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를 넘어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곱 살 희은이의 일기 " 질경이반 선생님~ ! " 뒤통수에서 누가 부를라치면 아직도 한 번씩 뒤돌아보는 이름! 이제는 호랑이 반도 질경이 반도 아닌 달봉이 선생님이 되었지만 아이들 목소리는 나를 항상 뒤돌아보게 합니다. 반이 없으니 호칭도 참 여러 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소속도 없는 그냥 아저씨에서 몸 수업 달랑 한 번에 몸 수업 아저씨가 되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 슬쩍 숨긴 손수건에 마술사라 불립니다. 이제는 언니들, 형아들 하는 모양으로 " 달봉아~ " 하고 동네 강아지 부르듯이 부르고 다닙니다. " 이 녀석아~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 달봉이 입에서 선생님 소리가 나와야지 선생님 소리를 붙여주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반마다 교실마다 한 다스 씩 쏟아져 나옵니다. 반은 없지만 반 없는 것이 오히려 더 .. 더보기 행복하세요? “ 선생님도 어린이였으면 좋겠다~ ” “ 왜요? ” “ 그럼, 걱정도 없을테니까~ ” “ 어린이도 걱정 있어요. ” “ 무슨 걱정이 있는데? ” “ 숙제가 얼마나 많은데요. ” “ 그래? ” “ 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 왜? ” “ 숙제 걱정 안 하게요. ” “ 그래? 그럼 우리 서로 바꾸면 되겠다. 그치? ” 삶을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아이들 노는 모양을 보면 세상 걱정 하나도 없는 녀석들처럼 보이지만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른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지고 있는 걱정만큼 커다래서 힘들기는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걱정이나 스.. 더보기 가을 타령 가을이면 가을 향이 짙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동장군인지라 제각각 제 향을 뽐내느라 분주하다. 그런데도 그 많은 향이 결코 독하지 않은 것은 자연만이 갖고 있는 조화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자연과 가장 닮은 모양이 바로 아이들이다. 하나하나 다른 녀석들이 엉켜 사는데 엉켜도 엉키지 않는 것이 아이들인데 제 풀에 스르르 풀리기 전에 주제도 모르고 풀어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부자연스러운 모양이 된다. 배움에 있어서는 아이, 어른이 따로 없는데 왜 나이를 먹어 갈수록 배움은 더디어만 가고 괜한 심통만 늘어 가는지 배움에 있어 가장 겸허해야 할 때가 나이 한 살 더 먹어가는 지금이 아닐까 싶다.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모가지에 힘 바짝 주고 버텨보았자 잔병만 하나 더.. 더보기 영화 이야기 내가 사랑에 대해 얘기한 거 기억나요?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나도 사랑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요. 본 적도 많아요. 수세기동안 봐 왔는걸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참는 것 밖에 없었어요. 언제나 최악이었죠. 고통에 거짓말 증오까지 그런 것들이 싫어서 다시는 보지 않았더랬죠. 인간들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이 전 우주를 샅샅이 뒤진다 해도 사랑만큼 아름다운 건 아마 찾지 못할 거에요. 그러니까 사랑에 조건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사랑은 예측할 수 없으며 제어할 수도 없으며 참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아요.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기가 이상하리만큼 쉽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 아무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내 가슴이 뭐랄까 그러니까 내 심장이 터질 것만.. 더보기 재미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를 쓰는 일은 시작과 끝을 함께 가는 길입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듯. 행사를 뒤로하고 또 다시 다가올 행사를 기다리며 자신을 반추해 봅니다. 흥분은 과정에 있습니다. 입을 통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에. 막상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간에는 흥분보다는 본능이,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곧 시작과 끝이 교차되는 시간입니다. 스스로 혼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워크홀릭(일중독자)이 아닌가 하는. 하지만 워크홀릭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 분명 내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흥분 바로 ‘재미’ 입니다. 