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핸드폰 알람이 울립니다.
“ 무슨 날이지? ”
핸드폰을 들여다 본 순간,
“ 아~ ! ”
여름 졸업생 캠프 때
졸업생 녀석들과 한 약속
캠프 아닌 때에 한 번 만나자는 약속
놀이 공원에 가자던 약속
그 날이 바로 내일입니다.
“ 이를 어쩌지... ”
내일부터 주말마다 행사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아빠들과 함께 하는 아빠랑 추억 만들기.
함부로 하지도
함부로 어기지도 않는 약속
더욱이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는 더더욱.
‘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에요~ ’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실망하는 표정도.
“ 음... ”
난감합니다.
어기고 싶어 어기는 것도 아니지만
나부터도 꼭 함께 하고픈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방법은... ’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전화는 해야 합니다.
“ 안녕하세요. 어머님. 질경이 반 선생님입니다.
예.. 다연이 좀 부탁드립니다. “
침이 꼴깍~
“ 선생님~ 약속 때문에 전화 하셨죠? ”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 응~ 그런데... ”
어쩔 수 없는 변명이라도
변명은 기구(崎嶇) 합니다.
“ 그런 게 어딨어요~ 다른 선생님보고 대신 가라고 하면 안 되요? ”
“ 응~ 그게 말야~ 선생님이 꼭 가야 하거든~ ”
“ 그럼~ 언제쯤 볼 수 있는데요? ”
“ 음... 한 달 정도 뒤에... ”
“ 그렇게나 오래 기다려야 되요? ”
녀석... 그래도 듣기 좋은 소리만 하네...
“ 그럼.. 어떻하지? 오늘이라도 만날까? ”
“ 아~ 선생님~ 오늘.. 실내체육관에서 평생학습 축제하는데요~ 윤도현 밴드가 온데요~ 거기 같이 가요 ”
“ 아~ 거 좋다. 그러자~ ”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화합니다.
문제는 서울로 이사 간 지수인데...
지수가 과연 올 수 있을까...
다행입니다.
지수도 올 수 있고
예진이도 올 수 있다 합니다.
내일 약속이 오늘 약속이 되었습니다.
함께 가자던 놀이 공원은 못 가지만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역시.
약속 시간 중간에 걸쳐있는 축구 수업을 마치고
실내체육관으로 향합니다.
줄지어 선 자동차 행렬을 보니
사람 수는 가히 짐작이 갑니다.
다행히 약속 시간에는 늦지 않았습니다.
“ 선생님~ ”
달려오는 녀석은 다연입니다.
“ 다른 애들은 아직 안 왔어요? ”
“ 응~ ”
가까운 곳이라 다연이 가족들도 모두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
“ 예~ 나중에 연락 드릴께요 ”
예진이도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지수는 차가 막혀 조금 늦는다고 합니다.
“ 선생님~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
“ 지수 오면 가자~ 선생님도 배고프다 ”
유치원을 졸업한지 삼 년
훌쩍 훌쩍 자라서 이제는 3학년이 된 녀석들이지만
언제 만나도 일곱 살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 이야~ 사람 정말 많다. 사람구경 온 것 같다~ ”
손을 꼭 잡습니다.
잃어버리기에는 큰 녀석들이지만
잃어버릴까 보다는 반가운 마음에서입니다.
“ 선생님~ 저녁 뭐 먹을 거에요? 고기 먹어요. 우리... ”
“ 고기 좋지~ 어떤 고기? 고등어? 멸치? ”
“ 아니~ 그런 고기 말구요~ ”
“ 아~ 쇠고기? 돼지고기? ”
“ 네~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
“ 좋아~ 그러자~ 지수 오면... ”
“ 아~ 지수가 언제오지? ”
지수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자동차가 너무 많아
지수만 먼저 체육관 입구에 내린다는.
“ 지수야~ ”
멀뚱히 선 녀석을 보니
분명 지수입니다.
서울하고도 강북으로 이사 간 지수.
멀리 있는 녀석일수록
보고픔은 더욱 큰 법입니다.
“ 밥 먹으러 가자~ 밥 안 먹었지? ”
“ 네~ ”
돼지 고기 집입니다.
아이들 셋과 어른 하나
돼지 고기 7인분을 앉은자리에서
게 눈 감추듯 먹습니다.
“ 너희들은 분명 돼지가 확실해~ ”
“ 그럼, 선생님도 돼지 선생님이에요 ”
“ 돼지 선생님과 돼지 제자~ ”
“ 헤헤헤~ ”
올챙이배가 되었습니다.
