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들께서 많이 오셨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모둠 선생님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모둠씩 엄마 선생님과 짝을 이루어
수목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득하던 주머니가 텅 빈 것처럼
갑자기 허전해 지는 선생님.
민들레반 선생님께서 오십니다.
한 녀석의 손을 꼬옥 잡고서.
자세히 보니 민들레반 소임이 입니다.
" 선생님! 오늘 모둠 선생님 안 하시면 소임이 좀 봐 주시면 안될까요? "
버스에서 부터 열이 많던 소임이.
팔걸이에 기대어 꾸뻑 잠을 자더니만
결국 선생님 손에 이끌려 옵니다.
" 알았어요. 제가 함께 있을께요. "
이마를 짚어 봅니다.
아직도 열이 많습니다.
" 해열제는 먹었니? "
" 네 "
" 선생님하고 같이 다닐까? "
" 네 "
수목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파서 그런지 소임이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 친구들이 어디갔지? 벌써 멀리 멀리 갔나보다. "
" .................. "
" 친구들에게 돗자리 하나 빌려서 시원한 나무 그늘 가서 누워있자.
잠을 좀 자고 나면 열이 내릴꺼야. "
" 네 "
꼬옥 잡은 손에서도 열이 느껴집니다.
" 선생님! 힘들어요. "
" 업어줄까? "
소임이는 베낭을 메고
베낭을 멘 소임이를 선생님이 업습니다.
" 선생님!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서워요? "
뚱딴지같이 묻는 녀석.
" 무서운거? "
" 네 "
" 음... 여자! "
" 여자? "
" 그래! 선생님은 여자가 제일 무섭다. "
" 웃기다! "
" 웃기냐? 선생님은 하나도 안 웃기다. "
한참을 걷습니다.
" 선생님! 쉬었다 가요 "
" 그래! 쉬었다 가자. "
예쁜 돌다리 놓인 개울 옆에 앉습니다.
" 다리를 이렇게 뻗고 앉으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
" 선생님! 신발 떨어지면 어떻해요? "
" 떨어지면... 줏어오면 되지. "
이마를 짚어 봅니다.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습니다.
" 열이 좀 내렸네? 다행이다. "
" 아침에 버스탔을 때 토할 것 같았어요. "
" 그랬구나. 하지만 이제 조금씩 열이 내리니 금방 좋아질꺼야. "
개울 물 흐르는 모양을 봅니다.
빙글- 돌멩이를 한바퀴 돌아
울퉁불퉁 돌 구르듯 굴러갑니다.
톡톡 튀어 오르며 하얀 살을 살짝 내밀었다가
머리 숙여 앞 구르기하듯 물 속으로 데구르 굴러갑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속에선
짝을 부르는 수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모릅니다.
" 이제 다시 갈까? "
" 어디까지 갈꺼에요? "
" 올라가다 좋은 곳 있으면 거기서 점심먹자! "
" 네 "
멀리서 아이들 물 차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울긋불긋 색동 옷이 보일 때쯤
까르르 쏟아지는 웃음소리가 함께 옵니다.
" 벌써부터 물 놀이하네? "
큰 바위 가득한 물 길 사이로
돌돌 물 구르는 사잇길 위로
동동 모둠발 폴짝 뛰는 개구장이 아이들이 있습니다.
" 선생님! 소임이하고 어디 가세요? "
" 밥 먹으러 간다. 좋은데 찾아서. 밥 먹고 올께.
와서 풍-덩 빠뜨려 줄께 "
" 알았어요. 와서 풍- 덩 빠뜨려 주세요. "
" 그래. 알았어. "
아이들 물 그림자 뒤로 한 발, 두 발, 세 발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앉습니다.
" 여기서 점심먹자! 배 고프다. "
" 선생님! 저 커다란 수건 가져 왔어요 "
돌돌말린 큰 수건을 꺼내 보이며 소임이 말합니다.
" 누워서 덮으면 이불 되겠다. "
" 네! 아주 커요. "
서로 마주 앉아 마주 보며 밥가를 부릅니다.
입 안 가득 침이 고여 단 맛이 나는 노래입니다.
" 자! 맛있게 먹자! "
밥 한 술 떠 입 안에 넣고
오물 오물 씹는 동안 물가로 가는 소임이 입니다.
" 밥 먹다 말고 어디가냐? 이 녀석아! "
발 가락 들어보이며 물을 차던 소임이
갑자기 뒤돌아보며 묻습니다.
" 선생님! 여자가 왜 무서워요? "
" 뭐? "
" 여자가 왜 무섭냐구요 "
" 여자가 왜 무섭냐면.. 음... 여자는... 선생님 마음을 막 흔들어 놓고
그리고... 음...더 멋진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음..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행동도 어색하게 만들어. "
" 어색한게 뭐에요? "
" 자연스럽지 않다는 거야. 편하지 않다는거구.. "
" 나도 여자인데요 "
" 여자 꼬멩이들은 괜찮아. 어른 여자들이 그렇지. "
" 나 꼬멩이 아니에요 "
" 그런데, 밥 안 먹을꺼야? "
돌멩이 위에 선명한 물 발자욱
소임이 털썩 앉으며 숫가락을 듭니다.
" 나는 어른되어도 선생님 보러 올껀데...
그럼, 나도 무서워요? "
" 아니.. 그렇지 않아. 그건 달라. "
" 그게 뭐야~ "
" 나도 몰라. 밥 먹자. 이놈아! 배고프다. "
꼬치꼬치 묻는 말에
볶음밥에 계란 비비듯
살짝 숨는 선생님.
밥을 먹고 힘이 났는지
이마의 열도 떨어집니다.
" 선생님! 나 물 놀이하고 싶어요. "
" 옷 젖으면 어떻해? "
" 괜찮아요. 저 옷 가져왔어요 .보세요. 여기요.. 그리고.. 여기.. 여기.. "
" 알았어. 대신 조금만 하자. 많이하면 또 아플 것 같으니까.. "
" 알았어요. "
일곱 살 친구들과 함께 첨벙 첨벙 물 놀이를 합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입 벌려 헤헤 웃는 녀석입니다.
손바닥으로 물 튀기며 옷 적시기 놀이도 합니다.
선생님 바지에서 주르르 물이 흐릅니다.
" 선생님! 옷 가져왔어요? "
" 그래.. 가져왔는데.. 차에 있어. 우리 옷 갈아 입으러 가자! "
쉴새없이 바지에서 물이 흐릅니다.
마른 발자욱 위로 물 자욱이 선명합니다.
마주 잡은 손이 따스합니다.
" 우리 엄마는 나하고 동생이 어서 캠프를 갔으면 좋겠데요. "
" 무슨 소리야? 그건? "
" 우리가 너무 말썽꾸러기라서 캠프가면 좋겠데요. "
" 선생님은 너희들 만나는 것을 기다리는데 엄마는 반대구나. 그렇지? "
" 네! 그래요 "
" 선생님에게도 너같은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
" 결혼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야... "
" 알았어. 이놈아! 잔소리 하지마! "
" 나랑 한판 하자는 거에요? "
" 뭐야? 이 놈이? "
이제는 멀쩡해졌나 봅니다.
아니 멀쩡해진 정도가 아니라
펄쩍 펄쩍 뛸 정도로 다시금 건강해진 녀석입니다.
도망가는 녀석을 쫓아가며
뒤 돌아보며 던진 녀석의 말을 떠올립니다.
" 여자가 왜 무서워요? "
뜀박질하는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가끔씩 아니, 종종
아이들은 선생님 마음 속에 들어와
선생님 그늘진(?) 마음을 꼬옥 안아 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