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세연이


팔뚝 밑으로 붉게 긁힌 상처.

손톱에 긁힌 상처입니다.

팔뚝 뿐만 아니라 무릎 위 허벅지에도 하나!

만지면 쓰라리지만

볼 때 마다 괜시리 행복해 지는 상처입니다.

상처를 준 녀석은

여섯살 별꽃반 여자 친구

세연이 입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숲 여행 마지막 날!

모둠 선생님으로 오신 학부모님이 네 분.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오신 아빠까지 모두 네분입니다.

일곱 살 질경이반 모둠이 모두 네 모둠이니

선생님이 궂이 모둠을 맡지 않아도 되는 날입니다.

여섯 살 별꽃반 선생님께서 오십니다.

별꽃반 어머님께서 한 분 못 오셔서

선생님이 두 모둠을 맡게 되셨는데,

한 모둠을 맡아 달라는 이야기.

생각 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떡입니다.

아이들 없는 선생님은

맛 없는 빵처럼 심심한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별꽃반에는 세연이라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키나 덩치만 보자면 일곱 살 녀석인데

혼자만의 마음이 너무 커 아직도 여섯 살인 녀석입니다.

어른들은 세연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세연이가 다른 아이들 중 하나라고 합니다.

" 세연이가 선생님을 좋아하니, 세연이도 함께 데려가세요. "

별꽃 반 선생님이 세연이 손을 건네줍니다.

손을 잡은 세연이는 마음을 잡은 듯 좋아합니다.

선생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맞 잡은 손 등을 남은 한 손으로 긁습니다.

손 등에 발갛게 핏줄이 섭니다.

" 세연아! 그렇게 하면 선생님 아파! "

손을 잡으며 싱긋 웃어줍니다.

세연이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여름입니다.

새로운 유치원을 찾는 세연이가 학교 구경을 왔었습니다.

여러가지 치료를 받고 있는 세연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리 알아보기 위해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신기한 두 눈에 세연이의 커다란 마음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오로지 세연이 밖에 없었습니다.

개나리와 함께 찾아 온 세연이와 다시 인사를 나누었지만

세연이 마음에 선생님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물어도 대답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한 번은 일곱 살 녀석들과 과자를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손에 든 과자를 열심히 들여다 보던 세연이.

" 과자 줄까? "

" 응 "

" 진짜? 몇 개줄까? "

" 두 개! "

" 두 개? "

" 응 "

" 알았어. 자! 두 개! "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온 몸을 두드리는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 우리.. 어디로 갈까? "

여섯 살 녀석들과 함께 수목원을 걷습니다.

일곱 살 녀석들 담임만 여덟 차례.

선생님 마음에 새로운 흥분이 생겨납니다.

오늘에 대한 기대와 흥분입니다.

여섯 살 녀석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던 선생님은

여섯 살 녀석들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신이 납니다.

" 꼭데기까지 가요 "

" 정말? 힘들지 않겠어? "

" 안 힘들어요. 어제도 갔었어요. "

" 그래? 그럼, 선생님도 힘 내서 가야지. "

손은 두개 밖에 없는데

손 잡으려는 녀석들은 여섯이나 됩니다.

" 선생님 손은 두 개밖에 없다. "

" 그런데, 세연이 손은 왜 잡았어요? "

" ................ "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난감해 하는 마음을 세연이가 알았는지

선생님 손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 높은 곳에 올라가? 높은 곳에 올라가? "

" 그래. 높은 곳에 올라가 "

" 어~ 높은 곳에 올라가? 높은 곳에 올라가? "

세연이 얼굴을 봅니다.

선생님이 세연이 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이 분명합니다.

" 높은 곳에 가냐구? "

" 높은 곳에 올라가? 높은 곳에 올라가? "

" 그래. 높은 곳에 올라가 "

맞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고서

팔을 잡아 당기기도 하고 손 등을 할퀴기도 합니다.

" 높은 곳에 올라가? 높은 곳에 올라가? "

" 아니야. 높은 곳이 아니야. 걸어가면 돼. 올라가지 않아. "

" 높은 곳에 올라가? 높은 곳에 올라가? "

" 아니야. 높은 곳에 안 올라가. 그냥 걸을꺼야. 조금만.. 조금만..."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앞을 보던 세연이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 아...그...베~ "

아그베 나무!

세연이도 아그베 나무를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버스에서 즐겨 나누던 나무 이름!

세연이도 아그베 나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 아그베 나무! 저기에 있네? 아그베나무! "

세연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누구보다도 혼자 만의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

그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선생님.

그래서 더욱 세연이 마음을 파고 들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섯 살 녀석들은 확실히 일곱 살 녀석들과 달랐습니다.

이 녀석들을 보면 일곱 살 녀석들은 수염 난 아저씨들 같습니다.

이 녀석들을 보면 일곱 살 녀석들은 이력이 난 장사꾼 같습니다.

