 할텐데

가기는 가봐야 할텐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식경이 지납니다.

' 이왕 갈 꺼... 가자! '

가고자 마음 먹고

자리 털고 일어서니

반은 간 셈입니다.

걸음을 옮깁니다.

남 보기에는 설렁설렁 걸어도

내 느끼기에는 살얼음입니다.

옥길동 언덕을 오릅니다.

더위에 지친 강아지들이

땅 위에 배 대고 누웠다가

어서와라 기다렸다 짖어댑니다.

등줄기가 온통 땀줄기라 그런지

짖는 소리마저 퍽퍽하게 들립니다.

힘겹게라도 이렇게 오니

마음만은 좋습니다.

현관 문을 엽니다.

문간 옆에 숨었던 더위가

까꿍~ 하며 안깁니다.

턱- 허니 숨이 절로 막히는 것이

기막히게 더운 날입니다.

" 우와~ 찜질 방이 따로 없다~ "

덥다 덥다 하니 더 더운 것 같습니다.

목 마른 강아지들에게 물을 주고

배 고픈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다보니

뭐 고픈 모기들마저 밥 달라 엉겨 붙습니다.

학교 주변을 돌아봅니다.

사연 많은 물 놀이장에는

공룡 인형이 둥둥 헤엄치고 있습니다.

마른 땅이 진흙 놀이터가 되고

진흙 놀이터가 물 놀이장이 되기까지

아이들과 함께 한 이야기들이 둥둥 떠 다닙니다.

밭으로 갑니다.

껑충 키만 크던 해바라기 대 위로

노란 햇님 하나가 웃고 있습니다.

며칠 새 얼굴을 내민 해바라기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겅중겅중 뛰어갑니다.

키 큰 해바라기 밑으로

줄 지어 선 옥수수들이 있습니다.

장대 같은 해바라기만 없었어도

옥수수가 그리 작아보이지는 않았을 것인데

해바라기 덕에 키 큰 옥수수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양 보입니다.

옥수수 대 위로

요상하게 생긴 열매 하나가 보입니다.

조둥이는 홀쭉하고

몸뚱이는 통통한게 조롱박이 열렸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밭입니다.

심기는 옥수수와 콩만 심었는데

나기는 고추도 나고 방울 토마토도 나고

조롱박도 납니다.

신기한듯 만지작 거리는데

머리 위로 벌 한 마리가 붕- 스쳐 갑니다.

순간 온 몸이 움찔거립니다.

지난 주 목요일의 일이었습니다.

마실 수업이 있는 날이라

엄마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밭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이라 방학하기 전에

밭과 놀이터 주변의 풀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낫 질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베어 놓은 풀들을 옮기거나

호미로 풀들을 뽑았습니다.

어서 베라는 아이들 성화에

쉼 없이 풀을 베던 중에

따끔 하며 손 등이 저려옴을 느꼈습니다.

가시에 찔린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

벌에 쏘인 것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다 그만

낫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얼한 손을 몇 번 문지르고

낫을 다시 잡기 위해 다시 몸을 숙이는데

붕-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통증에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쳤습니다.

여기 저기 짚어보니

벌에 쏘인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를 잠시

눈 앞이 희미해지는 것이,

' 어? 이상하다? 몸이... '

괜찮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몽롱하고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 안되겠다. 병원에 가야겠다 '

다행히 엄마 선생님들이 계셔서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을 향하는데

서서히 온 몸이 붇기 시작하더니

이내 붉은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할 때쯤에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닝겔을 두 번이나 맞고

주사도 맞고 누워 있자니

그제서야 서서히 몸이 가라앉았습니다.

고향 말로 정말 시껍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붕- 소리만 들려도

고개가 절로 움찔해집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또 다시 한 식경이 지납니다.

뉘엇뉘엇 해가 집니다.

저 멀리 노을도 따라 번집니다.

옥길동의 노을은

언제봐도 꼬맹이들 볼 마냥 참으로 예쁩니다.

그 예쁜 노을에

휴가 때면 찾아오는

지병을 살짝 비춰줍니다.

행여 예쁜 노을을 따라

저 산 너머로 따라가지 않을까 싶어.

...

오늘은 여름 방학 첫 날입니다.

오늘은 휴가 지병 첫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