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선생님 뽑기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찬찬히 보다

생뚱맞게 묻습니다.

“ 어떨 때 선생님이 싫어? ”

한 녀석이 톡 하니 튀어나옵니다.

“ 화 낼 때요. 화 낼 때 정말 싫어요. ”

“ 선생님이 화를 잘 내? ”

“ 네~ ”

으잉?

“ 내가 언제 화냈다고 그래! ”

“ 저번에도 화나서 우리 벌 세웠잖아요. ”

“ 화나서 벌 씌운 게 아니라 잘못해서 벌 씌운 거야. 그리고 화 안 났었어. ”

“ 거짓말! 화 났었잖아요! ”

한 녀석이 튀어 오르니

덩달아 여기 저기서 튀어 오릅니다.

와~ 억울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도 억울한 게 많나 봅니다.

“ 그럼~ 너희들이 선생님 해 볼래? ”

“ 네~ 우리가 하면 그렇게 안 해요 ”

“ 그래? 그럼 누가 선생님 해 볼래? ”

“ 저요~ ” “ 저요! ”

배추밭에 배추 오르듯 손들이 쑤욱 쑥 올라옵니다.

“ 좋아~ 그럼, 선생님 한 명을 뽑도록 하자! ”

이렇게 해서 시작된 선생님 뽑기는

선생님의 호기심과 아이들의 기대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 선생님이 되면 어떻게 할 껀데? ”

처음으로 손을 든 살아있는 재용이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 시끄러우면 조용히 해! 하고 말하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엎드려뻗쳐! 할 꺼 에요. 그리고 자유 놀이 안 하고 앉아 있으라고 할 꺼 에요 ”

“ 그래? 알았어. 재용이가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 재용아! 친구들이 네가 선생님 되는 걸 원하지 않나 봐~ ”

“ 다시 할 께요. 다시~ ”

결국 살아있는 재용이는 다시 하지도 못하고

두 번째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 줍니다.

두 번째 나온 녀석은 목수 동영이 입니다.

“ 마음대로 하게 할 꺼 에요. 자유놀이 하고 싶다면 자유놀이 하게 하고 밖에 나가고 싶다면 밖에 나가라고 할 꺼 에요! ”

일곱 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손을 듭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스스로 민재도 말하고 친절한 효민이도 말했지만

친구들이 가장 손을 많이 들어 준 목수 동영이가 선생님이 됩니다.

“ 자~ 지금부터 목수 동영이가 선생님이다. 목수 동영이가 선생님이니까 동영이 선생님 말을 잘 들어줘야 돼. 알았지? ”

“ 네~ ”

친구들 대답이 끝나자 마자 동영이 선생님이 말합니다.

“ 나한테는 반말해도 돼. 자~ 자유놀이!! ”

동영이 선생님 말이 끝나자 마자 아이들이 흩어집니다.

동영이 선생님도 베란다로 달려나갑니다.

어른 선생님도 선생님이 된 동영이를 따라 나섭니다.

‘ 어디~ 선생님 노릇을 어떻게 하는지 잘 봐야지~ ’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동영이 선생님을 쫓아갑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된 동영이는 친구들 속에서 함께 놀기만 합니다.

‘ 저 녀석이 까 먹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물어 볼 수도 없고... 계속 기다려봐야겠다~ ’

한 녀석이 뛰어 옵니다.

몸 사랑 민재 입니다.

“ 사이좋게 재웅이가 나 때렸어! ”

몸 사랑 민재 뒤로 사이좋게 재웅이가 따라옵니다.

사이좋게 재웅이를 본 동영이 선생님이

사이좋게 재웅이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합니다.

“ 때리지 마! ”

키득 키득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 사랑 민재도

사이좋게 재웅이도 알았다는 듯이 그냥 가버립니다.

‘ ? ’

다시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영이 선생님도 역시 아까 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어울려 놉니다.

생명 건욱이와 슛돌이 지호가 뛰어옵니다.

“ 나 밥 먹기 싫어! ” “ 나도!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영이 선생님이 말합니다.

“ 그럼, 먹지마! 대신 배고프다고 하지마! ”

“ 알았어! ”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한 마디면 해결이 되고 아이들도 돌아갑니다.

‘ 거 참... ’

친절한 효민이가 울면서 동영 선생님 있는 곳으로 옵니다.

뒤따라 친구사랑 가현이가 옵니다.

“ 미안해~ 모르고 그랬어~ ”

친구사랑 가현이가 친절한 효민이 등을 만지며 말합니다.

“ 싫어~ 그래도 안 믿어! 엉~ 엉~ ”

너무 아픈 나머지 사과도 받지 않는 친절한 효민이.

그런데, 동영이 선생님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동영이 선생님 옆에 있던 살아있는 재용이가 끼어 듭니다.

“ 미안해하면 다냐! ”

살아있는 재용이 말에 힘을 입어 친절한 효민이가 훌쩍이면서도 말합니다.

“ 화 다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지~ 미안해하면 다냐! ”

무지개 승하도 친절한 효민이 편을 들어줍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친구사랑 가현이도 은근히 화가 납니다.

친구사랑 가현이가 화를 내며 획 토라져서 가버립니다.

그런데도 동영이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양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 동영이 선생님 있는 쪽에 있어야 할까... 아니면 친구 사랑 가현이 쪽으로 가 봐야할까? ’

어디로 따라갈까 고민하는 와중에

친절한 효민이가 친구사랑 가현이 손을 잡고 말하고 있습니다.

“ 화 풀어~ ”

친절한 효민이의 다소 주눅든 모습에

힘을 얻은 친구사랑 가현이도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말합니다.

“ 집에 가고 싶어. 다른 유치원가서 다른 친구들 사귈 꺼야! ”

친구사랑 가현이 말에

친절한 효민이가 가현이 등을 계속 쓰다듬어 줍니다.

