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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심심한 방학 보내기


머리가 무겁습니다.

방학이라 감기 건네 주는 녀석들도 없는데

어디서 찾아 온 감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방학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바지런한 동글 먼지들은

아이들 옷장이 자기네 집이라도 되는 양

동네 친구들 죄다 모아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심술궂은 선생님이

훅- 하고 입 바람 불며 훼방을 놓아도

훠이~ 하고 날아 올랐다 이내 다시 모입니다.

' 그래~ 아이들 없는 교실, 너희들이라도 실컷 놀아라 '

심심하면 뭉치는 녀석들.

실타래처럼 돌돌 뭉쳐 바퀴 마냥 굴러다닙니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신이 난 녀석들은

복도 여기 저기를 굴러다니느라 난리입니다.

심심한 선생님은

교실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그림을 그립니다.

텅 빈 나무 블록 장 앞에는

나무 블록으로 열심히 자동차 길을 만들고 있는

식물박사 슛돌이 지호를 그립니다.

자동차 길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샛길을 만들다

지호에게 한 소리 듣는 그림동화 영인이도 그립니다.

나무 장 옆으로는

스펀지 블록을 던지며

까르르 웃고 있는 사이좋게 재웅이를 그립니다.

재웅이가 던진 블록에 맞아

커다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는

잘 노는 찬이도 그립니다.

창 너머로는,

베란다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사랑하는 세연이를 가장 먼저 그리고

인디언처럼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는

책 사랑 이야기 준형이를 그리고

베란다 창문에 얼굴을 문대고 히죽 웃고 있는

동물사랑 생각 깊은 택형이도 그립니다.

한 녀석 두 녀석 그리기 시작하니

뻥- 하고 뻥튀기 터지듯 아이들이 쏟아집니다.

살아있는 재용이와 몸 사랑 민재는

서로 발차기를 하며 도망가고 쫓고

목수 동영이와 메아리 헌기는

엎치락 뒤치락 레슬링을 합니다.

편안한 농부 정호는

축구공을 가지고 몸 터로 뛰어 가고

축구공에 끈 달린 듯 함께 가는

만들기 손 한결같은 진우도 보입니다.

연신 교실 바닥에 엎드려

현미경처럼 눈을 깜박이는 생명 건욱이는

거미줄에서 졸다 떨어진 대왕거미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찌릿~!

엉덩이에게 신호가 옵니다.

뒤돌아보니 낼름 혀 내밀며 도망가는

똥침쟁이 스스로 민재가 있습니다.

쫓아가려 다리를 움직이려 하니

어느새 왼쪽 다리에는 고무줄 마술사 무지개 승하가

오른 쪽 다리에는 딱따구리 꼼꼼이 주영이가 달려 있습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쳐다보는데

눈앞에 친구사랑 가현이와 친절한 효민이가

열심히 수다를 늘어놓습니다.

휴우~

한 숨 한 번 내쉬니

천천히 도원이가 두 손으로 받으며

방긋 웃습니다.

아이들 없는 방학이지만

아이들 살던 교실에는

아이들이 그려놓은 수많은 시간들이

한 폭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슬라이드 영화처럼

두루마리 화장지 풀어지듯

절로 풀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 없어 심심한 선생님은

방학동안 실컷

녀석들이 만들어 놓은

영화나 보며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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