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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죄없는 마음에도 티끌 앉을까 두렵소.


걷습니다.

땅덩어리 뚝 떼어 걸음 옮기듯

무거운 등산화를 옮기며

비오듯 쏟아지는 비지땀 모아

베낭 안에 차곡차곡 담아둡니다.

아서라 앉으면 하늘이 꺼질까

말어라 앉으면 땅에 들러 붙을까

발 길이 놓이는 대로

걸음이 짚히는 대로.

발바닥에 방울방울 물집이 잡히고

손바닥에 흥건히 땀이 고일 때

하늘이 두쪽 나도 쉼없이 갈 수 없을 때

비로소 땀방울 내려 긴 숨 쉬어 봅니다.

" 게..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시오? "

바랑 짊어진 노스님

쉼없는 들숨에 쉼표 하나 찍어 줍니다.

" 저기... 저 산 봉우리까지 갑니다. "

손가락 끝에 걸려 그림자 진 봉우리

봉우리에 걸린 손끝이 숨없이 흔들거립니다.

" 게까지는 뭣하러 가시오? "

" 오르고 싶어서 오릅니다. 내리고 싶을 때 내려올려구요 "

" 허.. 참... 젊은 사람이 혈기 한 번 왕성하다... "

노스님 헛기침에 찬서리가 몰아칩니다.

잘못없는 대답에 뒷 목이 아려옵니다.

" 내... 동행 해 드리리까? "

" 동행이요? 좋지요. "

하릴없던 걸음에 동행이 생겼습니다.

쉼 없던 발 길에 동무가 생겼습니다.

" 어디서 오시는 길이요? "

" 예.. 춘천에서 오는 길입니다. "

" 게가... 집이요? "

" 아닙니다. 집은 더 먼 곳입니다. "

" 멀어 봤자 발 길 닿는 곳이고 가까워 봤자 손 내밀어 닿질 않지요. "

" 아... 예... "

" 죄 없는 마음에도 티끌 앉을까 두렵소? "

" ? "

" 늙으면 작아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오 "

" 아.. 예... "

걸음 쫓던 발 길에 물음이 앉고

흥건히 흐르던 땀 방울이 식어 온 몸이 서늘합니다.

" 예서... 쉬었다 갑시다 "

" 네 "

" 바쁘시오? "

" 아닙니다. "

" 한가하시오? "

" 아.. 네..그런 셈입니다 "

" 그럼, 노래 한 자락 하시오. "

" 노래요? "

" 어디... 아는 노래가 없소? "

" 아니오.. 그게 아니라.. 분위기에 맞는 노래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서... "

" 분위기가 어떠한데 그러시오? "

" 그게...그러니까... "

물음마다 절절하고 대답마다 가슴이 막힙니다.

" 분위기가 어디 따로있나. 만들면 분위기지... "

" 예, 그럼... 하겠습니다. "

헛기침 두어번에 목젖이 떨립니다.

" 길은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 "

" 게.. 무슨 노래요? "

" 예? 아.. 예.. 길이라는 노래인데요. 대학다닐 때 부르던... "

" 그런데, 무슨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목 소리에 힘이 없소? "

" 예?... 아...네... "

" 내... 답으로 노래 한자락 하리다 "

" 예..그러세요..."

손바닥으로 탁 탁 무릎을 치며 박자를 맞춥니다.

"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 숲을 지나... 왜 웃으시오? "

" 스님도 그런 노래 아세요? "

" 그럼, 스님은 이런 노래 하지 말란 법 있소? "

"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스님이 그런 노래를 부르시니까 조금 어색해서요..."

스님이 빙그레 웃으십니다.

" 그래요? 내 보기에는 베낭메고 산 오르는 댁이 더욱 어색하오... "

" ..... "

" 자.. 이제 일어납시다 "

" ... 예... "

땅 바닥이 한치는 높아진듯 합니다.

키가 한치는 작아진듯 합니다.

" 자.. 우리 예서 헤어집시다. 나는 이쪽으로 갑니다. "

" 예..스님.. 고마웠습니다. "

" 고맙긴 나도 마찬가지요. 그럼 살펴 가시오 "

" 예 안녕히 가세요 "

돌아서는 뒷 목이 따끔거립니다.

죄없는 마음에 티끌 앉을까 두려운 마음처럼.

되짚어 내려오는 등반객을 만납니다.

" 안녕하세요 "

" 예.. 안녕하세요.."

짚히는게 있어 묻습니다.

" 저기 여기서 절까지는 얼마나 됩니까? "

" 절이라니요? "

" 이 산에 있는 절 말입니다 "

" 이 산에는 절이 없는데요 "

" 예? 절이 없다구요? 아니.. 방금 전까지 스님 한 분하고 함께 왔었는데요..."

" 절도 없는 산에 왠 스님? 정말 스님 맞아요? "

" 예.. 분명히 스님이셨습니다 "

" 거 참.. 내 이 산에 허구헌날 오르내리지만 스님이 올랐다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

한참을 멍하니 빈하늘만 바라보고 섰습니다.

" 스님도 등산 오셨나 보네요.. 저.. 그럼, 먼저 내려갑니다. "

" 아.. 예.. 안녕히 가세요... "

등산하는 스님이라...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했듯이

오르고 오르다보니 하늘이 코 앞입니다.

콧 등에 앉은 땀이 바람따라 흩날립니다.

' 죄없는 마음에 티끌 앉을까 두렵소? '

구름 한 점없는 파란 하늘 위로

구석 구석 앉은 티끌을 날려 보냅니다.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던 티끌같은 마음

온 몸을 들어 쏟아 버립니다.

" 스님! 동행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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