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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향수


향수(鄕愁)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풀씨 학교 선생님 방에 앉아 있으며

더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없는 옥길동 회관 풀씨 학교 선생님 방에

컴퓨터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향수(鄕愁)는

고향 떠난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래 전이라 하기에는

불과 몇 해되지 않은 옥길동 기숙(寄宿) 추억이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비 온 뒤 맑고 밝아진 세상처럼

선명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정적' 입니다.

옥길동의 고즈넉한 정적!

가만히 귀 기울이면

허공을 나는 작은 모기의 웅얼거림이 들립니다.

간간이 들여오는 개 짖는 소리...

메아리처럼 회관을 울리다가

점점이 커졌다 아렴풋하게 작아집니다.

가만히

좀 더 귀를 기울이면

코를 통해 불풍나게 들락거리는

바람소리도 들을 수 있고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내 안으로 발을 디디면

벌컥 벌컥 물 마시듯

요란하게 튀어 오르는 맥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소를 타듯 규칙적으로 느껴지는 박동(搏動)을 타고

물 흐르듯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옥길동 회관에 묻어있는 살 비빈 흔적들이

하나 둘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마냥 희뿌연 그림이 그려집니다.

파도치듯 일렁이고

초점을 맞추듯 이리저리 어그러지다가

책받침처럼 쭈욱~ 쭉 펴지면

조그만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시냇물 마냥 졸~졸~

암탉 쫓는 다리 짧은 병아리 마냥

선생님 뒤만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아이들이 나타납니다.

쉴새없이 벌어졌다 닫히는 입을 보면

소리보다 웃음이 항상 앞섭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를 생각하면

대부분 소리에 집중되지만

이렇듯 가만히 떠 올려보면

아이들의 모양새가 유독 잘 보입니다.

작은 옷가지 사이사이 구멍으로 빠져나온

얇고 짧은 팔이며

도톰하면서도 앙증맞은 손.

가장 큰 구멍으로 불쑥 솟은 머리와

그 머리에서 가장 큰 얼굴

그 얼굴에서 가장 큰 눈

그 눈에서 가장 큰 눈동자

검지만 빛이 나는 눈동자

그 눈동자 속으로 빠져듭니다.

우스개로 지어내는 만득이 이야기 속에

변함 없이 등장하는 눈 길 마음 길을 따라,

겉으로 보나 안으로 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음' 으로 갑니다.

마음에 도착하면

언제나처럼 들려오던 목소리는 간데 없고

눈동자의 주인 같고 마음의 주인 같은

똑같은 아이 하나 서 있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나만 바라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무엇이 아이를 간절하게 하고

무엇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지.

황당 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옥길동 회관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흔적은

옥길동에서 살았던 어떤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되어 주곤 하였습니다.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밤이 되면

문이 닫히듯 창 밖은 어둠으로 가득 차고

밖을 비추던 창은

안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렇게 하루를 비추며 살았던

옥길동의 향수는

선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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