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눈을 떴습니다.
새벽 1시 !
살그머니 눈을 감습니다.
허리까지 빠져나간 잠을 솔솔 잡아 끌며.
다시 눈을 떴습니다.
새벽 4시 30분 !
충분히 잔 것 같은데도 시간은 겨우...
잠은 이미 내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책을 꺼내 줄줄이 읽어봅니다.
혹시나 책갈피에 끼어있는 잠이 있을까 해서.
아버지 기침하는 소리에
그마져 읽던 책마져 접습니다.
" 아직도 안 잤냐 "
" 지금 일어난거에요. "
미련 중에 제일 게으른 미련
잠에 대한 미련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새벽입니다.
집을 나섭니다.
언제나서도 새벽 바람은
가슴을 뿌듯하게 해 줍니다.
피씨방으로 갑니다.
오늘은 선생님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날입니다.
" 어떤 음식이 좋을까?
더운 여름이니까...그렇지... 냉면이 좋겠다 "
자판을 두드립니다.
" 음.. 어떤 냉면으로 할까?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할텐데..."
물냉면, 회냉면, 칡냉면, 열무냉면....
참 많기도 많다.
군침도는 사진도 보고
이것 저것 들여다 보니
그래도 물냉면이 손 쉬울 것 같습니다.
" 물냉면으로 하자 "
메모장을 꺼내 꼼꼼히 적습니다.
준비물이며 만드는 방법까지.
시장으로 갑니다.
동네 시장이라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골목을 돌고돌아
냉면사리 파는 곳을 찾았습니다.
열 명이 먹을 식사거리라
커다란 가방에 가득입니다.
' 배도 썰어 넣으면 시원하겠다 '
" 아줌마! 이 배 얼마에요? "
" 이천 오백원이에요. 그 옆의 것은 삼천원이구"
" 하나에요? "
" 그럼, 하나지 두개유? 요즘 배가 얼마나 비싼데... "
요즘 사람 맞나 하는 눈치로 눈 흘기며 말씀하십니다.
남은 돈은 달랑 3,000원
배를 사려면 적어도 두 개는 사야하는데
돈이 모자릅니다.
" 나중에 올께요. "
돈이 좀 더 있어야합니다.
은행으로 갑니다.
은행도 아직은 굳게 철문이 닫혀 있습니다.
가방도 무겁고 양 손에도 물건이 있어
아무래도 자전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자전거에는 아이들 태우려고 걸어 둔
보조 의자가 있으니까...
다시 집으로 갑니다.
자물쇠를 풀어 자전거를 꺼내고
점심거리를 차곡차곡 쌓습니다.
은행 문이 열리려면
아직도 30분이나 남았습니다.
밀린 빨래도 정리하고
까실거리는 방바닥도 청소합니다.
' 이제 가도 되겠다 '
현금출납기에서 돈을 찾아
다시금 시장으로 갑니다.
" 아줌마! 이 배 두 개만 주세요 "
" 다시 오셨수? "
"아.. 예.. 아까는 돈이 좀 모자라서요 "
배를 가방에 넣습니다.
' 또.. 뭐.. 필요한거 없을까? 아차.. 무우를 안 샀네 '
" 아줌마! 이 무우 얼마에요? "
" 5.000원이에요 "
" 5,000원이요? "
" 요즘 무우값이 많이 올랐어요. "
' 안 되겠다. 무우대신 다른 방법을 써야지. "
순간 야릇한 느낌이 듭니다.
콕콕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을 떠올립니다.
" 그래,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하나 하나 장을 보셨겠지.
하나 하나 사시면서 작은 것 하나에도 고심을 하셨겠지 "
어머니 생각으로 한참을 걷다가
장을 파는 곳을 지납니다.
" 저기.. 할머니.. 냉면 만들려고 하는데요.. 다데기 만들려고 하는데요..."
" 아. .다데기? "
이러쿵 저러쿵 다데기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 그래서.. 이렇게 다데기가 만들어지는거지. "
할머니께서 다데기가 든 유리병을 드시며
흡족한 웃음을 보이십니다.
