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새 친구들 옥길동에 새 친구들이 왔습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새로 산 가방을 메고서 새로운 친구들이 버스에서 내립니다. 비틀비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이 어리둥절 어색함을 달래듯이 넓다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옵니다. 현관문에 아이들이 콩나물입니다.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는 콩나물 맨발로 손에 든 신발을 어찌할 줄 모르는 콩나물 아무 곳에나 철퍼덕 주저앉는 콩나물 아는 녀석은 아는 녀석대로 모르는 녀석들은 모르는 녀석대로 현관문에 커다란 콩나물 시루입니다. 분주할 것이 없는 아침입니다. 실실 웃음이 나는 아침입니다. "우리 친구는 무슨 반이에요?" "....................................." "무슨 반인지 몰라요?" ".............................. 더보기
바다 이야기 '바다'가 죽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비실 비실 잘 먹지도 않더니 잘 걷지도 않더니 계속 앉아만 있더니 며칠동안 설사를 하며 기운을 못차리더니 결국에는 다리를 떨며 온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부리나케 달려 간 동물병원에서 커다란 주사를 맞고도 기운을 못차리더니 아프다고 아프다고 소리치며 점 점 얼굴이 야위어 가더니 일요일 저녁에는 하얀 침을 밷어내며 그렇게 그렇게 쳐다 보더니 그래도 주인이라고 힘없는 몸뚱아리로 꼬리를 연신 흔들더니 월요일 새벽에 조용히 죽었습니다. 바다는 홍역이라는 병이 데려 갔습니다. 삽 한자루 들고 나섭니다. 하늘이가 따라 섭니다. 오늘도 햇님은 동그랗게 떠 올라 가만히 바라보는데 희망이는 말이 없고 하늘이도 말이 없고 쌓이는 흙무덤만 바라봅니다. 바다를 묻습니다. 바다가 좋아하.. 더보기
졸업 사진 졸업사진을 찍습니다.. "자.... 선생님 좀 쳐다보고.. 야 이놈들아.. 장난하지 말고 선생님 좀 보라니까. 아이 참.. V 자는 왜 그렇게 많이들 만들어? 졸업사진 찍는데 그건 왜 하는 거니? 좀 의젓하게 해 봐.. 이렇게 말야." "선생님.. 재미있게 찍어요.. " "그래요.. 멋있게 찍어요.." 그러네요.. 두 손 모으고 살짝 미소지으며 모두가 똑같이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 누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에도 한참이나 걸리겠네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네요 "좋아.. 그럼 마음대로 찍어 봐 자..그럼 찍는다.. 하나 두울 세엣!" 찰칵!! 네모난 사진기 안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봅니다. 장난꾸러기, 개구쟁이, 심술쟁이, 울보...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언덕으로 달음박질하는 녀석을 잡으러 .. 더보기
소리 익숙해진 소리가 있습니다. 자동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웅성웅성 사람들 소리 귀를 잡아당기는 음악 소리 핸드폰 소리 쇠와 쇠가 맞 닫는 소리 시끄러운 소리 옥길동 회관에서의 첫날 밤 밤새 깨어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소리입니다. 잠을 자다가 깨다가 잠을 깨다가 자다가 하룻밤을 보냅니다. 옥길동 회관에서의 둘째 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익숙한 소리를 찾습니다. 라디오를 켜고, 텔레비젼을 켜고 음악을 켜고, 기계소리를 켭니다. 옥길동 회관에서의 셋째 날 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갑니다. 무섭기도 합니다.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소리는 있습니다. 살아 있는 소리입니다. 옥길동 회관에서의 한해를 맞이하는 밤 라디오 소리도 들리지 않고 텔레비젼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입니다. 터벅터.. 더보기
인-라인 스케이트 드르륵.. 드르륵.. 바퀴가 구릅니다. 번쩍 번쩍 빛이 나는 바퀴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빛이 바퀴속에도 있습니다. 겨울방학이 끝이 났습니다. 방학내내 잠에 취해있던 아이들의 숨소리가 깨어 났습니다. 버스에서 아이들이 내립니다. 덩치만한 롤러브레이드가 아이들을 이끕니다. 기다란 장대비를 들고서 콩딱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갑니다. 달려가 한아름에 안아 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얀 겨울처럼 포근한 아이들입니다. 반가우면 너무나도 반가우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나 반갑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도 쑥스럽고 아이들도 쑥스럽고 선생님도 이상하고 아이들도 이상하고 선생님도 기다렸고 아이들도 기다렸고 선생님도 반갑고 아이들도 .. 더보기
