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누우면 세상이 온통 까맣습니다.
억지로 밝혀 놓은 밤을 본래대로 돌려놓으면
밤은 순간 놀라 깜깜하게 숨었다가
조금씩 조금씩 밤을 보여 줍니다.
밤의 달은 낮의 해처럼 용감해 보이진 않지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그릇 같습니다.
낮동안 담아 두었던 것을 꺼내 보기에도
밤은 참 좋습니다.
까만 밤에 하얀 낮의 일기를 적는 것도
두 눈에 선명해지는 까닭 같습니다.
낮은 드러내 놓고 따뜻하고
밤은 은근히 따뜻합니다.
낮은 소리치기에 좋고
밤은 낮의 메아리를 듣기에 좋습니다.
낮의 그림자는 밝아 숨은 그늘 같고
밤의 그림자는 손잡고 싶은 친구 같습니다.
밤이 되면 막혔던 세상이 하나로 뚫리는 것 같습니다.
밤은 낮을 품은 엄마 같은데
낮은 마냥 노는 개구쟁이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낮에 놀다 밤이 되면 엄마 품에 잠드는 것이
자연을 닮은 모양 같기도 합니다.
불끄고 드러누운 침대위로
말똥말똥 두 눈이 심심해서
속옷바람으로 달려나와 침 발라 그려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