‘ 이거..어떻게 해서 분위기가 역전되었지? ’

결국 친구사랑 가현이와 친절한 효민이의 다툼은

친구사랑 가현이의 일방적인 삐짐으로 한참을 흘러가다

스르르 저절로 풀리고 맙니다.

친구사랑 가현이 말로는 점심시간 천천히 도원이가 사과를 나눠줘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고 합니다.

다툼이 생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마음을 합쳐갈 때에도

선생님이 된 동영이는 하던 놀이에만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많은 말이 필요 없고

때로는 말조차도 필요 없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잘 아는 것이

이러한 때를 잘 알아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선생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동영이 선생님은 여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기에

여자 친구들 문제에는 끼어 들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어른 선생님 눈에는

동영이 선생님의 모든 행동이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납니다.

뱃속에서는 꼬르륵~ 밥 달라 보채는데

아이들은 밥 먹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슬그머니 동영이 선생님 곁으로 갑니다.

“ 아이구~ 배고프다. 다른 반은 밥 먹고 청소도 끝났는데 우리는 언제 밥 먹나? ”

마침 오늘 반찬을 준비해 온 꼼꼼이 주영이가 옵니다.

“ 점심 언제 먹어? ”

“ 이리와 봐 ”

동영이 선생님은 꼼꼼이 주영이를 데리고 밥통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 밥통이 아직 보온으로 가지 않았어. 더 놀아도 돼. ”

깜빡 잊고 밥통 코드를 늦게 꽂아

아직도 취사상태에 놓인 밥통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생각으로는 어지럽혀진 장난감이나 블록들을 정리하다 보면

밥도 될 것 같은데 동영이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밥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뱃속에서는 여전히 꼬르륵 꼬르륵...

드디어 밥이 다 되었습니다.

동영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 정리! ”

그런데, 아이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 하고 놉니다.

선생님이 된 동영이와

오늘 반찬을 싸 온 꼼꼼이 주영이만 정리를 합니다.

어른 선생님 같으면

정리 안 하는 녀석들은 불러 계속 정리를 시키겠지만

동영이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어른 선생님이 조금씩 정리를 도와줍니다.

이때, 놀던 한 녀석이 뛰어와 동영이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 널뛰기 어떻게 하는 거야? 잘 안 돼! ”

정리를 하던 동영이 선생님은 친구를 따라 베란다로 나섭니다.

널뛰기를 하려는 녀석들에게 널뛰기하는 법을 가르쳐 준 다음

다시금 들어와 정리를 합니다.

정리하는 시간에 널뛰기하고 놀고 있는 녀석들을 도와주다니...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이 다시 들어와 정리를 하다니...

어른 선생님으로서는 도저히 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이 선생님입니다.

모든 장난감을 정리할 동안 다른 아이들은 계속 놀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영이 선생님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

도시락을 꺼내는 녀석들.

시끄러운 가운데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반찬을 가져가고

밥을 먹습니다.

밥 먹다 말고 뛰어 노는 녀석

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만 계속 하는 녀석

어느 녀석에게도 동영이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때로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해야 한다는 것처럼.

밥을 먹고 난 후 청소 역시 한 두 녀석만 합니다.

이것도 누가 하라 누구누구가 하라

시키지 않으니 당연히 아무도 안합니다.

그런데도 청소 하는 녀석이 있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른 선생님이

말 없이 빗자루를 잡고 교실을 쓸고 있는데

한 녀석이 다가오며 말합니다.

“ 도와줄까요? ”

도와준다?

‘ 교실 청소는 네 일도 되는 거야, 이놈아! ’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꿀꺽 삼키며

되새김질한 말을 꺼내 놓습니다.

“ 하고 싶으면 해도 돼! ”

“ 하고 싶지는 않아요! ”

그러면서 휙~ 가버리는 녀석.

결국 청소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청소를 마치니 집에 갈 시간...

“ 자~ 가방 갖고 모여라~ ”

어른 선생님이 다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선생님 앞으로 모입니다.

“ 동영이 선생님은 앞으로 나와서 앉아라~ ”

목수 동영이가 선생님 옆에 앉습니다.

“ 오늘 동영이 선생님 어땠어? ”

“ 선생님보다 훨씬 좋아요~ ” “ 맞아요~ ”

“ 뭐가 더 좋은데? ”

“ 마음대로 하게 하잖아요. ” “ 맞아요~ ”

“ 그래~ 선생님이 볼 때도 동영이 선생님이 훨씬 낫다. 참 잘했다. 모두 동영이 선생님에게 박수~ ” “ 짝짝짝 ”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그 어느 곳에서 이 아이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 마음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이제껏 아이들에게 ‘ 마음대로’ 라는 말을

함부로 써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역시 같은 아이가 더 잘 압니다.

어른인 선생님이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는 것

그래서 동감하고 공감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아이들 선생님이라고 앞에 선 것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이들 주인인 아이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어느 곳에서 이 아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유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자유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아이들을 자유롭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

법과 질서와 규칙과 배려와 용서가 있는 이유가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라면

그 자유가 어떤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단 한 명의 어른 제자가,

스무 명 아이들 선생님으로부터

진정 ‘ 자유 ’ 가 무엇인지를

통째로 보고 배운 날입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에 빠진 달봉이  (0) 2010.05.05
아침 참새  (0) 2010.05.05
은행 잎이 구릅니다.  (0) 2010.05.05
선생님의 여자 친구  (0) 2010.05.05
생활 나눔  (0) 2010.05.05
약속  (0) 2010.05.05
향수  (0) 2010.05.05
달봉이는 살아있다!  (0) 2010.05.05
욕심  (0) 2010.05.05
휴가지병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