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를 넘어

한바탕 싸우기

달봉샘 2010. 5. 5. 14:29

1. 전초전.

승합차에 1학년 녀석들을 태우고 YMCA로 향합니다.

1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얼굴에는 일곱 살 티가 그대로 남아있는 녀석들

녀석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합니다.

아마도 부모님들은 더하겠지요?

 

“ 선생님~ 첫 키스 해 봤어요? ”

 

애림이가 빙글 웃으며 묻습니다.

 

“ 해 봤지~ ”

 

“ 정말요? ”

 

“ 그럼~ ”

 

“ 언제요? ”

 

“ 스무 살 때! ”

 

“ 첫 키스가 뭐야? ”

 

콧구멍을 파던 정우가 시큰둥하게 묻습니다.

 

“ 뽀뽀보다 심한 거야~ ”

 

애림이가 동생에게 알려주듯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정우가 키득 웃습니다.

 

“ 선생님~ 첫 키스 해 봤어요? ”

 

정우 녀석이 재차 묻습니다.

 

“ 해 봤다니까~ ”

 

“ 언제요? ”

 

다른 녀석이 똑같이 묻습니다.

 

“ 스무 살 때~ ”

 

“ 선생님~ 여자 친구있죠? ”

 

“ 응~ ”

 

“ 그런데, 왜 결혼 안 해요? ”

 

“ 결혼 안 할꺼야~ ”

 

“ 왜요? ”

 

“ 결혼하면 잔소리하니까~ ”

 

키득 키득

녀석들이 웃습니다.

아마도 잔소리장이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아이들과 차에 함께 있을 때가 좋습니다.

차 안에서만큼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때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차만 타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 다 왔다. 내리자~ ”

 

교실에 들어섭니다.

들어서자마자 스케치북을 꺼내는 녀석들.

 

“ 선생님~ 그림 그려도 되죠? ”

 

손에는 이미 색연필을 든 녀석들이

허락을 얻는 것인지

알려 주는 것인지 헛갈리게 묻습니다.

 

“ 그래~ 10분 있다 시작하자~ ”

 

기타를 꺼냅니다.

전 주에 배운 노래를 불러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함께 부릅니다.

노래책을 펼쳐 세워 성가대처럼 부르지는 않지만

색연필을 손에 들고 밑그림에 색칠하며

옹알옹알 따라 부릅니다.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이제 수업할까? ”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정리하는 녀석들.

오늘따라 녀석들이 순순히 말을 잘 듣는 것이

신통방통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합니다.

 

“ 선생님이 달봉이 얘기 하나 해 줄게. ”

 

2. 달봉이 이야기

후닥닥 신발을 벗어 던지며 달봉이가 뛰어 들어옵니다.

 

“ 선생님~ 선생님~ ”

 

“ 왜 그러냐? ”

 

“ 선생님~ 나 오늘 나하고 너 배웠어요. ”

 

“ 나하고 너? ”

 

“ 네! 나는 나고 너는 너래요. ”

 

손가락으로 선생님을 가리키는 것이 영 기분 나쁩니다.

 

“ 너~ 지금 선생님보고 너라고 했냐? ”

 

“ 아뇨~ 그게 아니구요. 나는 나고 너는 너라구요. ”

 

“ 이 녀석아~ 선생님보고 너라고 하지마! ”

 

“ 그럼~ 너가 아니고 나에요? ”

 

“ 그건 아니지만... ”

 

“ 그러니까 너는 너죠? ”

 

녀석이 또 손가락을 세웁니다.

 

“너랑 얘기 안 해! ”

“ 그럼, 너랑 안 하고 삼룡이랑 하지 뭐~ ”

 

“ 이 녀석이? ”

 

달봉이가 삼룡이에게 달려갑니다.

 

“삼룡아~ 형이랑 나랑 너 놀이할래? ”

 

“ 어떻게 하는건데? ”

 

그림책을 뒤적이던 삼룡이가 달봉이를 보며 말합니다.

