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시
갑자기 눈이 떠집니다.
두리번거릴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눈을 감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
사흘 째입니다.
가마솥에 밤을 찌듯
모락모락 하얀 곰국을 삶듯
벌겋게 달아오른 온기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똑딱똑딱
시계소리에 맞춰
부시럭 부시럭
시간은 더디기만 합니다.
부엌 불이 켜집니다.
아버지께서 기침하십니다.
" 아! 벌써 5시구나! "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시는 아버지.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수도꼭지 물 트는 소리
가만히 소리를 듣자하니
아버지 움직이시는 것이 보입니다.
불이 꺼집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
아버지께서 출근 하셨습니다.
" 이왕 갈 꺼 일찍 가자! "
형광등 하얀 끈을 잡아 당깁니다.
번쩍 번쩍 깜박이던 녀석이 확- 켜지는 사이
머리 속을 가로지르는 현기증
잠을 못자면 의례히
흔들 흔들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바가지 한 바가지 가득
머리꼭지부터 좌르르
쏟아지는 찬 물에 부르르 새벽이 떨립니다.
면도를 합니다.
덕수룩한 털을 쓱- 문지르면
졸음마져 싹둑 잘려 나갑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갑니다.
용미리 납골당에 계시는 어머니.
집을 나서니 5시 40분
지하철도 한산합니다.
작업복에 큰 가방을 멘 아저씨들
새벽을 달리는 아버지들입니다.
책을 꺼냅니다.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등 기대고 눈 감으면
드르렁 코를 골 것 같습니다.
꺼다란 눈 반만 뜨고서
졸린 눈 반만 감고서
한 글자 한 글자 책을 읽습니다.
어느 새 납골당입니다.
8시 10분
굼벵이 하품하듯
천천히 왔는데도 이른 시간입니다.
주차장이 휑 합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햇볕 돋고 새 소리 한적한 길에
또각 또각 구두소리 외롭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 날개치며 반겨줍니다.
어머니 계신 곳 지하 납골실
기계소리만 웅- 한 것이 등골이 오싹합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 귓청에 울립니다.
" 안녕하세요! 엄니!... 어? "
조그만 사진만 덩그러니.
사진을 감싸던 꽃 틀이 없습니다.
두 아들 헤헤 웃던 사진도 없습니다.
접착 걸이도 없습니다.
' 걸이가 떨어져서 관리인이 버렸나 보다 '
붉고 노란 꽃 틀이 가득한 곳
울 엄니만 허전합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 엄니! 많이 허전했겠다. 꽃 금방 다시 사 올께. "
죄송한 마음 덮기라도 하듯
가장 비싼 꽃 틀을 사옵니다.
다시는 빠지지 않는 걸이도 함께.
" 자! 엄니! 가장 비싼 꽃으로다 가장 예쁜 꽃으로다 사 왔어요.
주위 분들에게 자랑하라구... "
어머니 사진 떼어
꽃 들 사이 살포시 올립니다.
예쁜 웃음 지지 않도록.
" 엄니! 새 옷 입으니까 참 예쁘네요. 기분 좋죠? 그렇죠? "
어머니 웃는 얼굴
눈 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 죄송해요. 이제서야 왔어요.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제일 먼저 왔어요.
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엄니 큰 아들이 일등했다구요. "
어머니 안경 너머
웃는 눈이 보입니다.
" 세째는 장사 준비 한데요. 엄니 닮아서 장사는 잘 할 것 같아요.
막내는 유럽여행 갔어요. 우리 식구 중 제일 잘 나가죠?
둘째는 잘 있어요. 엄니 손주가 얼마나 컸는 줄 알아요?
저는.... 엄니 큰 아들은... "
가방을 엽니다.
책 한 권을 꺼냅니다.
" 엄니! 전에 보여 드리지 못해서 가져 왔어요.
작년 10월에 책 나왔거든요. 지지리도 팔리지는 않는 책인데
그래도 여기 보세요. 엄니 아들 이름 맞죠?
