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듯 없는 듯
점심 시간입니다.
교실을 닦기위해 걸레를 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식사를 마치면
부엌으로 달려 가 찬합을 헹구고
물 젖은 큰 걸레를 가지고 옵니다.
언제나 똑같은 일, 언제나 똑 같은 차례.
두 녀석이 커다란 물통을 낑낑대며 들고 옵니다.
'아! 양칫물이 없는 모양이구나!'
아이들이 들기에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도 한 물통.
그래서 당연히 선생님 몫으로 생각했던 물통.
선생님 생각일 뿐이었나 봅니다.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땀 방울만 줄줄이 흘리며 들고 옵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의자 위에 물통을 올리고
양칫물을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씨익 웃어줍니다.
친구들이 양치를 합니다.
큰 걸레로 교실을 닦다 말고
부엌으로 달려갑니다.
반찬보다 밥이 많은 녀석이
반찬을 찾는 까닭입니다.
반찬을 꺼내주고 교실로 옵니다.
아이들이 큰 걸레를 잡고 교실을 닦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다른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깨끗하게 닦고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구석구석 교실을 닦은 후에
선생님에게 걸레를 건네 줍니다.
씨익 웃습니다.
선생님도 씨익 웃습니다.
선생님의 할 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납니다.
시키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할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교사 연수를 위해 읽은 책 내용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교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해야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없어야 하며,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나누기 위해서는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도록 없어야 하며
함께 나누기 위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단지
인생을 먼저 산 경험자 일 뿐입니다.
시키기 위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함께하는 선생님입니다.
가르치기 위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므로 함께 배웁니다.
하루 하루 더해가는 시간속에서
선생님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필요로 할 때 있어 주고
스스로 할 때 지켜보고
때를 아는 것이 어른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어른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코끝이 찡하도록 실남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