 

“ 응~ 내가 먼저 내 얘기를 하는거야. 그 다음에 네가 네 얘기를 하고. ”

 

“ 그리고는? ”

 

“ 그게 끝이야. ”

 

“그게 뭐야~ 재미없다. ”

 

“ 아냐~ 하면 재미있어. 내가 먼저 할게. ”

 

“ 안 할래~ ”

 

“ 아냐~ 하면 재밌어. 자~ 내가 먼저 한다~ ”

 

“ 안 할래~ ”

 

“ 나는 방귀뀌기를 좋아하고 코딱지 모으기도 좋아해. 그래서... ”

 

“ 안 한 대두? ”

 

“ 코딱지를 파서 색깔대로 병에다 넣었는데 빨간색 코딱지도 있어. 그건... ”

 

“ 안 한다고 했는데 왜 자꾸 하는거야? ”

 

“ 그건 코피 났을 때 판 코딱지라서 그래. ”

 

3. 한바탕 싸우기

 

“ 선생님~ 저도 할래요! ”

 

“ 그래? 그럼 해 봐~”

 

갑자기 정우가 끼어듭니다.

 

“ 별이 노란 이유는? ”

 

" 그건 네 얘기가 아니잖아~ “

 

“ 내가 할께요. 우리 집에서 안경 쓴 사람은? ”

 

왠일인지 지훈이가 얌전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합니다.

 

“ 아빠! ”

 

세 녀석이 한꺼번에 말합니다.

 

“ 딩동댕! ”

 

“내가 맞췄어! ” “아냐~ 내가 맞췄어.”

 

“ 지훈이가 말해봐~ 누가 맞췄어? ”

 

“ 세 명이 다 맞췄어~ ”

 

“ 그럼~ 세 명다 일점 씩! ”

 

갑자기 선생님이 점수를 매깁니다.

 

“ 나도 할래요. ”

 

정우가 또다시 말합니다.

 

“ 해 봐~ ”

 

“ 별이 노란 이유는? ”

 

“ 별은 원래 아무 색깔도 없어. ”

 

소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합니다.

 

“ 맞아. 별은 색깔이 없는 것 같아. 근데 왜 노랗게 보이는거지? ”

 

“ 해 때문에 그래. ”

 

한 녀석이 대답합니다.

 

“ 그래~ 그런 것 같다. ”

 

“ 나도 할래요~ ”

 

소정이가 말합니다.

 

“ 우리 집에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있는데 몇 살이게~? ”

 

“ 그걸 어떻게 아냐! ”

 

“ 맞아. 그걸 어떻게 아냐~ ”

 

소정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이내 말합니다.

 

“ 할아버지는 칠자로 시작하고 할머니는.... ”

 

두 녀석이 티격태격합니다.

밀었다 당겼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서더니 더 세게 밀고 당깁니다.

선생님은 말없이 보고만 있습니다.

이 때부터였습니다.

이 녀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어 다니고

이 편이 되었다 저 편이 되었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것이.

딴 때 같았으면,

 

“ 너희들~ 뭐하는거야! ”

 

하고 한 마디 했을 터인데

오늘은 가만히 녀석들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자기표현을 많이 하는 지훈이가 고마운 탓도 있었고

왠지 녀석들 하는 모양이 가슴 속 답답함이 터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애림이와 지훈이가 싸웁니다.

까랑까랑 목소리 큰 애림이 목소리가 울려납니다.

지훈이도 질세라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발이 오고 갑니다.

새하가 달려가 애림이를 말립니다.

소정이도 애림이를 말립니다.

대훈이는 가만히 앉아 녀석들 하는 모양을 봅니다.

소정이도 일어서더니 애림이 쪽으로 갑니다.

정의의 사도처럼 다가선 혜경이는 지훈이에게 달려듭니다.

정우도 질세라 아이들 틈으로 끼어듭니다.

목소리 작은 녀석이 없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선생님은 돌부처가 된 양

녀석들 눈에는 선생님이 안 보이는 양

아랑곳하지 않고 싸우기 시작합니다.

어떤 녀석도 힐끔이라도 선생님을 쳐다보는 녀석이 없습니다.

철저히 집중하는 녀석들입니다.

정우가 도망하고 혜경이가 쫓아갑니다.

책상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두 녀석들 안으로

애림이가 팔을 걷어붙이고

지훈이와 대훈이가 한 편이 되고

소정이도 애림이 편이 되고

유일하게 새하만 싸움을 말리면서

다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댑니다.

