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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아버지와 아들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와

서른하고도 반을 채운 아들이

시장을 갑니다. 반찬거리를 사기위해.

"이거 얼마유?"

"구천원인에요"

"이게 원래 그렇게 비쌌나?"

"에구, 그럼요.. 싸게 드리는거에요"

고춧가루와 마늘 한 봉지.

뒷주머니 구겨진 돈을 꺼내시는 아버지와

검은 봉투 건네받는 아들입니다.

2004년 갑신년 새해 첫 날!

"아버지! 저 왔어요!"

"그래. 밥은 먹었냐?"

"아직인데요?"

"그럼, 먹자!"

아버지께서 차려주신 아침 상.

밥이 부족할까 사다 놓으신 햅반 하나

아들 몫으로 돌려 놓으십니다.

"아버지. 밥 부족하지 않으세요?"

"나는 아침 많이 안 먹는다. 너나 많이 먹어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배부른 아침입니다.

옷을 입고 길을 나섭니다.

국립극장에서 하는 마당놀이를 보기 위해.

"지하철 타야되냐?"

"예, 세 번이나 갈아타야 되요"

"그렇게 많이?"

"여러가지 지하철 타서 좋잖아요?"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네 가지 색깔의 지하철을 갈아타고

국립극장에 도착합니다.

동생들을 만납니다.

"아침 밥 먹었냐?"

만나자 마자 아침부터 챙기시는 아버지.

"안 먹었는데요"

"나는 아버지가 아침 상 차려 주셨다"

"좋겠다. 오빠는"

"그럼, 좋고 말고!"

정말로 좋았습니다.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아버지 사랑만큼.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마당놀이.

아버지 어린아이마냥 좋아하십니다.

연신 허허 웃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좋으십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이 보입니다.

부모님 모시고 오신 가족들이 많이 보입니다.

훈훈한 가족사랑으로 시작되는 신년 새해입니다.

점심식사를 합니다.

"재미있으셨어요?"

"재미있더라. 그런데 좀 비싼거 아니냐?

만 사천원이면..."

"만 사천원 아닌데요. 삼만 오천원인데요"

"여기 만 사천원이라고 써 있는데?"

"어디요. 그건 십사만원이잖아요.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잖아요.

우리 네 명을 합한 금액이요"

"아, 그렇구나. 그럼 너무 비싸다!"

"하나도 안 비싸요. 우리 가족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행복하다면..."

아버지, 표를 매만지십니다.

지난 시간 아픈 기억을 어루만지십니다.

"엄마한테는 언제 가볼테냐?"

"구정 전에 가야죠. 연락드릴께요.

아참, 그리고 구정에는 우리 볼쇼이 서커스 보러가요"

"그것은 더 비쌀텐데?"

동생이 밥숫가락을 놓으며 말합니다.

"부담스러우면 오빠가 보탤게. 다 못대줘서 미안하다"

"보태준다면야 나야 기쁜 마음으로 가지. 히히..."

동생들과 헤어졌습니다.

아버지 피곤하신지

지하철 의자 손잡이에 기대어 주무십니다.

주무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하루 하루 즐거우셔도 서운하실텐데

아버지 뒷 모습도 죄스러워 쳐다보지 못하는 아들입니다.

"오징어 두 마리 줘요! 거기... 게도 한 사라 주고"

고춧가루에 마늘, 대파, 오징어 두 마리와 게 한 사라.

검은 봉지 네 개를 들고 시장보기를 마칩니다.

"저녁 먹고 갈꺼지?"

"글쎄요. 배가 안 고파서... 피곤하기도 하고..."

배가 안 고픈 것 보다는

피곤한 것 보다는

아버지 식사준비 하시는 모양을

도저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입니다.

두 팔 걷어 붙이고 함께 만들고 함께 준비하면 되지만

그래도 쏟아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를 뵈면 죄스럽기만 해요.

아무리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려고 노력해도

아버지만 뵈면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자식같네요.'

신호등 앞입니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 틈에 아버지와 아들이 섰습니다.

"뽀뽀뽀 뽀뽀뽀 뽀뽀뽀 친구!"

한 꼬마 녀석이 뽀뽀뽀 노래를 부릅니다.

"어이구 잘하네. 또 다른 노래 해 봐라"

노래 하기를 시키는 엄마와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아이.

아버지 허허 웃으시며 쳐다 보십니다.

아들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만 한 번, 두 번

그리고는 아무것도 못 보았다는 듯이 다시 앞만 보십니다.

아버지도 못내 아들눈치를 보시는 모양입니다.

아버지 부러워하시면 큰 아들 미안해 할까봐...

아버지의 작은 어깨가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아버지!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남겨 놓으셔야 되요.

내일 와서 다 먹어 버릴테니..."

"그래, 내일 와서 꼭 먹어라!"

"예! 오늘은 피곤하시니 푹 쉬세요."

"그래, 그럼 가 봐라"

문을 나섭니다.

'아버지, 죄송해요. 어떻게 해야 좋은 아들이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계셔서

참 행복하답니다. 아버지가 계셔서 참 좋답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아버지 끓여주신 맛있는 찌개도

많이 많이 먹을 수 있게요'

'안다 안다 이 녀석아! 네 녀석이 끓여주는 맛없는 찌개보다는

이 애비가 끓여주는 세월이 얌념되는 찌개가 더 낫지.

이 애비 혼자서 시장보고 혼자서 식사를 준비하더라도

네가 와서 함께 먹어만 준다면 이 애비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안다 안다 이 녀석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슴에 소중히 담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

말없이 내려다 보시는 하늘같은 어머니를 올려다 보며

오늘 하루 곱게 접어 마음 속에 넣어 둡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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