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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빈둥이의 하루

눈을 뜹니다.

여지없이 새벽입니다.

휴일에도 변함없는 몸 시계는

건전지 걱정없는 든든한 시계입니다.

오랫만에 텔레비젼 앞에 앉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아침 뉴스입니다. "

세상에 참 별 일도 많습니다.

매일같이 인구 조사만 하는 뉴스는

오늘도 여지없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괴상망측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 놓습니다.

' 왜 어릴 적 학교 선생님들은 뉴스는 꼭 보라고 하셨을까? '

뉴스를 보면 이 세상 믿을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텔레비젼을 끕니다.

빈둥- 빈둥-

새벽부터 몸에서 빈둥이의 냄새가 납니다.

' 새벽에 빈둥거리는 사람도 있나? '

잠 때 묻은 이부자리에 다시 눕습니다.

' 다시 자자! '

다시금 눈을 뜹니다.

아침이 한 낮의 고개마루에 올라선 시간입니다.

허리를 비트니,

끙-

몸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손 뻗어 벽이 닿고

발 뻗어 벽이 닿습니다.

손바닥 쭉 펴고 발도장 쿵 찍으면

척! 척! 척! 척!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기어오를 것만 같습니다.

' 방...참.. 좁다! '

엉거주춤 일어서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 안방으로 갑니다.

' 오늘은 오랫만에 비디오나 실컷 보자! '

책장 가득한 비디오 테이프를 봅니다.

예전엔 책장에 넘쳐 벽마다 쌓아두었던 적도 있었지만

여기 주고 저기 준 덕에 이제는 그나마 백 개 정도...

손 닿는 대로 두, 서너개를 집어 듭니다.

책은 한 번 보면 바로 책장 행인데,

요상하게 영화는 보고 보고 또 봅니다.

하루종일 빈둥거려도 좋은 날은

빈둥이가 즐겨하는 놀이가 하나 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보는 둥 마는 둥 스르르 잠이 들면

영화 속 장면이 꿈이 됩니다.

필경 설 잠을 자는 상태여서

텔레비젼을 통해 전해지는 배우들의 대사들이

꿈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되어

마치 영화가 실제가 된 듯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놀이도 피해야 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공포영화나 외국영화는 꿈을 꾸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공포영화는

하루종일 식은 땀을 흘리도록 만들고,

외국영화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드르륵! 턱!

비디오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눕습니다.

외국 영화입니다.

하지만 굳이 꿈을 위해 영화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덩치고 크고 힘도 세어서

못하는 일도 없고 못 이기는 상대도 없습니다.

똑같은 영화를 자주 보다보면

영화를 처음 볼 때 보지 못하던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 번 스쳐 지나간 후에는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 들이라든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경들이 그것입니다.

' 저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주인공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은 분명 아닌데...

영화는 신기한 최루가루를 뿌려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아무 재미가 없는 인생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다행히 영화는 주인공 한 사람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비록 주인공이 중심이 되기는 하나

중심이 되도록 돕는 그들이 있기에 중심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영화도 없을 것입니다.

영화가 단지 영화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어쨌거나...

빈둥~ 빈둥~ 빈둥이는,

하루종일 영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에게 쓰러지는 엑스트라도 되었다가

주인공이 지나가는 거리의 멋진 집도 되었다가

폼 나게 웃는 주인공을 환하게 비추는 강렬한 태양도 되면서

그렇게 빈둥~ 거리며 하루를 보냈답니다.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은

빈둥이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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