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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마지막 희망이의 일기


사백 칠십 번 째 이야기를 끝으로

희망이의 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희망이와 함께 해 주신 풀씨 가족들과

사랑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네 아이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비록 옥길동을 잠시 떠나는 희망이이지만

보다 큰 울타리 안에서

늘 함께 할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빛 바랜 일기를 통해

옥길동을 다시 한 번 떠 올려 봅니다.

사랑합니다!!

1. 옥길동에 처음 온 날!- 그 해 겨울!!

눈이 왔습니다.. 펑펑

하늘이 깨져서 하늘가루가 쏟아지듯

예쁘던 눈이 무섭게 내리던 그 해 겨울..

처음 회관 터에 왔던 생각이 납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밭에

질퍽질퍽한 흙 땅을 떼어내며

그렇게 걸어오던 그 자리에

지금은 예쁜 아이들의 집이 지어 졌습니다.

시멘트가 얼고 그 위로 눈이 내리고

털어 내고 털어 내면 또 다시 눈이 쌓이고

아이들의 작은 희망에 시커멓게 눈이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흙바닥에 두꺼운 천을 깔고

그렇게 새내기들을 맞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커다란 벽과 벽 사이에서

창 없는 창문에서 황소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시작된 회관의 겨울입니다.

이제는 예쁜 창문에

이제는 따뜻한 회관에

팔 고이고 앉아

예쁜 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키 작은 개나리가

종종걸음으로 아이들을 몰고 옵니다.

넝쿨 채 찾아든 수박을 베어먹던

수박 씨 같은 시원한 여름을 넘어

장대 같은 가로비가 내리던 한여름을 지나

옥길동 작은 골짜기를 찾아든 붉은 단풍을 타고

이제는 늙어버린 낙엽을 쓸고 있는

10년 지기 마당쇠가 되었습니다.

옥길동의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기나긴 눈 줄기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거리던 그 해 겨울을 생각하며

올해 겨울에는

옥길동 회관 문턱에

노란 의자를 꺼내 놓고

따끈한 커피를 마셔보고 싶습니다.

2. 봄 이야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심장 소리만 콩콩 들려오는

3월의 검은 들판에서

초록의 꿈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술래는 고개를 돌려 움직이는 것을 찾습니다.

3월의 따사로운 햇볕에

겨드랑이를 간지는 솔솔 바람에

아이들의 얼굴은 초록웃음으로 씰룩거립니다.

체육 실 마룻바닥에서 찾는 무궁화 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침묵의 얼굴입니다.

밟기도 전에 부스러지는

흙에서 피어나는 무궁화 꽃은

움직이지 않는 듯 살아있는 생명의 얼굴입니다.

"선생님 밥 먹을래요?"

돌멩이로 갈아 만든 흙 알갱이들을

흙 묻은 손에 담아 건네는 아이들의 손 주머니에는

살아있는 하얀 쌀밥이 가득 입니다.

새롭게 만든 교구장에

파란 페인트를 뿌리며

파란 머리, 파란 옷이 될 때까지

투명한 햇볕에 파란 하늘이 담길 때까지

파랗게 웃는 얼굴이 자랑스러울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거리며

교구장 위를 사뿐 사뿐 걸어가면서

파란하늘 예쁜 교구장이

노랑나비 팔랑 날개 짓에 고개를 떨굴 때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예쁜 것은 생명이라는 것을..

봄은 생명의 이름이라는 것을..

엉덩이를 비비며

흙먼지를 발라가며

아이들의 깨끗한 옷에 누런 봄기운이 묻어 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돌아보는 술래의 두 눈에는

파릇파릇 살아나는 봄이 기운들이 모두가 술래입니다.

다음은

봄 손님들이

봄의 주인들이

모두가 술래입니다.

2. 여름 이야기- 비

하늘이 깨졌습니다.

알알이 깨어진 하늘조각

빗물이 되어 쏟아집니다.

조각난 하늘자리

검은 멍이 듭니다.

검댕이 그을린 하늘

하늘조각들로 땅 위로 내립니다.

약오르던 그늘에도

햇볕 눈물 숨어살던 언덕구석에도

하늘조각 빗물로 흘러 흘러

마침내 들어갑니다.

