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을 봅니다.
뉴스를 봅니다.
100년만에 내린 3월의 큰 눈으로
하늘을 원망하는 눈들을 봅니다.
쌓여서 무너져 내린 눈처럼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눈싸움을 한 마음으로
더욱 무겁습니다.
아이들과의 하루를 펼치기 전에
큰 눈으로 힘드셨을 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힘겨움을 덜어 드리고 싶음을 전합니다.
눈이 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눈을 보며
선생님들과 회의를 하는 중입니다.
복도 형광등이 번쩍하더니 밤이 됩니다.
잠시후에 어깨를 들썩거리는 천둥소리가 울립니다.
회관 지붕이 부르르 떱니다.
아이들 집으로 전화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YMCA인데요.
눈이 너무 와서 내일 아침 차량운행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등교시간을 3시간 늦출까 합니다. 귀가시간도요.
부탁드립니다."
10시가 넘은 시간
집으로 향하는 선생님들의 어깨위로 눈이 쌓입니다.
사륜구동 화물차를 탑니다.
승용차란 승용차는 발이 묶여 갈 수 없습니다.
물건처럼 차에 실린 선생님들은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
얼굴마다 빨간사과 하나씩을 머금고 있습니다.
화물차에서 뛰어 내립니다.
"저는 집이 가까우니 걸어갈께요"
"와- 치사하다"
선생님들이 던져주는 한마디 말들이
엉덩이를 밀어 걸음이 되어 줍니다.
눈 쌓인 길을 걷습니다.
발목을 넘어선 눈은
내려놓기가 무섭게 눈 속에 묻힙니다.
검게 흐르는 목감천을 따라
하얀 길을 걷습니다.
두 손으로 눈을 모아
악수하듯 마주 잡으면 눈덩이가 됩니다.
무지개 다리놓듯 하늘향해 던지면
목감천 흐르는 물 입을 벌려 낼름 삼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 두울, 셋...
항아리 뚜껑위에 세워진 눈 사람
눈이 오면 눈 사람이 되는 마음들입니다.
술 취한 아저씨가 비틀비틀
"눈 와서 한잔했다"
술 취한 핸드폰도 비틀비틀
집으로 가는 길에는 눈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눈을 봐서 그런지
스르르 눈이 감깁니다.
아침입니다.
아침문을 여니 온통 냉동고 모양입니다.
밤 새 쌓인 눈이 밤 새 얼음이 되었습니다.
손가락같던 나무가지들이
팔뚝만하게 커졌습니다.
차들마다 눈을 얹고 다닙니다.
밤에 걸었던 길을 아침에도 걷습니다.
밤 새 얼어붙은 발자욱을 따라
거꾸로 올라 갑니다.
술 취한 아저씨 비틀거리던 눈 길위에는
비틀거린 채 얼어붙은 발자욱이 보입니다.
항아리 뚜껑위의 눈 사람
뜬 눈으로 밤을 세운 듯 빨간 눈입니다.
살금살금
옥길동 고양이 살금이마냥 걸어
회관에 도착합니다.
빗자루 대신 삽을 들고 쌓인 눈을 치웁니다.
눈 치우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는
울타리 난간위의 고양이 찐득이
허리 한 번 펼 때마다 냐옹-
선생님 허리를 두드려 줍니다.
전화벨이 울립니다.
"선생님, 아이가 아파 오늘 못 보내겠어요.
어제 저녁 아빠랑 눈싸움을 했더니
열이 나네요"
"아이 좀 바꿔 주실래요?"
"선생님-"
"몸이 아프니?"
"네!"
"집에서 쉬고 싶니?"
"....."
"몸이 말하지 말고 마음이 말해 봐.
옥길동이 눈 속에 풍덩 빠져 눈 나라가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말고 눈도 함께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열이 많이 나요"
"그러니?"
"그럼 조금만 놀래요."
"그래. 조금만 놀자. 선생님이 몸이 많이 안 아프게 돌봐줄께"
엄마가 전화를 받습니다.
"유치원에 간다네요?"
"예,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보내주세요"
비가 많이 오거나 날이 너무 춥거나 눈이 너무 많이 내린 날에는
오지 않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선생님이 되고
눈이 오면 눈이 선생님이 되는 날
자연의 선생님이 손수 찾아주신 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날
답답한 방 안에서만 있으면 안 되겠지요.
아이들이 옵니다.
깨끗하게 치워 둔 길을 피해
눈 쌓인 길만 골라 걷는 녀석들.
"안녕하세요"
하얀세상에 작은 친구들이 왔습니다.
교실입니다.
동그랗게 앉습니다.
"선생님이 궁금한게 두 가지가 있어요"
"뭔데요?"
"하나는..."
