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서울 나들이


언제부터인가 내게 가장 큰 고역은

서울 나들이를 가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대학 후배의 결혼식이 있는 날!

하필이면 서울하고도 강남에서 결혼식을 하다니...

서울 나들이가 즐겁지 않은 나로서는

이만한 고역도 없습니다.

몇 년전 맞선을 보기 위해 맞추었던 양복

지금은 장례식 때나 입는 양복

고스란히 장식품이 된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서울 나들이와 매한가지인 녀석을 꼭 입어야 하나...

생활 한복을 꺼냅니다.

가끔씩 즐겨입는 생활 한복이 오히려 나을 듯 합니다.

가는 곳에 따라 옷 무게도 달라진다 하더니만

생활 한복 또한 무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잘 되었다. 나선 김에 버스 표나 예매하고 와야겠다.'

추석 명절을 앞에 두고 갈 벌초를 생각합니다.

벌초 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 하더니

오늘이 꼭 그 판입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사람이 산을 이루고 사람이 바다를 이루는 지하철.

산은 무릇 나무와 풀과 꽃과 돌과 흙과 새가 이루어야 하고

바다는 짠 내 나는 물과 가지 가지 물 고기들이 이루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지옥철입니다.

서울 나들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이 전부이고 사람만이 생명인 세상 같은.

어느 때 한 번은 서울하고도 유명한 강남에서

살아있는 바다 골뱅이, 일명 소라의 등 껍질에

별 희안한 그림을 다 그려 파는 상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소라를 애완용으로 파는 데도 모자라

사람 좋으라 온 몸에 물감 칠까지 덕지덕지 한 모습을 보며,

끝없는 인간의 욕심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할머니들이 먹거리는 하늘이라 하여

먹을 것으로 장난하면 혼찌검을 내던 기억이 납니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긴 하겠지만

생명을 업신 여기는 모습에서는 혼이 나야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서울 나들이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혼을 빼는 여자들 때문입니다.

무릇 화장이란 본디 갖은 아름다움을 돕기 위해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제는 아예 숨기기 위해 쓰는 가면이 되어 버렸습니다.

화장 뿐만 아니라 몸을 둘러싼 차림에 눈 알이 쏟아질 지경입니다.

서울 나들이만 가면 두통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현란한 모습에

내 마음에 센 파도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덩그라니 사내 둘만 살다 보니

치마만 두르면 가슴에 날바람이 붑니다.

이래 가지고 어이 혼자 살겠나 싶습니다.

가지 가지 뻗히는 생각을 접고자

지하철 한 모퉁이에서 책을 펼칩니다.

야마오산세이 지음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입니다.

어디에 있든 내 마음에 자연이 있으면

어디에 가든 자연 속에 있다 했는데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인 줄 몰랐던 세월처럼

자연을 벗어나니 내 마음도 싱숭 생숭 합니다.

호박 썰듯 숭덩 숭덩 글을 읽다보니

어느덧 가야 할 곳에 이릅니다.

다행히 비가 옵니다.

시끄러운 소리 발 밑에 잠재우고

차박 차박 발에 채이는 비소리를 듣습니다.

17층!

내가 가 본 결혼식장 중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사방이 유리문으로 꽉 막힌 곳만 아니었더라도

동물원 원숭이마냥 창밖만 내다보지만 않았어도

단순히 땅 위라는 생각 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후배 녀석을 만났습니다.

하얀 색이 바랜,

약간은 아이보리 색이 감도는 턱시도를 입고서

늘씬한 만큼 시원해 보이는 녀석이 히죽 웃습니다.

" 좀 일찍왔다. "

짧은 인사 뒤로는 좀 일찍간다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오랫만에 대학 후배들을 만납니다.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오래된 영화 한 편을 트는 것 같습니다.

" 어! 창욱이 형! 잘 지냈어요? "

다들 잘 지냈냐고 묻습니다.

잘 지냈다고 답하고

너는 잘 지내냐고 다시 묻습니다.

역시 잘 지냈다고 합니다.

다음 말이 궁금한데

다들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30평도 안 되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다들 분주하기만 합니다.

특별히 갈 곳도 없는데

왔다 갔다

새 장에 갇힌 참새마냥 합니다.

새 신랑이 낀 장갑마냥 하얀 봉투에

' 축 결혼' 이라 쓰고, 대학 선배 김 창 욱 이라고 쓴 후에

넌지시 내어 주고 살며시 내려 옵니다.

" 어! 형! 어디가? "

지하철 계단에서 후배 녀석을 만납니다.

" 결혼식장 들렀다 간다. "

" 벌써? "

" 일이 있어서... "

" 에이.. 그러는게 어디있어? 같이 가자. "

" 어..어.. 일이 있다니까.. "

또 다시 17층!

