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 2010. 5. 4. 21:25

이 놈 저 놈 감기 걸린 녀석 수발 들다가

이 놈 저 놈한테 조금씩 조금씩 감기 기운 얻어

커다란 감기녀석 선생님에게 들어 앉았습니다.

이마에도 하나, 목에도 하나..

이마에 있는 녀석은 성질이 불같고

목에 있는 녀석은 걸걸합니다.

오늘은 쉬어 볼 참으로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아이들 쫄랑대는 모양만 반기는데

한 녀석 쫄래쫄래 달려와 안기며 하는 말

"선생님.. 오늘 힘이 없네요? 힘 줄까요?"

베시시 웃는 선생님 모양에

너도 나도 달려와 안기는데

한 녀석도 아니고 한 두 놈도 아니고

가만히 있으면 숨통이 막힐것 같아

이 놈 저 놈 겨드랑이를 간지는데

한 녀석 떨어지면 두 녀석 달려들고

두 녀석 떨어지면 네 녀석 달려드니

항우 장사라 한들 떨쳐낼 수 없을 듯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일어날께.. 힘 낼께.."

선생님 쉬는 꼴 못 보는 미운 녀석들

감기에 꿀물같은 고마운 녀석들

쉬어 볼 참으로 쉬이 쉬이 마음먹은 하루가

여느때 보다 더욱 극성맞은 수업이 되었습니다.

컬컬한 목.. 꼴깍 꼴깍 침 삼키며

아이들 웃는 얼굴에 궂은 얼굴 들어설 곳 없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오후 3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작은 녀석들 커다란 마음에

이 곳 저 곳 쑤신것 모르다가

집채만한 버스에 아이들을 몽땅 싣고서야

몸 뚱아리 천근 만근인 걸 압니다.

잘가라 바이 바이 손 흔들며

마지막 녀석 눈꼬리가 세기도 전에

고개가 떨구어지고 손 등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오늘은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야 하겠습니다.

걸음 걸음 옮기느라 땀투성이 흥건한데

몸 터에 형광등이 말썽이고

보일러가 말썽이고

이 곳 저 곳 둘러보니 속절없이 6시가 됩니다.

'조퇴 좀 해 볼까 했더니 벌써 6시네...'

대여섯 발자욱만 옮기면 퇴근이고

삐죽이 문만 열면 출근인데

조퇴 한 번 못해 본 것이 못내 서럽기만 합니다.

오늘따라 가시는 선생님들 너무나 반갑고

이러 저리 손 흔들고 천근같은 몸 뚱아리 누이니

나무침대 삐거덕 부러질 듯 요란합니다..

눈 감으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담배 한개피 들고서 현관문에 앉습니다.

어느새 검은 하늘 줄 줄 흘려내려

초록 언덕 검은 때가 가득합니다.

하얀 연기 피워 물고 하늘 한 번 바라보니

휘영청 밝은 달이 오락가락 숨바꼭질 합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찜질방 태평 할아버지처럼 옛노래도 읋어보고

"보름달 둥근 달 동산위에 떠 올라..."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때 눈물 흘리며 불렀던

보름달도 불러보고...

(그때 왜 울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얀 담배 연기속에 거뭇하도록..

무슨 청승 이런 청승

하늘이 컹 컹 대는 소리에

청승맞은 선생님 벌건 얼굴 추스리며

엉덩이 톡 톡 털며 일어섭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유치원 선생님이다!!"

고래 고래 고함 한 번 질러보고

누가 들을새라 현관문을 똑딱 잠금니다..

무쇠 팔 무쇠 다리 로보트 선생님..

일년이면 열 두달 감기에 몸살에 편도선에

골골 하는 골골 로보트..

오늘도 눈을 감고

아이들 얼굴 하나 두울 세고 나면

내일 아침에는 히죽대며 일어 나겠지...

이불을 포옥 뒤집어 쓰며 하루 해를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