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강아지 없는 방학

한 녀석만 남았습니다.

" 준형아~ 집에 안 가니? "

집에 가는 시간이면 가장 먼저 가방 들고 나가던 녀석이

오늘따라 일어설 줄 모릅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나갔는데도.

두 다리 쭈~욱 펴고 앉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네킹처럼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 준형아~ 차 떠날 것 같애. 어서 가자~ "

그래도 준형이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평상시와 같은 것은 있습니다.

못 들은 체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방학하는 날입니다.

끝끝내 일어설 줄 모르는 녀석을

얼음판에서 엉덩이 쓰케이트를 타듯

끌고 나옵니다.

" 자~ 다 왔다. 이제 신발 신자~ "

그런데도 꼼짝을 하지 않는 녀석입니다.

' 왜 이러지? 이 녀석이? '

버스는 부릉부릉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옥길동 언덕에서 주운 커다란 구슬 하나를 꺼냅니다.

책상 서랍 속을 이리 저리 굴러 다니기만 하던 구슬입니다.

" 준형아~ 잠깐만 이리와 볼래? 선생님이 보여 줄 게 있어. "

바닥에 엉덩이가 붙은 줄 알았던 녀석이

후다닥 일어나 따라옵니다.

" 이거~ 방학동안 가지고 있을래? 겨울 구슬인데.... "

" 겨울 구슬이 뭐에요? "

" 겨울에 태어난 구슬이야. 준형이가 방학동안 잘 간직해 줄래? "

준형이 손에 꼬옥 쥐어 줍니다.

구슬을 손에 쥔 녀석은

씩~ 한 번 웃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발을 신고 뛰어 나갑니다.

녀석~

창이 어두워 아이들 모양이 보이지 않는 버스를 향해

촛점없는 눈으로 손을 흔듭니다.

버스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흔들던 손은

버스가 사라져도 내릴 줄 모릅니다.

왠지 손 내리기가 쑥쓰럽습니다.

외투를 입고 나섭니다.

옥길동 구멍가게로 갑니다.

호주머니 속으로 동전을 만지작거립니다.

오늘은 옥길동 강아지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입니다.

강아지라 하기에는 덩치가 커다란 녀석들이지만

개라고 하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옥길동에 학교가 세워지면서

늘상 학교와 함께 있었던 강아지들.

강아지 배 고플까 걱정 되어

휴가도 가지 않고 학교를 지켰던 여름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강아지들에게는 비싼 참치 캔을 사 주기도 했었지만

잘 먹어봤자 하루에 두 끼 먹는 옥길동 강아지들은

늘 배 고픈 강아지들이었습니다.

토실토실 살찌지 못해 비쩍 마른 모습이

마음에 돌덩이 앉은 것 마냥 힘들었는데

이제는 큰 시름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가가 생기거나 수련회가 잡히면

강아지 생각부터 들던 마음을

이제는 편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털이 복실복실한 복실이와

외국 물 먹은 커다란 파트라슈는

학교 입구에 있는 재활용센터 아저씨들이 키우기로 하셨습니다.

사람만 보면 비행기 푸로펠라마냥 꼬리를 흔들어대던

발발이는 옥길동에 사는 볍씨 친구 병효네가 데리고 갑니다.

참치 캔 세 개와

불량식품이지만 오 백원짜리 소세지를 하나 삽니다.

혹시 발발이가 참치를 싫어하면 대신 주려고.

태어나 한번 도 참치를 먹어본 적이 없는 발발이는

신기한 모양과 잘잘 기름 흐르는 윤기에

처음에는 으르렁 경계를 하였다가

코 끝을 찌르는 구수한 냄새에

코를 박고 먹기 시작합니다.

" 많이 먹어. 내가 주는 마지막 음식이야! "

곱슬이와 파트라슈에게도 던져 줍니다.

아이들처럼 입가에 묻혀 가며

우걱 우걱 먹습니다.

먹을 것만 보면 앞, 뒤 가리지 않는 곱슬이는

머리 위에 별의별 음식 찌꺼기를 얹고 있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녀석이라

머리 위로 음식이 떨어져도

떨어지는 음식 받아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파트라슈는 아무리 배 고파도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밥 먹다가도 더 주면 머리를 빼고 기다릴 줄 아는 녀석입니다.

" 선생님! 카트라수는 미국 개에요? "

발음이 어려워 늘상 카트라수라고 부르던

꼼꼼이 주영이가 생각납니다.

" 카트라수가 아니라 파트라슈라니까~ "

" 알아요~ 카트라수~ "

병효 어머니께서 발발이를 데려 가십니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발발이는

안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고개 돌려 쳐다보는 모양이

바늘로 찌르듯 선생님 마음에 콕 찍힙니다.

" 발발이는 걷는 걸 싫어해요. 안고 가셔야 되요. "

발발이 없는 강아지 집에

휘~잉 바람이 이사를 왔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재활용 센터 개 집에 앉아 있는

복실이와 파트라슈를 봅니다.

남의 집에 앉아 있는 것 마냥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있는 모양이

역시 선생님 마음을 바늘로 콕 찌릅니다.

" 휴가 때 여행이나 함 갔다 와~ 혹시 알아? 좋은 인연이라도 생길지..."

혼자 지낼까 봐 걱정 해 주시는

기사 선생님의 말씀에 웃음으로 답합니다.

이제 옥길동에는 강아지가 없습니다.

옥길동 언덕을 오를 때면

컹컹 짖어대던 메아리를

이제는 기억에서만 꺼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저 녀석들은 어떻하지요? "

선생님 한 분이

차량 기지 난간 밑에 웅크리고 있는 개들을 가리킵니다.

하얗고 시꺼건 강아지 세 마리가

또아리 튼 뱀처럼 몸을 웅크리고 떠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아침이면 짖어대던 떠돌이 개 세 마리.

생긴 모양이 가정 집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을 녀석들인데

누군가 키우지 못해 내다 버렸나 봅니다.

짖는 것은 세 마리 중 가장 작은 녀석인데

아마도 두 마리 개들의 하나 뿐인 새끼 같습니다.

엄마 개, 아빠 개는 사람이 다가가면 무서워 벌벌 떠는데

새끼 개는 캉캉캉 물러서면서도 짖어 댑니다.

아이들에게 병균이라도 옮길까 걱정이 되어

쫓아낼까 했었는데

도망가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모양이 불쌍하여

내버려 두고 와 버립니다.

이제는 방학이라 아이들도 없으니

특별히 쫓아 낼 이유도 없습니다.

' 저 녀석들... 아무리 눈에 밟혀도 이제는 거두어 키우지 말아야지~ '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한 번 걷다 돌아보고

또 한 번 걷다 돌아보며...

이제는 방학입니다.

강아지 끼니 걱정 하지 않는 첫 번 째 방학입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희망이의 일기  (0) 2010.05.05
불이야!!  (0) 2010.05.05
이상한 게 나타났어요!  (0) 2010.05.05
심심한 방학 보내기  (0) 2010.05.05
아버지의 여자 친구  (0) 2010.05.05
술 마시고 일기 쓰기  (0) 2010.05.05
오 계절  (0) 2010.05.05
아웃사이더는 없다!  (0) 2010.05.05
나만 하는 놀이  (0) 2010.05.05
택형이 이야기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