두 번 올랐으니 합이 34층입니다.

" 어~ 형! 오랫만이야! "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후배 녀석을 만납니다.

" 결혼식인데 복장이 왜 그러냐? "

" 집에서 그냥 나왔거든. 이래뵈도 내가 오늘 찍사야~ "

" 그래? "

" 안 그래도 어제 형 얘기 했는데 "

" 무슨 얘기? "

" 거 있잖아. 에지(edge)얘기. 에지..히히.. "

대학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시를 치를 때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체육교사를 하자면 실기시험도 치루어야 하는데

실기시험 중 하나인 핸드볼 시험을 볼 때 였습니다.

달려와 슛을 하는 이른 바 런닝 슛 시험이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핸드폰 골대를 하얀 끈으로 아홉 등분을 하여

가운데에 넣으면 3점

각 모서리에 넣으면 5점(에지 포함)

중간 지점에 넣으면 4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때 교내 핸드볼 선수를 한 적도 있는 터라

핸드볼은 자신있는 종목이었습니다.

힘차게 달려와 강 슛을 날렸는데

그만 공이 골대를 살짝 스치고 뒤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일명 탁구에서도 자주 나오는 에지(edge)가 된 것입니다.

골에 들어 가지는 않았지만 에지도 엄연히 5점인지라

5점이라 생각하고 물러 서려는데

심사위원이 ' 0 ' 점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왜 ' 0 ' 점이냐! 분명히 에지가 아니냐 따졌지만

심사위원 전체가 빈 볼(빠진 공)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다! 분명히 에지다! 라고 계속 우기자,

심사위원 한다는 말씀,

" 거 참.. 선생님 하실려는 분이 그러시면 안 되죠! "

거참.. 선생님 하시는 분이 그러시는건 되구요?

분명히 에지인데...

원통해서 물러서는데, 뒤에 섰는 후배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 형! 사실 에지맞아. 코딱지 만큼 '팅'하는 소리가 들렸거든 "

짜~식들!

항의할 때 도움이나 주지. 끝나고 나니까 훈수야, 훈수는!

생각 해 보니, 에지 사건은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핸드볼 실기를 마치고, 축구 실기를 볼 때였습니다.

전 날 비가 온 터에 운동장에는 군데 군데 물 웅덩이가 있었지만

실기시험을 연기할 수 없어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핸드볼 뿐만 아니라 축구 또한 자신있는 종목이었던 나는,

이번 만은 잘 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공을 몰면서 장애물을 지그재그로 빠져 나간 후

슛을 하는 시험으로 시간이 짧으면 짧을 수록 점수가 높았습니다.

물론 골이 들어가지 않으면 역시 ' 0 ' 점 이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 앉힌 후에 공을 몰고 골대로 향했습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습니다.

힘차게 다리를 뒤로 빼며 강 슛을 날렸는데,

땅 볼로 쭉- 뻗던 공이

그만 골대 앞에 놓여 있던 다른 공에 맞고

골대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공만 없었더라면 분명히 골인인지라

골인이라 생각하고 물러서는데,

심사위원이 이번에도 ' 0 ' 점이라 외칩니다.

아니... 아니.. 이게 왜 ' 0 ' 점이냐고 따지니까

그러게 왜 거기다 공을 차냐고 오히려 뭐라고 그럽니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 웃을 수 밖에...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혀 가만히 섰는데,

뒤에 섰던 후배 녀석 다가오며 또 다시 하는 말!

" 형! 이번에도 에지 맞아. 에지! "

이런! 경을 칠 놈!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요 놈의 후배 녀석이 더 얄미웠습니다.

결국 두 번의 에지 사건으로 실기를 망친 나는

보기좋게 낙방(落榜)이라는 고배(苦杯)를 마실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사건이 바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일이라

지금에서는 오히려 고마운 ' 에지 ' 가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때의 그 에지 사건은

임용고시를 보는 후배들에게 두고 두고 교훈이 되었다나 뭐라나?

다시금 지옥철입니다.

'어서 가서 쉬어야겠다'라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서울 나들이를 한 날은

안팍으로 몸이 쑤시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 모퉁이에서 하늘을 봅니다.

길고 긴 빗줄기가 땅으로 닿는 모양을 봅니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나의 일상이 곧 아웃도어 라이프(out door life) 이니,

나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이럴까?  (0) 2010.05.05
나의 삶은 행복이다!  (0) 2010.05.05
밤이 되면 나는 죽는다!  (0) 2010.05.05
무 면허  (0) 2010.05.05
떡볶기  (0) 2010.05.05
하늘이의 하소연  (0) 2010.05.05
보물 찾기  (0) 2010.05.05
도대체 가을은 언제 오는 거야?  (0) 2010.05.05
세연이  (0) 2010.05.05
똥 친구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