하늘의 비늘 냄새

땅 위로 피어오릅니다.

하늘 놀이 땅 놀이

밤새는 줄 모릅니다.

쿵 쿵 되는 땅의 기운

소스라쳐 놀랍니다.

헛기침 소리에 하늘로 하늘로

조각을 모읍니다. 새벽을 끼웁니다.

알알이 흩어졌던 알맹이

엷은 새벽이 되고

조각 조각 모여 모여

파란 하늘을 만듭니다.

개구쟁이 지각쟁이

하늘 옷을 입지 못해

이슬 옷 입고

초록 잎에 앉았습니다.

3. 가을 이야기- 진흙 밥에 은행 반찬

바깥놀이를 갑니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불도저가 밀어낸 냉이 살던 땅에

아이들이 갑니다.

여기서 뭐해요?

우-와 넓다.. 축구하면 되지..

우리는 뭐해요?

저기 은행나무가 있네? 나무그늘이 시원하겠다..

선생님이 돗자리를 가지고 올께..

은행나무 그늘에 돗자리가 덜렁

하늘나무 그늘에 아이들이 벌렁

그런데.. 선생님.. 심심해요.

우리는 축구하기 싫단 말이에요.

그래? 그늘 위를 봐.. 뭐가 보이나?

열매가 보여요.

은행이야.. 그리고.. 우리의 놀이친구지..

무슨 놀이 할 건데요?

은행을 따다가 동그랗게 앉습니다.

이렇게 은행 다섯 개면 공기놀이 할 수 있다.

이렇게..요렇게..

너무 어려워요.

그럼.. 바보 공기놀이하면 되지..

이러 쿵.. 저러 쿵..

이-야.. 재밌다. 나도 할래요.

여자아이들 다섯과 은행 다섯 개.

저는 뭐해요?

은행 치기 놀이..

은행 치기?

구슬대신 은행으로 하는 구슬치기..

돌멩이가 그려 준 삼각형

데굴 데굴 은행구슬 구릅니다.

히히..재미있다.

선생님.. 나는 뭐해요?

가위, 바위, 보 놀이할까?

은행 하나씩 다섯개가 모이면 가위, 바위, 보!

선생님.. 옷 다 젖었어요!

축구하던 녀석들

진흙탕에 공이 빠져 진흙놀이에 빠져

축구공도 잊고 하얀 옷도 잊고

온 몸이 진흙잔치입니다.

얘들아.. 씻으러 가자!

선생님.. 내일 또 와요.

은행은 호주머니에 잘 넣고..

집에 가서도 해야지..

진흙사람 셋이 걸어갑니다.

얘들아. 저기..괴물이다.

에이.. 친구들이잖아요.

온통 진흙인데?

진흙탕에 빠졌데요.

너희들은 목욕하자.

한 명 씩 한 명 씩 작은 발을 씻겨주고

세 녀석 진흙 옷을 벗깁니다.

진흙덩이 뚝 뚝 떨어지는 몸에서

깔 깔 웃음도 똑 똑 떨어집니다.

머리마다 비누칠

온 몸에 진흙 칠

옹기종기 엉덩이가 셋입니다.

자.. 물이다.. 받아라..

헤헤헤..히히히...킥킥킥..

세 놈이라 옷이 부족합니다.

어쩐다?

방으로 뛰어가 티셔츠 3장을 들고 옵니다.

이거 입어요?

누구 건데요?

선생님 꺼..

엥? 너무 크잖아요.

좋잖아. 고추도 안 보이고..

헤헤헤..히히히..킥킥킥..

이놈들..작긴 작네..

선생님.. 크긴 크네..

이놈이?

헤헤헤..히히히..킥킥킥..

선생님.. 친구들이 놀려요.

부러워서 그래.. 선생님 사랑 옷을 입어서..

부럽지? 선생님 사랑 옷..

크지? 선생님 사랑 옷..

옷이 마른 녀석들은

발을 닦아줍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발

두 손에 폭 담으면

선생님 가슴에 병아리가 삐악 삐악

선생님.. 아빠 같아요.

아빠 같긴.. 아빠다..이놈아..

아-빠!!

이놈이 선생님한테?

아빠라면서요!

