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부터 선생님한테 인사 안 할꺼에요"
"왜?"
뚱딴지같은 아침인사입니다.
"나 미술학원 다닐꺼에요"
"왜?"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이 싫어? 왜?"
선생님이 싫다는 소리에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고무줄마냥 늘어납니다.
"나 안 좋아하잖아요"
"선생님이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 싫어하잖아요"
"아니?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묻고 또 물어
대답하고 또 대답해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은 녀석...
"너, 어디가 아픈거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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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머리 좀 묶어 주세요"
두툼한 손
가느다란 머리칼을 잡았다가 놓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잡아 보지만
기름바른 머리마냥 술술 빠져 나가는 머리칼.
"선생님은 왜 이리 머리를 못 묶을까?"
"선생님은 남자니까 그렇죠"
"아니야. 연습도 많이 했단 말야...
언젠가는 두가닥 세가닥으로 꼬는 머리도 꼭 묶을꺼야!"
또 다시 달려오는 녀석.
"아까 머리 묶어 줬잖아"
"다시 묶어줘요"
고무줄을 입에 물고 머리 묶는 선생님.
"선생님! 머리 묶어 줘요"
"또 묶어?"
"풀어졌어요"
"그래! 머리 묶는 연습 많이 해서 좋네"
묶기에 짧은 머리지만 그래도 계속 묶어야 하는 머리
헝클어진 마음을 묶는 것처럼 연신 묶어야 하는 머리.
가만히 앉은 녀석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너, 어디가 아픈거니?"
.
.
.
.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반말하지 않기!"
"싫어!"
"왜?"
한참동안 한 이야기를 꿀꺽 삼킨 듯
다시금 반말하는 녀석.
"존댓말 하기 싫어!"
"왜? 선생님이잖아!"
"선생님 아냐"
"아냐, 선생님이야."
"아니야. 아니야. 선생님 아니야, 친구야"
"선생님이 친구야?"
"선생님 아니야. 친구야! 친구야!"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녀석.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라는 녀석.
그래서 절대로 존댓말을 하지 않겠다는 녀석.
그래서 뚝 뚝 눈물을 떨구는 녀석.
선생님 무릎에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줍니다.
"너, 어디가 아픈거니?"
.
.
.
.
숨바꼭질을 합니다.
아이들 키만한 풀들이 우거진 여섯살 때 고구마 밭
숨기도 재미있고 찾기도 재미있습니다.
"히히.. 재미있다"
"자! 그럼, 이제 찾는다!"
"나 안 할래요. 재미없어요"
금방 재미있다고 한 녀석이
금방 재미없다고 합니다.
"금방 재미가 어디로 갔어?"
"재미없어요. 나 안 할래요"
"그럼, 뭐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할꺼야!"
"그럼 재미없잖아!"
"싫어. 아무것도 안 할래!"
눈물이 흐릅니다.
"너, 어디가 아픈거니?"
.
.
.
.
.
"하하하"
웃음 소리가 유난히 재미있던 녀석
그 녀석의 웃음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그 많던 웃음이 퐁당! 눈물 속에 빠집니다.
세 번 웃던 웃음이
똑 똑 똑
세 방울 눈물이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일
바라고 바라던 일
엄마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는 일입니다.
엄마에게 직장이 생겼습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회사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웃던 아이가
고개숙여 눈물 떨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너, 마음이 아픈거구나!"
.
.
.
.
.
동그랗게 앉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듭니다.
엄마가 회사를 다니는 아이들입니다.
"우리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야"
"우리 엄마는 회사 갔다가 늦게 와"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이
웃음이 눈물이 된 녀석에게 한 마디씩 거들어 줍니다.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엄마도 신나지"
"맞아! 맞아!"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들은 열심히 들어주고
엄마가 회사 다니는 아이들은 열심히 말합니다.
"미술학원가면 재미없을꺼야. 친구도 없고..."
"맞아 맞아"
"그러니까 우리하고 같이 지내. 재미있게"
친구들이 눈물을 닦아 줍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흐릅니다.
어쩌면 이 눈물은
선생님이 친구들이 닦아 줄 눈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합니다.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손을 잡아 줍니다.
눈물이 마르고
맑고 밝은 웃음이 피어날 때까지.
언제나 바쁘신 우리 아빠
아빠처럼 바쁘고 피곤한 우리 엄마
그런 아빠와 엄마에게는 아이들이 있고
이러한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많이 필요합니다.
넘쳐도 넘친 줄 모르는 것이 사랑인 것처럼
부족하면 부족함이 너무나 큰 것이 사랑입니다.
아이들도 선택할 줄 압니다.
그 선택이 가슴 아픈 눈물일찌라도.
엄마, 아빠가 아니기에 잘 모르지만
선생님이기에 잘 아는 것!
아이들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