엄니 기뻐하시는 모습보고 싶어서 이렇게 들고 왔어요.
봐요! 정말 맞죠? 기쁘시죠? 그렇죠? "
성한 이보다 빠진 이가 더 많았던 어머니
웃어도 입 가리고 웃으시던 어머니
자식 잘 한 모습 보실 때엔
자식 손 마주 잡느라
입 안이 다 보여도 마냥 좋아만 하시던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 작년 여름 휴가 때도 왔었잖아요? 혼자서. 그 때 기억나시죠?
엄니 뵙고 투벅투벅 걸어가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어요.
버스도 없고 갈 길은 멀고 그래서 오는 비 죄다 맞으며 걸었는데...
그런데, 사람없는 길에, 언제가도 한적한 그 길에 우산 쓴 아가씨 나타나는 것이
' 저 아가씨 뒤돌아 우산 좀 씌워주면 좋겠다 ' 했더니 신통방통하게도 그 아가씨 뒤돌아 우산을 씌워 주는 거에요. 놀란 가슴, 고마운 가슴..잘 하던 말도 더듬거려 한참을 바보처럼 걸었어요. 꼬딱지만한 우산에 산만한 녀석이 끼일 때가 없어 겨우 머리만 피하고 옷은 몽땅 젖었는데 그 아가씨 딱했던지 닦으라 휴지 꺼내 주는데.. 난 왜 이리 정신이 없던지... 경황 없어 우물쭈물 하던 차에 그 아가씨 버스타고 붕- 가버리는데, 가고나니 아차 싶더라구요. 그때 그 일... 기억나시죠? 엄니가 며느리 감으로 보내 준 사람이란 걸 버스 간 후 알겠더라구요. 맞죠? 엄니가 그렇게 한거... "
아파트 처럼 빼곡히
층층마다 작은 방 하나씩 쌓인 곳에서
아무도 없는 납골실 안에서
두런 두런 목소리
북치고 장구치는 목소리
한참을 하고나니 절로 웃음이 납니다.
" 울 엄니 참 좋겠다. 아파트 한 번 못 살아보나 했는데 이렇게 층 층 아파트 살고
사람 좋아 사람 많은 곳 좋아하던 울 엄니.. 위, 아래, 좌, 우.. 사람 속에 살고 있으니
좋지요? 행복하지요? "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어머니 얼굴에 눈물이 보입니다.
속상하게도 속상하게도
어머니 웃으며 우는 듯 합니다.
" 울지마요. 내가 눈물 닦아 줄께요. 그리고, 또 올께요.
알죠? 큰 아들 씩씩한 거... 사랑해요. 엄니! "
납골실을 나서는데 한쪽 구석 빨간 통 하나
' 하늘나라 우체국' 빨간 우체통.
" 엄니! 제 목소리 들리죠? 전보에요. 목소리 전보.
살아 생전 해 드린 것 없어 지금 부터라도 열심히 해 드릴테니 실껏 누리세요.
큰 아들 잘 둔 덕에 호강 한 번 해 보자구요. 알았죠? 사랑해요. 엄니! "
다리 아프고 진땀나는 길
뒤 돌아 걸어 나오는 길
어머니, 눈꺼풀에 앉으셨는지
하루종일 눈꺼풀이 무겁기만 합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졸업생 캠프 (0) | 2010.05.05 |
---|---|
죽음에 대한 경험 (0) | 2010.05.05 |
냉면 만들기 (0) | 2010.05.05 |
별 게 다 행복한 날 (0) | 2010.05.05 |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0) | 2010.05.05 |
꿈 (0) | 2010.05.05 |
감기 걸리고 싶어. (0) | 2010.05.05 |
죄없는 마음에도 티끌 앉을까 두렵소. (0) | 2010.05.05 |
묻고 답하기 (0) | 2010.05.05 |
세상 밖으로 4. (0)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