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외출
12월 31일
2001년 마지막 날입니다.
한통의 전화..
16살때 만났던 친구
22살때 헤어졌던 친구
32살이 되도록 보지 못했던 친구
10년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전화입니다.
오랫만에 외투를 걸쳐 봅니다.
오랫만에 평상복을 입어 봅니다.
오랫만에 구두를 신어 봅니다.
오랫만에 가슴 떨리는 외출을 합니다.
지하철역입니다.
광명역입니다.
소중한 책 한권을 꺼내서 읽습니다.
요란스런 소리..
지하철이 옵니다.
빨간 동 두개..
화물칸인가?
문이 열립니다.
화려한 조명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입니다.
두 눈이 왕방울 사탕이 됩니다.
왕방울 구슬이 자석에 달라붙듯
이끌리듯 걸어 듭니다.
빨간 크리스마스색입니다.
이슬같은구슬이 천정마다 가득입니다.
오색등이 케롤을 들려 줍니다.
다음칸으로 갑니다.
겨울나라에 온듯 합니다.
하얀천사가 흔들립니다.
예쁜 그림들이 창문에 가득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양
표정없는 얼굴들이 우습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한 열차에
너무나도 무표정한 사람들입니다.
웃기라도 하면 야단을 맞을것처럼
만지기라도 하면 터져 버릴 비누방울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쿵꽝되는 가슴을 가진
마술에 걸려벼린
우스운 사람들입니다.
창문이 없는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이 섰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지하철이 움직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보이는 곳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타임머신입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설동역입니다.
옷깃을 세우며 마음을 추스립니다.
하늘을 향해 오릅니다.
하얀세상이 열립니다.
눈이 내립니다.
하늘에서 하얀눈이 내립니다.
하얀 눈세상에 하늘이 살짝 엿보입니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하나도 변한게 없네"
"그래..너도.."
"뭐 먹으러 가자"
"그래.."
숫가락, 젓가락을 앞에 두고
10년이라는 시간을 바라봅니다.
변한것이 없다지만
너무나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미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린 친구..
10년동안 굶은 사람처럼
숫가락에 사연을 담고
젓가락에 웃음을 보냅니다.
눈이 옵니다.
눈이 오는 소리로 시끌시끌합니다.
"좀 걷자"
"그래.."
10년이라는 세월을 되짚어 걸어 봅니다.
새하얀 도화지가 깔리고
도화지 위로 지나간 기억들이 하나,둘씩 찍혀 갑니다.
"참 오랫만이구나.."
"그래.. "
흰눈이 그려 준 그림위로
세월이 그려 준 추억위로
타임머신을 타고 달려 온 오늘위로
하얀 발자욱만이 지나갑니다.
다시금 추억이 될 시간들입니다.
"나보다 먼저 죽기 없기다..
네가 죽으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
먼저 죽는다면
슬퍼할 친구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먼저 죽는다면
............
오늘은 12월 31일
2001년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2001년의 마지막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오늘
하늘눈이 펑펑 내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늘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오늘
택시를 타고 그렇게
다시금 1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친구의 모습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것같습니다.
오늘처럼
글을 쓰고 싶은 날은
오늘처럼
글을 쓸 수 없는 날은
절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