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길동 컴퓨터 할아버지 컴퓨터
컴퓨터가 고장났습니다.
더불어 희망이도 고장 났습니다.
토요일 아침
희망이가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콧구멍이 간질간질
'에취!'재채기가 납니다.
순간 허리에서 뚝- 하고 기분나쁜 소리가 납니다.
'뭐지?'느끼기도 전에 허리가 내려앉는 기분.
"악!"외마디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 주저앉습니다.
허리가 부러지는 느낌!
'이...이게 무슨 일이야?'
말도 안되는 상황에 일어설 줄 모릅니다.
책상 모서리를 잡고 힘을 줍니다.
허리에 통증이 심합니다.
'이...이런....'
기가 막힙니다. 이런 일도 있다니...
책상을 잡고 일어서는데 30분은 걸린것 같습니다.
침대에 엎드리는데 1시간은 걸린 것 같습니다.
허리가 부서지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하지?'
가지 가지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침대 머리맡에 핸드폰이 보입니다.
손을 뻗어 보지만 움직임마다 통증입니다.
'이런...이런...이런....'
하늘이 하얗습니다.
'일단은 일어나야 하겠다'
양팔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킵니다.
칼로 도려내는 아픔입니다.
의자에 겨우 앉습니다.
조심조심 팔을 뻗어 양말을 짚습니다.
'이런 팔이 안 닿네'
양말 끝을 잡고 발가락에 걸어 봅니다.
식은 땀이 흐릅니다.
겨우 엄지 발가락 하나 걸었습니다.
'휴우- 일단 걸었다'
발가락을 하나씩 집어 넣습니다.
양말 신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기는 처음입니다.
전봇대마냥 구부러질 줄 모르는 상체를 세워두고
손가락과 발가락에 의지하며 바지를 입습니다.
젖은 옷을 입은 듯 땀이 베어 나옵니다.
'병원에 가야겠다'
걸음마다 통증이 전해집니다.
이런일도 있다니...
찬 바람에 젖은 옷이 얼어붙는 느낌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하던 일들이
말도 못하게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아침에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입니다.
도저히 버스를 탈 자신이 없습니다.
'걸어가야 되겠다'
평상시 걸음으로도 30분이 걸리는 거리.
이런 걸음으로는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찬 바람이 붑니다.
바람에 허리가 휘어질 것 같습니다.
잠깐만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허리가 뒤로 재껴져 부러질 것만 같습니다.
엉금엉금 걸음을 옮깁니다.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얄궂어 보입니다.
인도옆으로 휭-하고 차가 지날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마냥 몸이 흔들립니다.
가로수를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깁니다.
걸어가야 할 길이 까마득합니다.
멀리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이건만
할아버지를 따라 잡을 수가 없습니다.
파란하늘이 노란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제자리에 주저 앉고만 싶습니다.
한 번 앉으면 영영 일어서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를 깡 물고 걷습니다.
눈 앞에 생각들이 어지럽습니다.
'월요일까지 안 나으면 어쩌나...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 판국에 수업걱정이냐!'
걸음마다 생각들이 뒤섞입니다.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지나갑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든 일이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낮아질대로 낮아진 마음입니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허리가 죄여옵니다.
숨통이 막힙니다.
머리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병원에 가야 해...병원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1시간 3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사거리에 있는 한의원.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30분을 기다립니다.
"앉아서 기다리세요"
"앉기가 불편해서요. 서 있을께요"
편한 자세가 없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조금씩 움직여도
통증은 누그러들 줄 모릅니다.
물리치료를 받습니다.
허리에 침을 꽂습니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네요. 며칠 침 맞으시면 괜찮아지실꺼에요"
세상에...
재채기 한 번에 인대가 늘어나다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세상에...
한 번 누우면 자세를 고쳐 누울 수가 없습니다.
자다가 깨다가 스스르 다시 잠이 들고...
오늘이 토요일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일요일 아침
통증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아픈 것은 여전하지만 어제만큼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다시금 옷을 입습니다.
오늘은 한의원이 쉬는 날...
그래도 가만히 방에만 누워있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연습을 합니다.
옥길동 컴퓨터가 고장이 났습니다.
더불어 희망이 허리도 고장이 났습니다.
컴퓨터를 고치는데 시간이 걸리듯
희망이 허리를 고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피씨방에 앉았습니다.
오늘의 이 통증을 잊지 않기 위해...
내게 소중한 것을 잊고 살지 않기 위해...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날
그것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를
뼈가 으스러지도록 깨닫게 되는 순간
당연한 것은 불편한 것이 되어 있는 순간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당연한 것 하나 하나의 소중함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해 주는 이 순간을...
내일은
마디 마디 살아있는 나의 몸을 열어
소중한 아이들을 만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