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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부전 자전


1. 아버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노인 복지 센터에 가는 날입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이력서를 한 통 삽니다.

걸음에 흔들거리는 이력서...

야릇한 기분입니다.

" 아버지 준비되셨어요? "

" 어디 가는데~ "

" 복지 센터에 가야되요. 이력서도 한 통 써야 되구..."

이력서를 내밉니다.

" 이력서는 무슨... "

이력서를 받아든 아버지 표정이 야릇합니다.

" 살아오신 대로 그냥 쓰시면 되요. 하셨던 일도 적으시구..."

돋보기를 꺼내시는 아버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신문지 한켠에 무엇인가를 적으십니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열심히 적으시더니

이력서를 꺼내십니다.

" 안 가면 안되나... "

" 아버지랑 같이 가려고 조퇴했단 말이에요~ "

" 담에 가면 안되나... "

" 오늘 가야되요. 4시까지 가야하니까 서둘러야 되요. "

" 허참... 오늘은 가면 안되는데... 술을 한 잔 해서..."

어쩐지.. 자꾸 빼신다 했더니만

낮부터 술을 한 잔 하신 까닭이었습니다.

" 괜찮아요. 이력서만 내고 설명만 잠깐 듣고 올꺼에요 "

그제야 안심이 되셨는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 또박

이력서를 적기 시작하십니다.

태어나 처음 적어 보신다는 이력서.

아버지의 이력서를 보니

아버지의 삶이 보입니다.

아버지의 이력서는 아버지의 삶 그대로입니다.

" 가시죠. 아버지..."

아버지와 집을 나섭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택시를 타고 갑니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께 일을 찾아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 아까 전화 드렸던 사람인데요..."

" 아..네.. 여기 앉으세요 "

아버지와 함께 길쭉한 탁자에 앉습니다.

짐짓 태연한 채 하시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아버지.

상담을 해 주시는 분이

이것, 저것 아버지에 대해 묻습니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시지 못하시는 아버지.

아무래도 술냄새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눈치이십니다.

아버지 대신 대답을 합니다.

" 어떤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

" 되도록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건물관리도 좋고 경비도 좋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몸을 많이 움직이시는걸 하고 싶어 하십니다. "

" 예~ 알겠습니다. 일이 들어오는대로 연락 드릴께요. "

" 예..연락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취업센터를 나서자 마자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 무슨 말을 하는지... 하두 목소리가 작아서..."

숫기없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역시 아버지께서 주신 모습이었습니다.

" 아버지~ 핸드폰 항상 켜 놓고 다니셔야 해요.

제 연락처를 알려주기는 했어도 아버지께 먼저 연락이 갈꺼에요 "

" 여기는 어디냐? 운동장도 있네? "

딴청을 피우시는 아버지.

그래도 좋으신 모양입니다.

앞서 가시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취업 센터로 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파트 환경미화를 하는 일이 있는데 하실 의향이 있으시냐고...

아버지께서 전화를 안받으셔서 제게 한다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립니다.

신호가 가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으시는 아버지.

' 일부러 안 받으셨나? '

아버지께 전하니 대뜸 하신다고 하십니다.

기다리신 모양입니다.

면접 날짜가 잡히고

몇몇 분과 함께 면접까지 보고 오십니다.

면접 본 사람 중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렸다고 웃으시면서...

하루가 지납니다.

어찌되었나 궁금하여 아버지께 계속 전화를 합니다.

행여 안되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또 하루가 지납니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아버지께 전화를 합니다.

반가운 소식을 만납니다.

아버지께 드디어 일이 생겼습니다.

" 아~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

나도 모르게 아버님이란 말이 툭 튀어 나옵니다.

좋은 기분에 학부모님 대할 때 쓰는 말이 불쑥 나온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생크림 케잌 하나를 삽니다.

" 초는 몇 개나 드릴까요? "

" 초요? "

한참을 생각합니다.

' 생일이 아니니 초는 안 켜도 상관없겠지'

" 초는 안 주셔도 됩니다. "

걸음에 흔들리는 케잌...

마음이 야릇합니다.

" 그게 뭐냐? "

" 케잌이에요 "

" 학부모가 사 줬냐? "

" 아뇨~ 제가 직접 샀어요. "

" 웬일로 케잌을 다 샀냐? "

" 아버지 취직 축하하려구요~ "

" 취직은 무슨..그것도 취직이라고... "

아버지의 입술이 씰룩합니다.

좋으신 모양입니다.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더욱 좋습니다.

" 취직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

가끔씩 어머니가 되어 주시는 아버지이시기에

가끔씩 딸이 되기도 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케잌을 앞에 두고

언제해도 어색하기만 한 둘 만의 파티를 엽니다.

또 다시 이틀이 지납니다.

오늘은 아버지께서 첫 출근하시는 날.

아들보다 먼저 집을 나서시는 아버지를 뵈니

마음이 짠- 한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긴 낮이 지나고 밤이 됩니다.

늦은 밤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시는 아버지.

' 첫 출근 하신 날이라 피곤하기도 하실텐데 어딜 가시려나?'

옷 입으시는 모양이

앗!

고물을 주우러 가실 모양입니다.

역시나 아버지이십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충분히 일 해야 만족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아들은 그저 웃기만 합니다.

'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인게 자랑스럽습니다. '

2. 아들.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황토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집니다.

한차레 퍼붇던 소나기 뒤로

턱까지 숨이 차는 무더위의 연속입니다.

삽 한 자루 챙겨들고 밭 길로 갑니다.

얼마 전 만들었던 진흙 놀이터로 갑니다.

' 물 놀이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

질퍽한 흙 물에 삽을 꽂고

시뻘건 황토 흙을 퍼냅니다.

온 몸에 황토 빛이 물듭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제가 좋아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라

지치는 줄도 모릅니다.

뉘엇뉘엇 저녁 해가 집니다.

옥길동 붉은 노을은

언제봐도 장관입니다.

눈 앞이 어둑해집니다.

극성맞은 모기 탓에

발목이 시큰해집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작업복에

황토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고등학교 문예 반 시절 읽었던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란 시를 문뜩 떠 올리며

황토 흙 범벅이 된 삽을 씻습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습니다.

손가락으로 주무르니

물컹 물컹한 것이 물풍선을 만지는 것 같습니다.

' 내일은 폭을 좀더 넓혀 봐야지~ '

모기향을 피웁니다.

사르르 피어 오르는 향 내를 맡으며

사무실 책상 머리에 앉아

이것 저것 손 대다보면

어느덧 달도 기웁니다.

옥길동 언덕을 되짚어 내려가는 길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버지이십니다.

" 뭔 할 일이 그리 많아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오냐~ "

" 아버지 닮아서 일복을 타고나서 그래요~ "

3. 부전자전(父傳子傳)

말 없이 일만 하시던 아버지와

말 없이 눈만 껌벅이던 아들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

말 없이 속만 태우기를 30년.

일 많던 아버지는 열심히 일만 하셨고

속 없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지순(至順)하시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이제서야 지고(至高)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았던

철없는 아들의 크나큰 불효입니다.

아버지

단 하루를 살아도

이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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