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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

아기스포츠단에서 아이 바라보기

- 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 -

 

다툼이 생겼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가 거기에 덧붙여 마음 가득 억울함까지 가득 차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이러한 상황에 놓인 어린이의 마음보다는 이러한 상황에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곧잘 어린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양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 너는 왜 다른 사람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니"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어린이 마음속에는 억울함이 더욱 크게 자리하게 됩니다.

마음 안에는 상황에 대한 생각과 함께 억울한 감정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는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더 구분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나 슬플 때에는 특히 더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곧 다툼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다툼을 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각각 들어봅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때린 것도 상대가 먼저고 화를 내거나 나쁜 말을 한 것도 상대가 먼저입니다.

선생님이 직접 보지 못했다면 누가 먼저 그랬는지 말을 들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상대가 먼저 했다고 말하는 것은 먼저 하는 것이 나쁘고

나중에 한 것은 먼저 한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물론 생활습관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방법은 어른들의 다툼에 있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입니다.

사정없는 사람 없고 사연 없는 무덤 없듯이 말을 듣다보면 도대체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이 들기 때문에 만들어진 어른들의 다툼 해결 방법인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어린 아이들의 다툼에도 고스란히 내려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 싸움과 아이 싸움에서 확연히 다른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른 싸움을 중재하는 것은 규칙이고 법이지만 아이 싸움을 중재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경찰관이나 재판관과는 다른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도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되기 일쑤입니다.

 

" 쟤가 먼저 그랬다고 너도 꼭 그래야 하니? "

 

그럼, 나를 괴롭히는데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이것도 참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 누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니? 너도 똑같이 그렇게 하지 말고 앞으로는 선생님에게 또는 엄마에게 와서 말해줘. 친구가 괴롭힌다고 말이야. "

" 그러면 선생님이 또는 엄마가 친구를 혼내 줄 거 에요? "

 

" 친구가 너를 괴롭히지 않도록 잘 말해 줄게. "

 

이쯤 되면 다툼 하나가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위의 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마음 속 상태는 그렇게 편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각각의 아이들이 자기의 입장만을 하소연하는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생님 또는 부모는 두 아이의 하소연을 있는 그대로 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억울함이 있다면 억울함을 달래줍니다.

 

" 저런~ 정말 화가 났겠구나. 그래서 그렇게 속상한 것이구나. "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은 각각의 어린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상황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 할 것입니다.

선생님 또는 부모는 두 아이의 서로 다른 입장을 계속 들어 줄 것이고 들은 것에 대해 또한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면 감정과 상황이 조금씩 분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황만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납니다.

선생님 또는 부모는 각각의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해도 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수그러들어 마음속에 억울한 감정이 없다면 아이들 스스로도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판단은 아이들 몫입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줄 뿐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한 행동은 스스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정리하자면 아이들 다툼에 있어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결코 해결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해 오더라도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응원단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아이들 사이에서의 다툼은 늘 있는 일입니다.

늘 있는 것이지만 늘 있는 것을 그때마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이후 삶의 모습은 실로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른들의 질서가 판을 치는 어른들의 사회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잘못에 대해 정해진 벌을 받는 것이 우리들의 사회입니다.

돈이든 자유의 구속이든 잘못에 대한 벌은 엄격하며 냉정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배움의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움의 사회는 잘못에 대한 벌보다는 경험을 통한 배움이, 실패를 통한 배움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우리와 같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보다는 좀 더 살기 좋고 사람 사는 향기가 진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아기스포츠단이 어린이들과 함께 꿈꾸는 내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함께 공유하고 싶은 생각.

 

1. 내 아이만 키우지 말고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 내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는 일입니다. 반 아이들을 모두 내 아이로 생각해 주세요.

 

2. 아기스포츠단 생활 중 생긴 아이들의 다툼은 담임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해결할 수 있도 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