" 아! 그 다데기 팔기도 하세요 ? "
" 그럼, 말만 잘 하면 거저도 주지. "
" 그럼, 거저 주세요 "
" 그러지 말고 3,000원만 줘요 "
" 아.. 예... "
다데기 한 통을 가방에 넣습니다.
' 다음에는 직접 만들어 봐야지.'
다데기 생각에 육수생각이 납니다.
' 아.. 육수도 만들어야 하는데...
육수는 어머니 방법을 써야겠다 '
살아생전 포장마차를 하셨던 어머니
가지가지 음식을 만드시느라
육수는 시장에서 파는 육수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쓰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 얼추 다 된 것 같다. "
자전거가 무겁습니다.
커다란 녀석 하나 태운 것 처럼.
하지만 가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식사할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 뭘 그렇게 많이 들고 오세요? "
" 오늘 점심은 냉면입니다 ! "
" 며칠 전에도 냉면 먹었는데... "
" 에이. .그래도 오늘 냉면은 다를껄요? "
점심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생전 처음 냉면을 만든다는 불안이 아니라
생전 처음 냉면을 만든다는 기대의 기다림입니다.
오전 11시.
드디어 냉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먼저 오이를 썹니다.
속을 빼고 얇게 얇게...
썰다보니 모양이 영 아닙니다.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보자!
다진 마늘처럼 오이가 다져져 버립니다.
' 이런... '
소금을 넣고 설탕을 넣고 간을 맞춥니다.
' 맛이 이상하다 '
선생님 한 분이 들어 오십니다.
" 선생님! 간이 잘 안 맞아요 "
" 그럴땐 이것 저것 넣어 보세요. 그러면서 간을 맞춰보세요 "
선생님이 직접 간을 맞춰 주십니다.
고추장도 넣고 고주가루도 넣고
식초도 넣고 다진 마늘도 넣고
이리저리 휘저으니 벌건 오이가 군침이 돕니다.
" 아하~ 그렇군. 내일은 직접 해 봐야지. "
" 내일도 식사당번 하시게요? "
" 예, 이럴 줄 알고 내일꺼까지 준비 해 왔어요. "
선생님이 웃으십니다.
벌건 오이처럼 마음이 좋습니다.
냉면사리를 뜯습니다.
열 개나 되는 사리를 뜯는데도 시간이 만만찮습니다.
시켜서 하는 것과 하고 싶어 하는 것의 차이.
한 올 한 올 웃음이 베이는 차이입니다.
" 자! 다 되었습니다. "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손쉽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 뭐야! 이거... 육수도 사 온거고 다데기도 사 온거고
저번에 짜파게티 끓여준 거랑 뭐가 달라? "
선생님 한 분이 딴지를 겁니다.
" 그래도 달라. 저 번에는 그냥 끓이기만 한건데
이번에는 음식 준비하는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뭐! "
다음에는 육수도 만들어야겠습니다.
다데기도 직접 만들어서 가져와야겠습니다.
" 자! 모두들 식사하세요! "
" 이야.. 어? 배도 있네? 그래도 모양은 다 냈네 "
딴지를 걸었던 선생님이 침을 삼키며 건넵니다.
" 분명히 맛있을꺼야. 얼마나 정성이 들어간건데..."
" 음.. 맛있다. 정말 맛있어... "
선생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합니다.
함께 준비하고 함께 식사하는 선생님들.
기분 좋은 식구이며 행복한 가족입니다.
"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냥 했는데, 내일은 계란도 올려줄께요 "
" 계란까지? 오호.. 왜 그러지? 음식 만드는데 재미들렸나? "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이것 저것 집안 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하면서도
유독 음식 만들기만은 꺼려 왔더랬습니다.
음식까지 잘 하게되면
이러다 정말 혼자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습기만 합니다.
' 내친 김에 집에 가서도 냉면을 만들어야겠다 ! '
아마도 아버지랑 함께하는 식탁에도
곧 냉면이 오를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냉면만 먹더라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생전 처음 냉면을 만든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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