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샘 2010. 5. 5. 14:13

햇볕이 구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밉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따스함인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심술궂은 센 바람에

햇살이 덮이고 햇살 모양 구름만 둥실거립니다.

겨울 내내 입었던 잠바를 걸치고 길을 나섭니다.

 

쑥부쟁이님들을 만납니다.

쑥부쟁이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광명을 사랑하는

주부 생태 동아리입니다.

 

“ 선생님~ 오늘은 소풍간다 생각 하세요~ ”

 

정겨움이 묻어나는 인사에

잠깐 해님이 고개를 내밉니다.

 

쑥부쟁이들과 향한 곳은

광명에 위치한 ‘영회원’ 이었습니다.

영회원은 강감찬의 19대 손녀인 민회빈의 묘 이름입니다.

민회빈은 인조 5년인 1627년 세자빈이 되었다가

소현 세자가 죽자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죽음과 함께 신분마저 박탈되어

변변한 무덤자리도 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숙종 44년인 1718년 무고함이 판명되면서

묘를 다시 복원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민회묘라 부르다

1750년 이후로 영회원이라 칭하게 되었다 합니다.

 

민회빈의 묘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들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결코 얼굴을 내밀지 않는 키 작은 생명들.

무릎 굽히고 허리 숙여

나를 낮추어야만

제 모습 그대로 다가오는 친구들은

마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나를 그만큼 작게 만들어야 만 했던

아이들을 보는 듯 합니다.

 

손가락으로 톡 누르면

노란 아기 똥 같은 액을 토해내는

애기똥풀.

새하얀 꽃 잎 안으로

곤봉 같은 예쁜 꽃술들을 자랑하는

개별꽃.

온 몸에 털이 많은 외국 사람들처럼

커다란 둥치 여기저기 솔잎을 내 보이는

니기다 소나무 등

코가 땅에 닿을 듯 작은 녀석에서부터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녀석들까지

만나고자 하면 늘 그곳에 있는 친구들을 만납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로 인해

계절도 몸살을 알아

제 철인지 분간을 못하고

여기 저기 피어나는 들꽃들의

끙끙 앓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으로 당연히 누리는 것들이

저만 생각한 욕심인 것이 많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절로 알게 됩니다.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까르르~ 깔깔~

웃음소리에 따라오는 바람은

참으로 기분 좋은 바람입니다.

뽀송뽀송한 아이들 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힘 센 바람 괜한 심술에

으스스 앞섶은 추웠지만

오늘은 제 스스로

키 작은 들꽃 된 마냥

살랑살랑 바람 따라

기분도 살랑거려 좋았습니다.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