버스 안에서 "얘들아.. 버스 타자.." 이름을 부릅니다. "다 탔습니다. 출발하셔도 되요." 버스가 출발합니다. "선생님.. 백 괴물 얘기 해 주세요.. 어저께 하다가 말았잖아요." "선생님도 듣고 싶은 게 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은 비가 조금 왔으니까 비 노래를 부릅니다. "호롱 호롱 호~롱 산새 소리에 잠 깨어 들로 나가니~...." "잘 했지요? 어서 얘기 해 주세요." "오늘은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다." "안돼요..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요." 오늘은 방학특강 마지막 날입니다. 다른 유치원을 다니다가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어서 잠깐 오게 된 회관입니다. "음.. 선생님은 마지막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또 만날 꺼야. 그래서 지금 헤어지는 것이 슬프지 않아.. 더보기
뽀뽀 귀신 뽀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안아 주는 것도 싫어 합니다. 손을 잡는 것도 싫어 합니다. 멀찌감치 서서 말하기를 원합니다. 멀찌감치 서서 얘기합니다. "선생님은 너를 사랑해!" 대꾸가 없습니다. 희망이는 심통이 납니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봅니다. '어떻게 하면 저 녀석에게 뽀뽀를 할 수 있을까?' 처음 보는 녀석들이 무릎아래 눈동자만 있을 때면 어느 녀석이고 간에 그렇습니다. 가만히 안아 줄라치면 엉덩이는 저 멀리 문 밖으로 도망가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불쑥 튀어 나왔을 때 두 눈을 찡긋하며 마음껏 첫울음을 터뜨렸을 때 '이 놈!' 하고 의사선생님이 혼을 냈나 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학기초에 처음 보는 녀석들이 무릎아래 눈동자만 있을 때면 어느 녀석이고 간에 그렇습니다. 슬금.. 더보기
대화 세인이입니다. 세인이는 이제 8살이 된 질경이반 친구입니다. 방학이지만 방학특강으로 선생님과 만나는 친구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선생님이 함께 합니다. 세인: 선생님. 선생님은 애들이 있으세요? 선생님: 있지.. 세인: 몇명이나 있어요? 선생님: 서른다섯명 있지.. 세인: 무슨 애들을 그렇게 많이 낳았어요? 선생님: 선생님이 낳은 애들이 아니라 질경이반 친구들이야.. 세인: 그런 애들 말구요.. 선생님 애들이요. 선생님: 결혼을 해야 낳지.. 세인: 결혼을 아직 안했어요? 선생님: 아직 못했지.. 여자친구가 있어야지.. 세인: 제가 아는 아줌마가 있는데요.. 결혼을 아직 못했어요 선생님: 결혼을 안 한 사람은 아줌마라고 하는게 아냐.. 아가씨라고 해야지.. 세인: 저는 아줌마라고 불러요.. 선생님: 그.. 더보기
자정에 면도하는 선생님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에 맡깁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줄기 한줄기 물줄기를 따라 새록 새록 아이들의 얼굴들이 스쳐 갑니다. 입 언저리에 비누거품을 칠하며 거칠어진 수염을 면도기로 쓱쓱 문지르며 지난 2박3일을 되 세겨 봅니다. 2002년 1월 11일 금요일 오늘은 캠프를 가는 날입니다. 방학특강 중간에 살짝 가는 캠프라 캠프시간까지 허둥지둥 바쁩니다. 마지막 특강 귀가차량을 타기 위해 수업시간이 끝나자 마자 문단속을 하기 바쁩니다. 강사 선생님들을 밀어내듯 환송하고 이박삼일동안 못 볼 용기하고 토토에게 큼지막한 양배추를 쫘~악 쪼개어 넣어 줍니다. 머리맡에는 팔둑만한 당근도 놓아 줍니다. 따뜻한 밥에 국을 말아 하늘이와 바다에게 건네 줍니다. 김이 모락 모락.. 바쁜 시간만큼 식지 않은 사랑입니.. 더보기
꼬마야 꼬마야 늦은 시간 옥길동 언덕을 오릅니다. 옥길동 언덕에는 가로등이 없습니다. 서너 발자욱을 걷다가 뒤를 돌아 봅니다. 가로등 불빛 밑으로 조그마한 세상들이 보입니다. 이 밤을 끈질기게 잡고 있는 네모난 불빛들도 보입니다. 가로등 불빛이 보여 주는 세상은 그 작은 세상은 밝고 어둡지 않지만 몇발자국 가지 못해 다시 시들어 버리는 철 지난 꽃과, 꽃과 같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손가락으로 살짝 가리워지는 조그만 달 하나.. 손가락보다도 작은 달이지만 옥길동 저 언덕 너머 겨울바람에 기침하는 작은 들꽃 하나 달빛에 물듭니다. 커졌다 작아졌다 달그림자 놀이 혼자서 하는 놀이입니다. 고무줄처럼 들쑥날쑥 쑥쑥 자라다가도 뾰로롱 작아져 버리는 달그림자 놀이입니다. 옥길동 회관입니다. 하늘이가 요란하게 짖어 댑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