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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세상 밖으로 3.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베개 위로 하늘소 한 마리가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고 있습니다.

" 안녕? 또 만났네? "

혹시 문이 닫혀서 나가지 못하나 싶어 현관문도 열고 베란다 문도 활짝 열어 줍니다. 부시시한 도깨비 머리를 하고서 베란다 의자에 앉습니다. 역시나 사람들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베란다 바닥에 죽은 날 벌레들이 수두룩 합니다. 하루만 살다가 죽는 녀석들인가 봅니다. 녀석들에게는 그 하루가 평생이 되겠지만... 씻는 것도 잊고 한참을 앉아 있습니다.

' 저 강물은 어제 그 강물이 아닐텐데.. 어제처럼 흐르고 있구나.. 변함없이... '

강물과 길 사이에는 폭이 10미터 정도 되는 풀 숲이 있습니다. 숲에 고라니가 살고 있다고 하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는 간간이 녀석의 모습을 보셨다고 하는데 내가 있는 동안 그 녀석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이제 좀 씻어야겠다 '

베란다에 햇볕이 들이치기 시작합니다.

앞,뒤로 문을 열어 놓았더니 바람이 지나는 길이 됩니다.

막상 밖으로 나가자니 햇볕 속으로 던져지는 느낌이라 망설여집니다. 어슬렁 어슬렁 걷기도 잠시 다시금 방으로 들어옵니다. 잠시 걸었는데도 등에서는 땀이 흐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곳은 한낮의 불볕더위로 야단이 났다고 합니다.

' 자.. 이제 무엇을 할까... '

책 하나를 집어 밥상을 펴고 앉습니다. 솔솔 바람에 글이 술술 들어 옵니다. 동화를 쓰기 위해 읽고 있는 책 한 권과 곤충에 관한 책 하나... 곤충에 관한 글을 읽다 어슬렁 거리며 연신 걷고 있는 하늘소를 봅니다. 배개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하늘소를 봅니다.

" 어디가니? "

대답이 없습니다. 책에는 곤충들과 의사소통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수두룩한데 나는 왜 안 될까?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 먼저 곤충에게 마음을 열기. 칭찬하기! '

' 그래, 먼저 칭찬을 해 줘야지... '

" 안녕.. 하늘소야.. 너는 어쩜 그렇게... "

칭찬을 하려하니 괜시리 쑥쓰럽습니다. 보는 사람들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늘소가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 하늘 소야! 하늘 소야! "

한낮에도 컴컴한 침대 밑은 검은 하늘 소를 함께 삼켜 버렸습니다.

' 다시 나오면 말해야겠다... '

책을 덮습니다. 가방에서 펜을 꺼냅니다.

' 아차, 글 쓸 노트가 없네? '

안내실로 내려갑니다. 할머니와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 아..일어 나셨나? "

" 아..예...안녕하세요.. 혹시 노트 있으세요? "

" 노트? 글쎄... 좀..찾아 보고.. 노트는 없는 것 같은데... 저기..혹시.. 노트 있어요? "

방 안에 있던 할아버지께서 나오십니다.

" 노트는 없는데? 노트 필요하신가? "

" 예.. 뭐 좀 적으려고 하니까 적을 데가 없네요.. 그래서... "

" 그럼, 노트사러 가지 . 마침 간장도 떨어졌으니까... "

할아버지와 함께 봉고차를 탑니다. 오늘은 짐이 없어 옆 자리에 앉습니다.

" 언제든 나가고 싶으면 말혀요. 내 데려다 줄테니... "

" 뭐.. 나갈 일이 있어야지요. "

" 그래... 뭐 산다구? "

" 노트하구요.. 음.. 슬리퍼도 팔면 사려구요. .등산화 신고 다니려니 발이 무거워서요..그리고, 먹을 것도 좀 더 사구요..."

" 그런데.. 슬리퍼 파는 데가 있으려나? 일단 한 번 찾아 봅시다... "

" 네.. 고맙습니다. "

어제는 눈여겨 보지 않아 몰랐는데 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 0 0 기업에서 직접 길을 닦고 있는 중이라우. 전에 강물이 한 번 넘친 적이 있어서 지금 도로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지.. 그런데, 시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0 0 기업에서 직접 한다우..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스키장도 있는데 그곳이 바로 그 기업것이라 이제는 아예 땅을 사서 길을 직접 넓히고 있지.. 역시 돈 많은 기업은 뭐가 달라도 달라... "

" 아.. 예.... "

" 내 있다가 오면서 한 번 구경시켜 줌세.... "

" 예.. 그러세요... "

차는 어느덧 강촌역에 도착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젊은 남, 녀들이 보이고 베낭을 멘 사람들도 보입니다. 길 위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보니 저 만큼의 사람들이 오면 강물이 아니라 인도가 넘쳐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듭니다.

아무리 찾아도 신발가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식당과 편의점과 유락시설 뿐.

" 저기가 면 사무소니 저기에 가서 한 번 찾아 보자구... 거기는 학교도 있으니까 노트도 아마 팔거유.. "

" 예.. 고맙습니다. "

결국 슬리퍼는 사지 못했습니다. 문방구를 찾았지만 방학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고 다행히 농협 판매장에서 초등학교 노트를 몇 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일 주일 동안 먹을 장도 보고 할아버지를 위해 녹차 캔 하나도 삽니다.

" 더우신데 이거 하나 드세요 "

" 어휴.. 고맙수... "

할아버지께서 구경삼아 데리고 간 곳은 강촌 리조트였습니다. 0 0 기업에서 만든 리조트라고 하는데 수영장도 있고 콘도도 있고 골프장도 있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 해 주십니다. 평일에도 콘도는 방이 없다고 하시면서 겨울에는 스키장 때문에 더욱 호황을 이룬다고 합니다.

하지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워낙 이런 곳에는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발사가 마치 이발을 하듯 정돈 해 놓은 모습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 구경 잘 했습니다. "

" 아이구.. 뭘.. 또 나갈 일 있으면 말혀.. 내 얼마든지 갈테니께... "

" 예.. 고맙습니다. "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보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베란다에 햇볕이 가득합니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아니라면 방 안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시 책을 펼칩니다. 방 안 구석에 텔레비젼이 있기는 한데 텔레비젼을 켜면 모든 것들과 단절될 것만 같아 켜기가 두렵습니다. 참아 봅니다. ' 심심한 것도 익숙해지면 심심하지 않겠지' 생각하며...

하지만, 심심함은 일 주일을 지내는 동안 내게 가장 큰 고민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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