" 선생님! 이게 뭐에요? 어? 움직이네? "

머리 위 풍성한 나뭇 잎 사이로

잘게 부수어지는 햇볕 부수러기를 밟으며

아이들이 손 장난을 합니다.

" 선생님! 햇볕이 부셔졌어요. 햇님이 네모가 됐어요. "

" 그러네? 정말 그러네? "

손을 꼭 잡은 세연이는 계속 혼잣말을 합니다.

" 아..그...베~ 아...그...베~ "

작은 신발 종종 걸음에도

앞으로 걸으니 벌써 꼭데기입니다.

" 자! 우리 점심먹자! "

도시락을 꺼냅니다.

세연이가 도시락을 꺼내더니 선생님에게 내밉니다.

" 먹어? 먹어? 먹어? "

" 선생님 먹으라구? 아니, 세연이 먹어. "

얼굴을 구기면서 다시 말하는 세연이.

" 먹어? 먹어? 먹어? "

" 그래. 먹을께. 잘 먹을께. 고맙습니다! "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세연이.

도시락을 열고 숫가락을 잡습니다.

" 자! 세연아! 밥 먹어."

세연이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휙- 손을 뻗어 도시락을 엎어 버립니다.

순간,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 세연이가 원래 밥을 잘 엎어 버리니? "

세연이를 바라보며 다른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 네! 그래서, 선생님한테 혼 나요. "

" 혼 나면 밥을 먹니? "

" 근데 먹여줘야 해요. "

" 그래? "

혼을 내야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손바닥을 펴고 세연이 허벅지를 탁- 때립니다.

" 밥을 쏟으면 안 되지. 소중한 밥인데! "

제법 소리도 높여 혼을 냅니다.

아이들이 싱글 거립니다.

선생님 혼 내는 모양이 신기한가 봅니다.

" 이제는 쏟으면 안 된다. 알았지? 자! 밥 먹어! "

밥 한 술 떠서 세연이 입에 가져갑니다.

입을 벌려 밥을 먹는 세연이.

마음에선 신바람이 나지만

겉으로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잘 했어. 그렇게 하는거야. 아주 잘 했어. "

선생님도 도시락을 꺼냅니다.

선생님 도시락은 김밥입니다.

아침 일찍 24 시간 김밥 집에서 산 김밥.

" 김밥 하나만 줘요. "

한 녀석이 김밥이 먹고 싶은지 손바닥을 펴며 말합니다.

" 그래! "

" 저두요! "

" 그래! "

김밥을 나누고 나니, 밥을 씹던 세연이 입이 멈춥니다.

" 세연이도 줄까? 김밥? "

김밥을 보자 또 다시 손을 뻗는 세연이.

보기좋게 쏟아지는 김밥입니다.

" 어? 선생님 김밥도 쏟았다. "

" 음.... 요 녀석이? "

세연이를 바라봅니다.

" 선생님, 김밥 쏟아서 어떻해요? "

걱정이 되는지 젓가락을 빨던 한 녀석이 묻습니다.

" 괜찮아. 선생님 도시락 두 개 싸왔거든. "

가방에서 또 다른 김밥을 꺼내며

세연이를 바라봅니다.

" 이 녀석! 이건 선생님 도시락인데 쏟으면 어떻하니? "

또 다시 손바닥을 펴 세연이 허벅지를 탁- 때립니다.

전혀 움직임이 없는 녀석.

하지만, 이러한 손짓이 세연이를 잠시 얌전하게 합니다.

도시락을 세 번이나 엎고서야 점심식사를 마칩니다.

물을 찾는 세연이에게 물통을 건네 줍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있는 여섯 살 녀석들을 보면서

진정 특별한 것은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임을 알게 됩니다.

" 우리 물 놀이할까? "

" 물에 내려가? 물에 내려가? "

또 다시 불안해 하는 세연이 손을 꼬옥 잡으며,

" 괜찮아. 선생님이 옆에 있을께. 이렇게 꼬옥 잡고 옆에 있을께... "

..................

집에 갈 시간입니다.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탑니다.

세연이를 보시며 별꽃 반 선생님이 말씀 하십니다.

" 아침에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네요? "

" 도시락을 세 개나 엎었어요. "

" 그래요? "

" 네! 하지만 밥은 잘 먹었어요. "

세연이를 봅니다.

세연이 마음에 선생님 자리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마음에는

커다란 세연이가 있습니다.

녀석이 아그베 나무를 기억하듯이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저- 멀리

가지 높은 아그베 나무가 보입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볶기  (0) 2010.05.05
서울 나들이  (0) 2010.05.05
하늘이의 하소연  (0) 2010.05.05
보물 찾기  (0) 2010.05.05
도대체 가을은 언제 오는 거야?  (0) 2010.05.05
똥 친구  (0) 2010.05.05
여자가 왜 무서워요?  (0) 2010.05.05
나무 잠꼬대  (0) 2010.05.05
해리포터와 가재  (0) 2010.05.05
한 번 보면 신기하고 두 번 보면 반가운 거야!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