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만남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노란 개나리와 함께 찾아왔던 아이들

진달레꽃 따다 전 붙여먹고

버찌따다 입술 칠하고

자리공으로 손톱,발톱 까만 때를 만들던 아이들

한여름 시원한 등목에 너도나도 웃통을 벗어 던지고

매미처럼 선생님 허리춤에 달리던 아이들

옥길동 뒷 산이 단풍으로 벌겋게 타오를 때

턱 괴고 입 모아 노래부르던 아이들

송이송이 하얀 눈에 낼름낼름 혓바닥 적시며

하얀 꿈을 키우던 아이들

새 봄이 오기도 전에

민들레 홀씨되어 희망을 찾아 떠난 아이들

보고싶어 가슴을 열어 본 시간만큼

커다란 기쁨으로 찾아왔습니다.

서른 아홉 작은 졸업생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졸업생들과의 두 번째 만남

오늘은 눈썰매장을 갑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

모든 것이 반가움입니다

모든 것이 즐거움입니다

"선생님!"

매일 듣는 소리이지만

언제 들어도 반가운 소리, 선생님...

메아리마냥 가슴속에서 울려 대기만 했던 목소리들이

노란색, 빨간색 외투에 쌓여 다가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녀석들

그래서 가슴에 곱게 넣어 두었던 녀석들

오늘은 이 녀석들과 꿈에 그리던 시간을 갖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지요?"

"그럼요, 그럼요"

웃음 주머니들이 터져 납니다

보고 싶었던 얼굴, 바로 그 얼굴에서

"자! 출발이다"

"와-"

엉덩이가 들썩거려 앉지 못하는 선생님

입이 근질거려 시끄러운 녀석들

타임머신을 타고 일곱 살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노래 부르고 손뼉치고 눈을 맞추던 기억

꺼내기가 무섭게 까르르 넘어갑니다

"선생님! 달봉이 얘기 해 줘요"

"달봉이... 아직도 기억하니?"

"그럼요. 그럼요. 어서요."

버스가 하늘을 나는 양 하늘 위로 떠 가는 마음입니다

눈썰매장입니다

눈썰매를 탑니다

가마니 깔고 엉덩이로 뭉개던 흙 땅이 아니라

산을 깎아 만든 썰매장에 온통 하얀 땅입니다

"선생님, 저랑 같이 타요"

"저도요, 저도요"

너는 1번, 너는 2번, 너는 3번

선생님과 함께 타기 위해 번호표를 받는 아이들

한 품에 들어오는 녀석들을 꼬옥 껴 안으며

발길에 부셔지는 눈가루를 맞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다섯 시까지 눈썰매를 타기에는 너무 길지 않아요?

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저기봐요. 그냥 노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일찍 끝내고 옥길동에 가서 노는것은 어때요?"

'옥길동에서?'

선생님들 얼굴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노나 옥길동에서 노나 뭐가 다른가?

선생님들은 시간이 안 가나보다

난 시간이 너무 빨리가서 붙잡고만 싶은데...'

"썰매 안 타는 녀석들에게 가 볼께요"

선생님들은 못마땅한 눈치입니다

한 두번 썰매를 타고 나더니 재미가 없어졌나 봅니다

아직까지 번호표 받은 녀석들이 줄을 서 있는데

여기서도 시간이 모자를 것 같은데...

"애들아! 간식먹자!"

아이들을 모아 간식을 먹습니다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마십니다

마음이 조금은 서운합니다

내 마음이 선생님들 마음 같지 않아서

선생님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옥길동에 가 봤자 다를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썰매장에서 안 가는 시간이 옥길동에서 잘 갈 턱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고싶은 사람들끼리 서로 만났다는 것 아닌가...

"우리 간식먹고 나가서 눈싸움하자!"

"눈썰매 계속 안타요?"

"응, 눈썰매타다가 조금 다친 친구도 있고

그리고 옷이 많이 젖어서 그만 타는게 좋을 것 같애"

"저랑 아직 눈썰매 안 탔잖아요"

"나가서 너랑 눈싸움 할껀데?"

눈이 많아 다행입니다.

오두막에 달린 고드름도 따고

눈을 굴려 눈 사람도 만들고

눈을 뭉쳐 눈 싸움도 하고

선생님들도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합니다

발자욱 하나 없는 눈 바다에 누워 눈 도장도 찍습니다

선생님들도 모두 즐거워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솔직히 아이들 생각만으로

선생님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들이 섭섭해 합니다

그럴 때면 제 마음도 섭섭합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행사들이 있습니다

제 욕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행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행입니다

오늘은 행복한 날입니다

선생님들도 기쁘고 아이들도 행복한 날입니다

"선생님! 언제 또 만나요?"

"금방 또 볼꺼야"

"그게 언제인데요?"

"너희들이 달봉이를 잊어 먹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항상 만날 수 있단다."

2월이 다가옵니다

2월이 되면 일곱살 녀석들이 졸업을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졸업생 행사에서 또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하지만 이제 2학년이 되는 녀석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안 만나는 것이냐고...

선생님이 말합니다

"걱정하지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단다!"

우리네 사랑스런 아이들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선생님

오늘의 소중한 기억을 가슴 한 켠에 잘 넣어 두며

달력을 펼쳐 듭니다.

자! 이제 또 언제 만나지?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0) 2010.05.05
출근 길  (0) 2010.05.05
부메랑  (0) 2010.05.05
눈에 얽힌 이야기  (0) 2010.05.05
  (0) 2010.05.05
퇴근하는 선생님  (0) 2010.05.05
만병통치약  (1) 2010.05.05
희망이 고장나다!  (0) 2010.05.05
무서운 이야기  (0) 2010.05.05
꼬맹이들의 축구 시간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