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오징어
밤 공기가 시원합니다.
반바지에 슬리퍼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검은 하늘 넓은 하늘
그 하늘아래 시야를 막아 선
커다란 건물들이 우뚝 서 있습니다.
빽빽히 들어 선 집 들과 건물들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미로 속 생쥐마냥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걷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아버지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
방금 전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지하철 계단에 앉아 계시다던 아버지.
발 길은 저절로 지하철이 있는 차도로 향합니다.
계단을 내려 갑니다.
아저씨 한 분이 지하철 난간에 누워 계십니다.
"설마 아버지는 아니시겠지..."
술 취한 아저씨 한 분이 누워 계십니다.
어느 계단에도 아버지는 계시지 않습니다.
"혹시 길이 엇갈렸나?"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신거지?"
집 앞 수퍼로 향합니다.
가끔씩 수퍼 앞 의자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
"혹시 오늘도?"
막걸리 한 병에 오백원짜리 빵을 드시고 계시는 아버지.
오물 오물 빵을 씹으시면서
왠지 모를 슬픔을 씹고 계십니다.
"에이... 술 드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밥 먹는 중이다."
"식사 안 하시고 오셨어요? 그리고, 이게 밥 이에요? 술이지..."
입가에 작은 웃음을 만드시는 아버지
"저 컴퓨터 좀 하고 들어 갈께요"
고개만 끄떡이시는 아버지.
아버지를 뒤로 하고 피씨방으로 향합니다.
요즘은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게을러 진 것 같기도 하고
건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지금쯤 집에 들어 가셨을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웃음이 납니다.
오징어 생각에.
자정이 넘은 시간
자전거를 묶어 놓고 현관문을 엽니다.
아버지는 주무시는지 텔레비젼 소리만 들려 옵니다.
부엌 작은 밥상 위에 삶은 오징어가 놓여 있습니다.
초장과 함께.
저녁을 굶은 터라 전기밥통의 밥을 떠서
밥을 먹습니다.
우걱 우걱
말 그대로 소리가 납니다.
다음 날입니다.
여지없이 늦은 시간
부엌 밥상위에 또다시 오징어가 있습니다.
어제 저녁 그 모양 그대로.
"어제 분명 먹었는데?"
다시금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오징어는 항상 그 모양 그대로
밥상위에 놓여 있습니다.
막내동생과 전화통화를 합니다.
"아버지께서 매일 저녁 오징어를 삶아 놓으신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이제 그만 하라구.
말하지 않으면 계속 오징어만 먹게 돼.
난 쇠고기만 한 달을 먹은 적도 있어."
새벽이면 집을 나서시는 아버지.
큰 아들의 잠든 모습을 살짝 훔쳐 보십니다.
늦은 시간 집에 오는 아들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살짝 훔쳐 봅니다.
특별히 아들이 일찍 오거나
아버지께서 일을 나가시지 않으면
언제나 잠든 모습만을 보고
인사하는 부자지간입니다.
아들이 잘 먹는게 기특하여
오늘도 내일도 오징어를 사 오시는 아버지.
냉장고에 아들 먹는 오렌지 쥬스를
매일 사다 놓으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신물이 나도 오징어를 먹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에
식사하시는 모습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오물 오물 입을 움직이시는 모양이
흰머리 하얗게 할머니 되신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께서 오물 오물 하십니다.
그렇게 건장하시던 아버지께서.
기지게를 켭니다.
시계를 봅니다.
어느덧 한 시가 다 되어 갑니다.
내 삶은 참 행복하다 생각이 듭니다.
표현은 거칠어도
사랑 가득한 아버지가 계시고
언제나 배움을 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제 아버지께 가 봐야 하겠습니다.
잠드신 모습 살짝 훔쳐보며
아버지 사다 놓으신 오렌지 쥬스를
시원스레 들이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