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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세상 밖으로 4.


삶에서 가장 긴 일주일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들 지난 일주일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되돌림이, 잊혀진 내 삶의 소중한 순간을 깨닫게 되는데

조금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침이면 북한강 허리 잘록한 베란다에 앉아 어제와 같은 그러나,

전혀 다른 오늘의 강물을 바라봅니다. 젖은 빨래마냥 몸뚱아리 길어져 가면 세수겸 샤워를 하고 잠깐동안이나마 온 몸의 냉기를 느끼며 밥상을 끌어다 앉아 책을 펼칩니다. 그리곤 소리내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소리내어 책을 읽게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날 소리없이 책을 읽다가 문뜩 한가지 생각에 골몰합니다.

'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

내가 책을 읽는지 책이 나를 읽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 책을 읽고는 있는데 누가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웅얼 웅얼... 분명 어디로부터 소리가 들려 오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입이라고 생각하면 입 안에 웅얼거림이 있는 듯하고 가슴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울려 나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거야? 그리고, 눈을 감아도 들리고 눈을 떠도 들리는 이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 오는 거지? '

그 동안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꼬리를 물고 튀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히, 생각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나는 영화보기를 좋아합니다. 책 읽고 글 쓰기를 좋아합니다.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즉흥적으

로 이야기를 꾸며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내 안에서 내 나름대로의 세계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것들이 취미 생활이 될 수는 있지만 내게는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세계들이 공중에 떠 있는 풍선처럼 제 각기 나름대로의 모양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이는 분명 현실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을 것이며, 현실에 근거하지 못한 나 자신의 공허한 환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실과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 있지 못하다면 나는 어쩌면 동화 속 피터팬처럼 현실 속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아.. 그런데.. 그런데.. 이 생각이란 놈은 나를 끝까지 혼자 두게 합니다.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나를 꺼내야 하겠습니다. 건져내야 하겠습니다.

책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합니다. 입을 열어 생각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또 다시 하늘소가 나타났습니다.

...........

스님들의 수행 중에 묵언 수행이 있다 합니다. 묵언 수행은 말 없이 하는 수행인데 영화나 책을 읽다 보면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하는 스님도 있다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스님들이 왜 하고 많은 수행 중에 묵언 수행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온 몸을 가득 채우는 잡념 덩어리들에게 끌려 다니다 결국은 잡념마져 날아가고 나면 그 속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하는데, 나는 그보단 나를 올바르게 드러내는 관계 속에서 진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에 무턱대고 용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바로 이러한 때에 하늘소가 나타납니다.

.................

이틀동안 하늘소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다른 곤충이나 동물들이 더 오래 머물렀는지도 모릅니다. 유독 하늘소만 기억나는 것은 유독 녀석만 크기가 컸고 유독 녀석에게만 관심을 많이 가져서인것도 같습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풀벌레들을 위해 베란다에 빵 하나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만큼 간절히 친구를 원했던 마음도 있지만 그만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소를 보며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외롭다면 외롭고 행복하다면 행복하였습니다. 그 때의 그 마음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었습니다. 하늘소는 하늘소이면서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친밀감과 애착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비록 이기적인 욕심일진 몰라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는 선생님 중에 나비를 불러 손가락에 앉히고 콧등에 앉히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물론 직접보지는 못했지만 직접 본 선생님으로 부터 체험담을 들었습니다. 친구가 필요한 나로서는 자연밖에 없는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모기가 날아와 발목에 앉아 피를 빨아도 손바닥으로 매몰차게 쳐서 죽이지 않고 한 마디라도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합니다. 무더운 날 저녁에는 아예 앞 뒤로 문을 열어 놓고 밤이면 찾아드는 날벌레들에게 쪽지 편지를 써서 현관 앞에 내어 놓습니다. 물론 ' 내가 살짝 맛이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라는 책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생명들과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라고 믿고 또한, 너무나도 말벗이 필요했던 나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방충망에는 수두룩하게 달라 붙어도 방 안에는 들어오지 않는 벌레들이었습니다. 쪽지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 오늘 밤에는 방이 너무 더워 방 문을 열어 놓는다.

그런데, 방문을 열면 곤충 너희들이 방 안으로 들어올까 걱정이 된다.

나는 곤충 너희들을 좋아하지만 잠을 자야 할 밤에는 내 방에 들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들을 주기 위해 베란다에 빵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그 빵은 얼마든지 먹어도 좋으니, 방 안에는 나를 존중해서 들어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 307호 친구가 '

참다 참다못해 그래도 사람이 너무나도 그리운 날에는 있는 친구, 없는 친구 모두에게 전화를 합니다. 가끔씩 안부전화를 하곤 하였지만 이때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반갑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잘못 걸려 온 전화가 왔더라도 연신 ' 전화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를 되뇌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바보같지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심심하게 있으라 한 사람 없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외롭고 힘들면서도 그렇게 버티고 있었는지...

...............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혼자일 수 있듯이 드넓은 자연 속에 있어도 내가 자연이지 않으면 결코 혼자일 수 밖에 없음을 직접 느끼고 싶은 자유 의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

떠나는 날 아침은 일찍 찾아 왔습니다.

전날 밤 찾아 온 시끄러운 손님들의 한 밤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이른 아침 마지막 아침을 먹고 깨끗이 설겆이를 하였습니다. 샤워를 하며 화장실 청소도 말끔히 하고 마치 새로 단장한 방처럼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닦았습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인지 가방을 메고 현관문에 섰는데도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굳이 묻지 않기로 합니다.

꼭 뭘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강촌역으로 가는 봉고차 안에서 할아버지께서 말씀 하십니다.

" 참.. 서운하네... 우리 할멈도 그러더구먼. 왠지 마음이 섭섭하다구... 그래도 일 주일동안 함께 지낸 가족인데 말이여. 아참, 어제 준 책 정말 고마우이.. 울 손주 녀석이 재미있다고 할아버지 한테도 열심히 읽어 주더라니까? "

떠나는 길에 ' 희망이의 일기' 한 권을 건내었습니다.

할아버지 손주를 보는 순간 우리 학교 작은 아이들이 생각나서 그냥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잘 팔리지는 않는 책이지만 그래도 내겐 소중한 마음이 담긴 책이니까...

...........

또 다시 버스 정류장입니다.

다시금 어디론가 떠나는 휴가 여행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 나는 지금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열심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은 내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아직도 부지런히 선생님 티를 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웃어 봅니다.

자.. 또 다시 출발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갈 이유가 충분한 저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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