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안경을 썼습니다.
그때부터 네모난 사진속에는 안경 쓴 창욱이가 보입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안경 낀 창욱이의 모습을 끝으로 창욱이는 안경을 벗었습니다.
아이들 말대로 눈에다 집어 넣는 안경인 렌즈를 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창욱이는 흰 자위가 항상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술자리를 한 날에도 렌즈를 빼는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습니다.
끼고 빼고 소독하고 하는 것이 불편하였지만
그래도 안경을 쓰는 것 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창욱이는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렌즈를 낀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빡빡머리에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입대를 하였습니다.
새로맞춘 이 안경으로인해 8주간의 고난이 다가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으로 설잠을 자던 군 입대 첫 날
기상을 알리는 조교의 무서운 군화발에 안경은 그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밖에 없었던 안경은 인사불성이 된 훈련병들의 군화발에 밟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깨진 안경 한 조각을 들고 겨우 따라나선 연병장에서는
무서운 고함소리와 긴장한 훈련병들의 기합소리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눈 뜬 장님이 된 것입니다.
안경없이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눈이라
이곳 저곳 옮겨다닐 때마다 같은 내무반 훈련병의 상의를 붙잡고 걸어 다녔습니다.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같은 머리, 같은 옷을 입은 훈련병들 속에서
내무반은 커녕 소대건물마져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안경을 맞춰줄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로부터 눈으로 인한 고문관의 생활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격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총을 쏘아댔고
당연히 과녁은 하얀 속옷마냥 깨끗할 수 밖에 없었으며
동태눈깔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소대에서 가장 기합을 많이 받는 훈련병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도 컸지만
보이지 않기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더 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에서 맞춰 준 안경은
훈련을 마치는 퇴소식 날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멍들대로 멍든 몸을 확인하기에 적격인 안경이었습니다.
퇴소식 날 어머니께서 새 안경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안경뿐만 아니라 렌즈와 식염수까지 가지고 오셨습니다.
렌즈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머니께 건네받은 렌즈를 가슴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습니다.
두들겨 맞는 한이 있어도 렌즈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미 두들겨 맞는 것에는 이골이 난 참이었습니다.
다행히 배치된 부대에서는 태권도 조교가 되어 렌즈착용을 인정받았으며
그 후로는 눈 때문에 고생할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훈련소 때의 그 악몽은 안경을 볼때마다 항상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7개월 후 군대를 제대하였습니다.
학교도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된지 만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눈으로 인한 또 다른 기가막힌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날인가부터 오후만 되면
몽롱해지는 얼굴을 자꾸만 만지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그렇지 않은데
아이들과 수업만 하다보면 오후마다 항상 얼굴의 감각이 둔해지곤 하였습니다.
왜 이럴까... 피곤해서 그럴까...
아니면 실내공기가 좋지 않아서 그럴까...
긴장을 덜한 탓일게지. 스스로 이런 자신을 책망하기만 하였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겨울이나 여름이나 한 낮의 수업은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몽롱해질 때마다 아이들 몰래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드리기도 하고 찬물에 세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괜시리 체육실을 뛰어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채 5분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눈 주위가 무엇에 홀린것 마냥 감각이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한 날은 서 있는대도 아무소리도 듣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도저히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끝에 마련한 것이 물뿌리게(분무기)였습니다.
얼굴 감각이 둔해질 때마다 두 눈이 멍청해질때마다
얼굴에 찬물을 뿌려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뿌려대며, 수업 중에 긴장하지 않는 자신을 나무랬습니다.
2004년 1월 라식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 오년을 써 오던 렌즈와 안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라식수술을 한 동생이 만날 때마다 자랑을 하는 통에
큰 마음을 먹고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수영교육을 할 때 렌즈를 끼고 물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하였기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사 당일 의자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7년동안의 나에 대한 오해를 씻어 줄 줄이야...
눈은 스스로 호흡을 하기에
렌즈를 끼게 되면 렌즈가 산소공급을 막아
눈은 호흡을 하기위해 눈 주위의 실핏줄을 당겨 모은다는 이야기.
그래서 충혈도 되는 것이고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중 있었던 일을 생각 해 내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그럼 오후마다 생기던 그 이상한 증상도 다 렌즈때문이냐고...
그럴 수 있다 하였습니다. 더욱이 공기가 탁한 실내에서는.
순간 머리를 한방 얻어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얼굴을 깨우기 위해 세수를 하지 않아도 되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눈 수술을 한 후에는 그러한 증상이 싹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리 미련했던 것일까...
어처구니 없어 기가 막히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고통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시력이 나쁜 탓에 생긴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력탓에
이렇듯 자신을 새로 다듬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그것은 자신에 대한
조그만 관심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이러한 글을 쓰는 까닭은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바르게 알고 있나...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입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 있더라도 양해 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