고개 돌려 한 녀석을 바라봅니다.
버스에서 내린 모습 그대로 앉아 있는 한 녀석.
장갑도 낀 채
두꺼운 외투도 입은 채
양 어깨에 가방도 둘러 맨 채...
하선이입니다.
"하선이가 궁금해요"
친구들이 하선이를 바라봅니다.
하선이...고개 들어 선생님 눈을 바라봅니다.
"추워서요"
"아- 그렇구나. 추워서구나"
친구들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방은 왜 메고 있어?"
한 친구가 묻습니다.
"추워서..."
"가방 메고 있으면 따뜻해?"
"응! 따뜻해"
"그렇구나"
모두들 고개를 끄떡끄떡 합니다.
모두들 추우면 가방을 메고 있어야지 생각하는 모습들입니다.
"하선이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었네..."
"궁금한거 한 개는 뭐에요?"
아이들이 묻습니다.
"응, 또 한개는..."
고개들어 눈 앞을 바라봅니다.
질경이반 벽은 온통 커다란 창입니다.
눈 밭에 앉아 있는 것처럼 전부가 하얀 벽입니다.
"눈 아이가 궁금해서..."
"눈 아이가 뭐에요?"
"응, 눈이 오면 꼭 찾아오는 아이가 있거든.
그 친구가 눈 아이에요
눈 아이는 하얀 털모자를 쓰고
하얀 마스크를 하고 토끼같은 하얀 귀마개를 하고
하얀 외투에 하얀 장갑, 하얀 바지에 하얀 장화를 신고 와요.
손에는 작은 구슬 하나를 들고..."
"구슬이요?"
"응, 구슬..."
비가 오면 비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고
눈이 오면 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실어오는 소식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단지 들은 소리를 다시 들려 줄 뿐입니다.
"눈 아이는 눈을 타고 내려 온데요"
"눈을 타고 내려와요? 저렇게 작은 눈을 타고 어떻게 내려와요?"
"이야.. 정말이네?"
"뭐가 정말이에요?"
"눈 아이가 그랬거든. 어린이 친구들이 분명히 그렇게 물을꺼라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했어요"
"뭐라구요?"
"무겁다 생각해서 그렇다구요.
가볍다 생각하면 새 털처럼 가벼워진다구요.
그래서 가벼워 진 몸으로 눈을 타고 둥실둥실 내려 온다구요"
"그런데, 그 구슬은 뭐에요?"
"눈 아이가 선생님에게 그 작은 구슬을 보여 주었는데
그 구슬 안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은 작은 세상이 있더라구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구름도 있고 집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동물도 있고
산에는 새들이 살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고 집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점은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작다는 거 뿐이었어요"
"정말이에요?"
"눈 아이를 만나면 보게 될꺼에요. 그 구슬을..."
아이들과 함께 눈 아이를 만나러 갑니다.
눈사람을 만들러 갑니다.
눈덩이에 눈덩이를 더해 눈사람을 만들고
눈덩이에 눈덩이에 눈덩이를 더해 애벌레를 만들러 갑니다.
"이야- 하얀 세상이다. 하얀 눈을 보니까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네-"
하얀 눈을 폭 떠서 입 안에 넣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커다래집니다.
"정말 먹어요?"
"응...으..그런데, 맛 없다"
입 안의 눈을 뱉어내며 혓바닥을 낼름거립니다.
"선생님, 저희가 맛있는 눈을 찾아 드릴께요"
아이들이 만들어 준 눈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습니다.
아이들 뒤로 살짜기 뱉어 내면서.
이 녀석들... 제 녀석들은 먹지도 않는 것을 선생님 먹으라
자꾸만 만들어 줍니다.
"선생님, 감자도 드실래요?"
군데 군데 노란 눈덩이를 내미는 녀석, 소연입니다.
"어? 감자를 어떻게 만들었어?"
"눈하고 흙탕물을 섞어서 만들었어요. 정말 감자에요. 드세요"
먹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배탈이 날게 분명합니다.
"응? 응.. 선생님이 배가 너무 불러서 감자는 못 먹겠다.
배가 부르니 눈으로만 먹을까?..냠 냠..."
다행입니다.
어서 먹으라 재촉하지 않는것이...
오늘은 눈이 선생님입니다.
질경이반 선생님은 커다란 친구인 날이었습니다.
.
.
.
.
늦은 저녁...
고속도로에 꽁꽁 묶여
밥도 잠도 거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동물 축사가 무너져 한숨짖는 사람들을 봅니다.
눈이 와서 신나는 사람들도 있고
눈이 와서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즐거울 수 있을려면
모두가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겠습니다.
다시금 월요일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나눠야할 지 알겠습니다.
선생님 마음에 일찌감치 월요일이 찾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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