아빠들에겐 미안하지만

마음에 좋습니다. 아빠소리.

자..밥 먹을 준비하자!!

오늘 밥은 진흙 밥에 은행 반찬입니다.

4. 겨울 이야기- 눈

하얀 눈이 함박눈이

펑 펑 소리도 요란하게 내리는 날에

옥길동 마을 하나가

하얀 눈에 퐁당 빠졌습니다.

옥길동 하얀 회관이

송이 송이 하얀 눈을 입고

오리 털 하얀 겨울옷을 껴입은 듯

풍선 마냥 부풀어오르는 날입니다.

방학을 맞은 유치원 선생님들

재잘 재잘 참새 마냥 책상머리에 앉았다가

하얀 눈 손짓하는 눈에

장갑도 없이 외투도 없이

반가움에 달려나간 소복 눈입니다.

까칠 까칠 수염 가득한 선생님

커다란 비 장대비에 하얀 눈 굴릴 때

이모 집 간 일곱 살 제자녀석

옹알 옹알 눈 자랑에 손 전화가 뜨겁습니다.

"선생님.. 눈이 와요.. 눈이 펑펑 와요!!"

아침이면 울리는 손 전화 모양에

눈물샘 흘러가는 눈자위 들여다보며

사랑스런 아이들 조막손 마주 모아

울 선생님 여자친구 사귀길 소망하던

예쁜 눈이 하늘에서 옵니다.

일곱 살 난 제자 녀석

울 선생님 멋진 선생님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고민 고민 물어오면

'네 녀석 클 때까지 기다린다'

선생님 입 언저리 뽀뽀귀신 사랑귀신

웃음방울 대롱 대롱 줄행랑을 치는 녀석

하늘모양 고은 모양

아이들을 닮은 눈이

온 세상 가득히

선생님의 마음 밭에 가득한 날.....

5. 마지막 인사- 누가 뭐래도 선생님 할 랍니다!!

누가 차도 아니랄까 봐

차도에 차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

자동차처럼 오고 갑니다.

오늘은 인도에서 두 다리 타고 가야 하겠습니다.

토요일 이른 저녁입니다.

아이들 내려주는 버스 정거장을

두 다리로 걸어갑니다.

아이들 내리는 버스 정거장마다

하나씩 둘 씩 내려놓습니다.

오랜 시간 들어 않은 기억을

내려놓습니다.

하늘을 봅니다.

비를 내릴까 눈을 내릴까

고민하는 하늘입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선생님 할 랍니다.

누가 선생님 하지 말라 했나...

혼자서 하늘보고 큰소리입니다.

가끔씩 하지 말까 생각했던 자신에게

큰소리치는 중입니다.

누가 어느 때 '선생님!'하고 부르면

이제야 고개 돌려 선생님인데

아직도 내 맘에는 선생님 같지 않은데

30년 할아버지 선생님 약속

아직도 세 등분에 하나도 채우지 못했는데

누가 뭐래도 선생님 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아직은 선생님이 아닌 까닭입니다.

신호등에서 멈춥니다.

빨간 집에 검은 사람이 서 있습니다.

"선생님! 기다릴 때는 저렇게 서 있어야 되요?"

한 녀석이 묻던 기억.

"그럼, 걸어갈 때도 저렇게 다리 벌리고

겅중겅중 걸어가야 되게?"

"히히히!"

30년 할아버지 선생님이 될 때까지

빨간 집 검은 사람처럼 서지 않을 렵니다.

초록 집 검은 사람처럼 겅중겅중 살랍니다.

"선생님! 전 커서 질경이 반 선생님이 될 거에요"

"그럼, 나는?"

"내가 할거니까 선생님은 큰 선생님 하세요"

"큰 선생님?"

"선생님의 선생님, 큰 선생님이요"

일곱 살 제자녀석

질경이 반 내 놓아라 찾아오기 전에는

누가 뭐래도 선생님 할 랍니다.

누가 뭐래도 작은 선생님 할 랍니다.

걷다보니 1시간을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10년 세월을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선생님이란 이름

너무나 사랑하는 줄 알았습니다.

"까먹지 말아야지!"

하늘보고 하늘같이 소리칩니다.

하늘이 말합니다.

'누가 뭐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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