어른 싸움을 보는 것 같습니다.

녀석들 하는 말들이 모두 어른흉내입니다.

십 분이 지났는데도 열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 오늘은 한 번 마음껏 싸워봐라~ ’

 

선생님 마음에 요상한 녀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덥다고 현관문을 열더니 또다시 싸우는 녀석들.

저것이 마음껏 노는 것인지

저것이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녀석들 높게 지르는 소리에 귀 볼이 덜덜 떨리는 데도

선생님은 턱을 괴고 앉아 녀석들 하는 모양을 봅니다.

 

‘ 상처라도 나면 안 되는데... ’

 

염려되는 마음으로 신중히 바라봅니다.

그러기를 삼 십 여분!

말리기도 지쳤는지 새하가 밖으로 나갑니다.

소정이도 나가고

혜경이도 따라 나섭니다.

“ 그거 봐~ 그거 놓으라고! ”

 

어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현관을 내다보니 김창현 선생님이 아이들 싸움을 말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싸움을 말리던 새하와 소정이가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고 있습니다.

한 녀석이 손아귀에 힘을 주니

다른 녀석도 덩달아 힘을 줍니다.

 

“선생님~ 놔두세요. 싸우게~ ”

 

놔두라는 말에도 김창현 선생님은 아이들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릅니다.

김창현 선생님이 아이들을 놔 주자

녀석들이 서로 머리를 잡은 채로 교실로 들어옵니다.

손아귀에 힘을 주는 녀석들

아파서 서로 훌쩍 거리고 웁니다.

새하도 울고

소정이도 울고

헝클어진 머리를 애림이가 다듬어줍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고무줄을 혜경이가 주워줍니다.

 

“ 너희들~ 다섯 살 때부터 친했잖아~ 근데 왜 싸워! ”

 

제일 먼저 싸움을 했던 애림이가 두 녀석에게 한 마디 합니다.

새하랑 소정이는 엉~ 엉~ 울기만 합니다.

어느새 싸움을 시작한 지 사십 분이 지났습니다.

 

“ 모두 책상에 앉으세요~ ”

 

한참을 기다렸던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니

녀석들이 가만히 책상에 앉습니다.

 

“ 다 싸웠어요? ”

 

녀석들이 말이 없습니다.

지훈이는 어느새 만화책을 꺼내 가만히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녀석들이 조용합니다.

 

“ 조용하다~ ”

 

애림이가 한 마디 합니다.

 

“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는데... 화가나면 사람을 때리고 싶어져요? ”

 

“ 네~ ”

 

너도나도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 때리지 않으면 못 참겠어요? ”

 

“ 네~ ”

 

“ 왜? ”

 

“ ....... ”

 

“ 맞으면 어떤데? ”

 

“ 아파요~ ”

 

“ 내가 친구를 때리면? ”

 

“ 아파요~ ”

 

“ 친구를 아프게 하고 싶은 거 에요? ”

 

“ 네~ ”

 

“ 왜? ”

 

“ ...... ”

 

방과 후 학교

지도자 클럽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온 녀석들을 데려와

책상 앞에만 앉혀 놓으면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 마냥

아이들은 몸서리를 칩니다.

하루 종일 뭘 했길래

앉았다 하면 소리 소리를 지릅니다.

한참이 지나야 진정되는 녀석들.

선생님 머리 속이 복잡합니다.

이제 겨우 여덟 살 밖에 안 된 녀석들인데

1학년이고 2학년이고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아직 십 년도 되지 않은 녀석들을

책상머리에 앉혀 놓는 것이 참 답답합니다.

선생님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선생님 마음이 어찌되었건

아이들은 지금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단 십 분을 같이 하더라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말하고

아이들이 듣는 수업이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말하고 듣는

주고받음이 있는.

 

“ 수업해야지~ ”

 

애림이 목소리가 선생님 귀에 울려납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한바탕 신나게 싸웠습니다.

싸움은 말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더욱 나와 다른 너를 내 안에 들이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화를 그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 싸움이 단순히 싸움이 아니라

배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아이들은 내 안에 꽉 들어찬 무엇인가를 쏟아 부은 모양으로

텅 빈 모양으로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를 묶어주며

선생님 마음도 가지런히 다시 모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