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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아버지


음력 3월 3일

할머니 제사가 있는 날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온 집에는

까만 밤 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따뜻한 방에 앉아 있자니 눕고 싶고

누워 있자니 졸음이 솔솔 옵니다.

한꺼풀 두꺼풀 감기는 눈에

대롱 대롱 잠을 달고 있을때에

희미한 아버지의 목소리..

"잠깐 누운것이 잠이 들었네요.."

먼지 투성이 옷을 털며 아버지 오십니다.

"방은 좀 치워야지.."

방에 널린 빨래를 하나 둘 걷어 냅니다.

아버지 얼굴에 그림자가 선명합니다.

"아버지.. 얼굴이 왜..."

"일하다가 다쳤다..."

파이프가 떨어져서 얼굴에 상처를 냈다고 합니다.

파이프 자국이 선명한 얼굴의 검은 그림자..

"상은 하나만 펴도 되겠다.."

아버지 목소리 희미하게 고막을 울립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흐느낌??

빨래를 걷던 손이 멈춥니다.

고개숙인 아버지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립니다.

아버지께서 울고 계십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오늘은 그냥 약식으로 하자.. 물 한잔 떠 놓고.. "

"그럴수야 없죠.."

생각해 보니 집에는 아버지와 아들..

둘 뿐입니다..

고모에게서는 연락이 없습니다..

막내녀석 처음 들어 간 직장이라 늦는다고 합니다.

시집간 여동생은 그렇다치고

집 나간 동생은 눈이 아파 못 온다 합니다.

"아버지...."

할머니의 사진을 보시는 아버의 두 눈에

얼굴의 상처를 타고 눈물이 얄궂게 내립니다.

"그냥... 그냥.. 약식으로 하자니까..."

"안돼요..그러면... 음식이 없으면 장을 보면 되잖아요.."

"아버지 말... 들어라... 그냥..그냥 하자..."

눈물이 쉴새없이 흐릅니다..

아버지의 눈물에 온 몸이 적습니다...

"안돼요.. 아버지.. 저랑 같이 장을 보러 가요.. 녜?"

"그냥 하재두..."

"근데.. 왜 우세요... 제사는 그렇게 지내면 안되요..."

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이끕니다.

아버지의 작은 어깨 멈출줄을 모릅니다.

너무나도 늙어 버리신 아버지..

이불 속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헛기침 한 번에 온 몸이 쭈삣 서게 했던 하버지..

아버지 우시기만 하십니다..

"제가..제가 고모에게 전화 해 볼께요...

분명 오신다고 하셨는데..."

막내고모에게 전화를 합니다.

"고모..저기.. 아버지께서..."

"집 앞이다.. 어서 나와 짐 좀 받아라..."

"아버지.. 고모..오셨데요.. 집 앞이래요..

거 봐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괜한 눈물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달려 나갑니다..

큰 고모, 마산 고모, 막내 고모..

짐 보따리 하나 둘 씩 이고서 오십니다...

작은 가로등 불빛 아래 고모 세 분이 오십니다.

고모가 이렇듯 반가운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듯 이렇듯...

"고모... 아버지. .아버지께서..."

눈물이 시야를 가립니다..

말문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차가 막혀서... 전화는 왜 그렇게 안 받으시는지..

어서 들어가자..."

고모 세 분이 작은 집 어둠을 밝히십니다.

아버지의 눈물에 환한 웃음이 비칩니다.

"에이..오빠는.. 음식 장만하느라 늦었다 아입니꺼.."

분주해 집니다..

음식을 담고 국을 끓이고

밥을 올리고 상을 차리고

상 허리 부러지도록 올려 놓습니다..

"아버지.. 이제 기쁘시죠?"

"막내는 신입사원이라 일찍올 수 없어 늦는데요..그래도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래요.. 희정이는 어제 눈 수술을 해서

앞이 안 보여서 못 오구요... 근데... 아버지는 참..."

향 불을 피우고 술을 올립니다..

"아버지. .절 하셔야죠..."

아버지 손을 붙잡고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할머니 영정을 앞에 두고

큰 손주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할머니..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저...결혼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저.. 넉넉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아버지.. 불쌍하신 우리 아버지..

건강하게.. 건강하게만 해 주세요.. "

두런 두런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합니다.

아버지의 밥 공기에는 둥근 쌀 밥 한그릇

푸근한 정 한 그릇 놓입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설겆이를 하시는 막내고모...

"이제는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

이만큼 사는것도 얼마나 행복인지 모른다..

나 혼자 잘나서 이렇게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암.. 안 되고 말고... 너도 올해 장가 가야지?

너희 아버지..너무 많이 늙으셨다..

늙으면 애가 된다고 하더니.. "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두 눈에 하얗게 거품을 문 그릇만이 보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

오늘은 직원연수가 있는 날..

선생님들과 1박 2일 연수를 힙니다..

허겁지겁 돌아온 길..

제사음식을 내려 놓으며

선생님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마음 속 아버지의 얼굴..

상처 투성이 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봅니다..

.........................

오늘따라 달 빛이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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