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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아버지와 아들


시집 간 누이동생 집들이에 다녀 왔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동네방네 눈물로 손 내밀어 마련한

단돈 오백만원으로 시집 간 동생입니다.

알뜰 살뜰 개미처럼 살아

반듯한 서른 세평 아파트를 마련했다 하여

기쁜 마음으로 동생 집을 찾았습니다.

네 살 동이 여자 아이 하나를 두고

이제 곧 태어 날 두 번째 아이를 배에 둔 동생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빠랍시고 해 준것, 해 줄것도 없어

지갑에 넣고 다니기만 하던 한강 유람선 티켓 두 장과

예쁜 조카 입히라고 여름 옷 한 벌 준비하여

그렇게 찾아 간 집입니다.

늦은 시간 막내 고모와 고모부께서

바쁜 일 중에 어렵게 오셨습니다.

나이 서른 여섯에 반듯한 집 마련한 매제라고

어깨 두드리며 칭찬 하시다 말고

오랫만에 보는 텔레비젼 앞에서

입 다물 줄 모르는 제게

한 말씀 하십니다.

" 너는 어찌 지내냐? "

" 잘 지냅니다. "

" 맞선은 어떻게 됐냐? 만나 봤냐? "

" 아직... 시간이 맞질 않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그 집이 참 부자다. 그 집 아버지가 어디 회사 사장님이라지?

좋은 기회니까 잘 잡아라. "

"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고모부께서 신경 쓰셔서 마련해 준 맞선이라

최선을 다 하긴 하겠지만

고모부 체면을 위해 단지 최선만 다할 것 같아

마음 한구석 죄송한 마음이 자리합니다.

다시금 넌지시 바라보시는 모양이

동생이 집뜰이 하니 어떠냐 하는 눈치시라

동생이 집뜰이 해서 '행복하다' 는 답을 살며시 띄웁니다.

고모부께서 바라시는 대답은 아닌 줄 알지만...

새로운 사업이 나올 때면

다른 사람 재쳐두고 항상 먼저 말씀주시는

고모와 고모부께 감사하면서도

제 삶은 항상 그곳에 있지 않다 말씀 드리곤 하였는데...

여지없이 같은 반응에 답답해 하시며

새로운 사업 이야기로

화재를 바꾸시는 고모부.

아버지 덕에

커다란 자가용을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모께서 넌지시 묻습니다.

" 그래~ 월급은 좀 올랐냐? "

" 예~ 올랐습니다. "

" 많이 올랐냐? "

" 제 기준에는 그렇습니다. "

" 휴일에도 그렇게 바쁘게 일하면 과외수당은 나오냐? "

"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 안 줘도 합니다. "

" 그래도 그런건 줘야 되는거 아니냐? "

" 월급 주는 사람이 월급 받는 사람이라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습니다. "

" 아무리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네가 보람을 느낀다 해도

너도 이제 나이도 있고 결혼도 해야하니 돈 벌 궁리도 해야 하지 않겠냐? "

없는 살림에 과부 빚을 내서

목 좋은 곳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해 두었다가

프리미엄이 팍팍 붙어

그 자리에서 공으로 돈 번 사람 이야기~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해 봐야 되지 않겠냐 하는 말씀~

걱정 반 기대 반 섞인 여러 이야기와 말씀을 들으며

줄곧 앞만 보고 가시는 아버지 뒷 모습만 바라봅니다.

"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

아버지와 함께 불꺼진 집, 불을 밝히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지나 1시입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정리하시던 아버지께서

툭 허니 던지시는 말씀이,

" 그런데, 너 결혼하면 어찌 살려고 그러냐?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이 아버지 생각하지 말고 너 네 둘이 돈모아 살아라.

나는 어찌어찌 살테니...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아버지 모시지 못한다는 여자랑은 결혼 안합니다.

절대 안합니다!! 여자랑 안 살면 안 살았지 아버지랑은 함께 살겁니다!! "

아버지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결혼하면 분명 따로 살자 하실 아버님입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절대 따로 살 수 없습니다.

30년 동안 아버지 원망 속에 살다

이제 겨우 아버지 사랑을 알게 된 아들 녀석이

결혼했다 하여 아버지를 홀로 계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재혼하실 아버님도 아니기에.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진정 결혼하고 싶은가!

아이들 보면 아빠가 되고 싶고

엄마들 보면 남편이 되고 싶고

아빠들 보면 그래서 그렇게 부러울 수 없지만

그래서 진정 결혼하고 싶은가!

...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꼭 해야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결혼도 꼭 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아빠도 남편도 꼭 되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꼭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이 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나의 굴레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내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은

조그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며

삶이 아름다운 아버지

존경하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설령 아빠가 된다 하더라도

내 아버지와 같이

내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생 집들이에 다녀오니

새로운 마음이 자리합니다.

.

.

.

.

.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 접으신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주말도 없이 늦게 오는 아들 자식 기다리시며

홀로 계시기도 적적하여

저녁마다 마실겸 다녀오시는 고물줍는 일도

영 신통찮으신가 봅니다.

아무래도 혼자 하시는 일인만큼.

지나가는 말씀에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다 하시는데

자식 가슴에 커다란 멍울이 생기려합니다.

시간날 때 마다 꼭 전화라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되도록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손주녀석 만들어 드릴 수는 없더라도

허리만한 제자 녀석들

집으로 자주 초대하여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도 자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평생 일 하시던 분이시라 걱정이 앞서는데

보수는 적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지런하신 아버님

일 하시는 보람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행여 이 글을 보시는 여러 님들도

저희 아버님이 하실 만한 일자리를 아시는 분은

희망이에게 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희망이 온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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