“ 선생님~ 배불러서 걷지도 못하겠어요~ ”
“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막 먹으래? ”
“ 선생님이 먹였잖아요~ ”
“ 내가 언제 먹였냐? 난 먹으라고 준 것 뿐이야~ 먹은 건 너희들이구~ ”
일곱 살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수다쟁이 녀석들과
수다쟁이 선생님~
싸우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서로 지지 않으려고 조잘조잘 대는데
입 언저리에는 웃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 우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앉을 자리도 없네~ ”
가슴을 울려대는 음악 소리와
시끄러운 엠프 소리.
“ 우리 다른데 가자~ ”
“ 어디요? ”
“ 게임 하러~ ”
“ 게임~ ”
“ 응~ 저기 가면 보드 게임 장인가 뭔가 있더라~ 재밌데~ ”
“ 정말 요? 당장 가요~ ”
평생 학습 축제가 있다 하여
윤도현 밴드가 온다하여
실내 체육관으로 모였는데
다른 곳에서 저녁 먹고 다른 곳으로 놀러갑니다.
함께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까.
“ 도대체 보트 게임 장이 어딨어요? ”
한참을 걸었는데도 계속 걸으니
배부른 녀석들이 시비를 겁니다.
“ 보트 게임장이 아니라 보드 게임장이야~ 그리구 이제 다 왔다~ 저기야~ ”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정작 있어야 할 게임장만 없습니다.
“ 이상타~ 분명 보드게임이라 써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서질 않네~ 혹시? ”
“ 혹시 뭐요? ”
“ 혹시~ 으흐흐흐~ ”
“ 캬~ 하지 마요~ 재미없어요~ ”
한참을 걸어 결국 간 곳은 노래방입니다.
고기 먹고 노래방이라...
어른들 만났을 때랑 똑 같은 코스네?
허 참~ 이래도 되는지...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들어본 적도 없는 노래들입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건 어찌 된 것인지 전부 가요 일색입니다.
“ 그 노래들... 어디서 배웠어? ”
“ 텔레비전 하구요 마트에 가면 나와요 ”
‘ 그래~ 길거리에서도 들리니 절로 알게 되겠네~ 그런데도 왜 나는 모르지? ’
아이들은 어른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은 아이들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 목소리도 이상하고
선생님 목소리도 이상합니다.
“ 애들이 왜 어른 노래만 부르냐? 애들 노래 좀 불러라~ ”
즐겨 듣던 음악이 나옵니다.
동요입니다.
아이들이 동요를 부릅니다.
“ 역시 아이들은 동요를 불러야 돼. 목소리가 딱 맞잖아? 예쁘구~ ”
어느덧 시간이 저녁 10시를 넘습니다.
“ 아니~ 시간이 벌써? 애들아~ 이제 가야겠다~ ”
“ 재밌었다. 히히~ ”
“ 선생님~ 우리 또 언제 만나요? ”
“ 글쎄? 다음 달에는 남자 친구들 만나기로 했으니까... ”
“ 효흔이랑 정아도 보고 싶다면서요~ ”
“ 그래~ 그렇지~ ”
“ 그럼, 그 때 우리도 다시 만나요? 네? ”
“ 그래~ 그러자~ 선생님이 연락할게~ ”
“ 네~ 좋아요~ ”
또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쉽게 하는 약속
하지만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약속
아이들과 하는 약속은 그런 것입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약속
하지만 절대 어기고 싶지 않은 약속...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이런 시간도 잘 못 내겠네?
마누라가 싫어 할 꺼 아냐...
아냐.. 마누라와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지...
아니...이게 뭔 생각이람?
누가 내 마누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문제로 골치 좀 아프겠다 생각하니
괜시리 미안 해 집니다.
그러면서 웃기기도 합니다.
아직 있지도 않은 마누라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갖다니...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장가를 못 가나 봅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 하루는 약속을 잘 지킨 하루였습니다.
아이들을 만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이제 다리 뻗고 마음 편히 자야겠습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참새 (0) | 2010.05.05 |
---|---|
은행 잎이 구릅니다. (0) | 2010.05.05 |
선생님의 여자 친구 (0) | 2010.05.05 |
생활 나눔 (0) | 2010.05.05 |
선생님 뽑기 (0) | 2010.05.05 |
향수 (0) | 2010.05.05 |
달봉이는 살아있다! (0) | 2010.05.05 |
욕심 (0) | 2010.05.05 |
휴가지병 (0) | 2010.05.05 |
더위와 밤이 만났을 때 (0)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