때로는 이 재미를 혼자서 느끼기에 고독하기도 하지만 고독한 가운데 나누는 재미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똑 같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 더보기 내 소원은 언제였지? 2학년 녀석들과 고개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법한 철망 산에 올라 연필 글씨로 꾹꾹 눌러쓴 소원을 담은 조그만 병을 누가 볼세라 황급히 묻고 내려왔던 그 때가. 얼핏 생각해 보아도 어림잡아 네 달은 된 듯합니다. 이름 하여 ‘타임캡슐! ’ 오늘은 타임캡슐을 확인하러 가는 날! 과연 아이들 소원이 이루어졌을까 내심 기대를 안고 철망 산을 오릅니다. 낮아도 산은 산인지라 오르는 길 주변은 온통 가을 천지입니다. 가을이면 하늘이 높아져서인지 언덕 같은 산도 가을을 타서인지 덩달아 높아진 듯 생각보다 길도 가파릅니다. 정상에 채 오르기도 전에 정호의 숨찬 울림이 들려옵니다. “ 찾았다! 찾았어! ” 뼈다귀 냄새를 맡은 강아지 마냥 허겁지겁 땅을 파는 녀석들의 어깨가 들썩들썩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흙.. 더보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폴짝 폴짝 줄넘기를 넘는 아이들을 봅니다. 한 녀석은 솜털처럼 가볍게 땅에서 솟아오르듯 사뿐사뿐 바람처럼 출렁이는데 또 한 녀석은 쿵쿵 지진이 난 듯 발바닥이 깨져라 뜁니다. 가벼운 녀석은 열 번을 넘어도 숨결이 고운데 쿵쿵 땅을 부수는 녀석은 세 네 번에 혓바닥이 길게 땅까지 늘어집니다. 가만히 뛰면 콩콩 잘도 뛰는 녀석이 줄만 들었다 하면 온 다리에 체중을 싣습니다. “ 줄이 없다 생각해 봐! ” “ 발에 줄이 걸릴까봐 그래요. 걸리면 아프다구요 ” “ 그럼 안 아픈 줄로 하면 되겠네~ ” 마치 철로 된 갑옷을 입었던 녀석이 갑옷을 훌훌 벗어 던진 듯 발구름이 가벼워집니다. “ 거봐! 잘되지? ” 배드민턴을 칩니다. 커다랗고 동그란 그물망에 폭신폭신한 셔틀콕 머리를 맞춥니다. 그런데 커다란 곳에 작은.. 더보기 로봇 태권 V 오늘 드디어 태권 v를 완성했습니다. 짬을 이용하여 일주일 간 만든 태권 v 최초 머리가 만들어졌을 때 머리칼이 쭈삣 서더니 몸통이며 다리며 마치 미리 준비한 듯 준비물이 척척 손에 붙는 것이 어릴 적에 작은 본드를 발라가며 만들던 플라스틱 로봇이 생각납니다. 역시 로봇은 동심의 유기체인지 로봇 주위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장사진을 이룹니다. 아이들이 로봇이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움직인다고 답합니다. 어떻게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움직이고 싶다고 하면 선생님이 움직여 준다고 답합니다. 혼자서는 못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선생님이 도와주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답합니다. 리모컨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리모컨을 만들면 리모컨도 누르고 선생님이 또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고 .. 더보기 소풍 햇볕이 구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밉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따스함인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심술궂은 센 바람에 햇살이 덮이고 햇살 모양 구름만 둥실거립니다. 겨울 내내 입었던 잠바를 걸치고 길을 나섭니다. 쑥부쟁이님들을 만납니다. 쑥부쟁이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광명을 사랑하는 주부 생태 동아리입니다. “ 선생님~ 오늘은 소풍간다 생각 하세요~ ” 정겨움이 묻어나는 인사에 잠깐 해님이 고개를 내밉니다. 쑥부쟁이들과 향한 곳은 광명에 위치한 ‘영회원’ 이었습니다. 영회원은 강감찬의 19대 손녀인 민회빈의 묘 이름입니다. 민회빈은 인조 5년인 1627년 세자빈이 되었다가 소현 세자가 죽자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죽음과 함께 신분마저 박탈되어 변변한 무덤자리도 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숙종 44년.. 더보기 일요일 오후 느즈막히 일어났다. 오늘은 일요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남들은 한 겨울에도 찬 물로 샤워를 한다 하지만 난 한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찬 물로 샤워 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난 뜨거운 물로 샤워 하는 게 더 좋다. 찬물로 샤워하면 온 몸이 근질거리는 이유도 있다. 사서 한 번도 빨지 않은 운동화를 빤다. 아버지께서 잘못 알고 신고 나가신 이후로 신발이 엉망이 되었다. 그만큼 아버지 발이 고생을 한다는 증거다. 한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방 문 앞에 신발을 널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어린이 날 행사하느라 가지고 온 자전거를 타고 햇볕 속을 달린다. 지난 비에 채 마르지 않았던 자전거가 햇볕과 바람에 말끔해진다. 가다 보니 실내 체육관이다. 힘차게 밟던 패..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