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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손 들고 벌 서기


하늘은 파란데

땅은 우중충합니다.

한껏 머금었던 눈덩이를 쏟아부은 하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새 털마냥 파란데

두터운 옷을 입은 양 힘겹던 땅덩이는

눈덩이 흙덩이 구분없이 흘려 보내느라

시뻘건 황토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몸 사랑 민재와

만들기 손 한결같은 진우가

자리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딱지가 가득한

비닐봉지를 든 몸 사랑 민재는

봉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휘두릅니다.

이에 질새라 만들기 손 한결같은 진우도

팔을 뒤로 재껴 어깨를 빼며

발길질을 합니다.

툭- 퍽-

두꺼운 겉 옷에

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닐봉지가 터지며 종이 딱지가 쏟아집니다.

순간 몸 사랑 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개밖에 없는 손이 짜증이 나는 듯

허겁지겁 종이딱지를 줍습니다.

이 모양을 본 살아있는 재용이가

몸 사랑 민재 등 뒤에서 놀리는 소리를 합니다.

종이 딱지를 줍다 말고

몸 사랑 민재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사이좋게 재웅이가

목도리를 들고 뛰어갑니다.

펄럭이는 목도리 뒤로

발길질을 해 대며 뛰어 가는

동물사랑 생각깊은 택형이가 있습니다.

발이 나오면 주먹이 들어가고

주먹이 들어가면 발이 나옵니다.

책 사랑 이야기 준형이가

동화 책을 보고 있습니다.

동화 책 주변에 한 두 녀석이 오는가 싶더니

울컥 울컥 준형이 얼굴에 눈물이 맺힙니다.

두 눈을 굳게 감은 준형이는

배에 힘을 주고 우는 듯

교실이 울리도록 빼- 소리를 내며 웁니다.

손은 내 손인데

친구를 괴롭히는데 쓰고

입은 내 입인데

친구를 골리는데 씁니다.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할 수 없듯

한 번의 글로 두 가지 일을 쓸 수 없어

지렁이 몸 뚱아리 마냥 이리 길어지는 글이지만

여기서도 때리고 저기서도 맞고

한 곳에서 골리면 두 곳에서 울고 있습니다.

한 그릇에 담겼던 싸움들이

일제히 교실 바닥에 쏟아진 것 처럼

정신없이 시작되는 아침입니다.

선생님 마음이 불편합니다.

머리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범벅이 됩니다.

굳게 다물었던 입이 열리며

한 가지 생각으로 옮깁니다.

" 손 드세요! "

시끄럽던 교실 문을 꽝 닫은 것 마냥

갑자기 수그러지는 목소리들입니다.

아이들 눈 길이 선생님 얼굴에 닿습니다.

" 손 드세요! "

슬금슬금 손 들이

머리 위로 오릅니다.

어디서 어떻게 훈련이 되었는지

큰 소리로 숫자를 세거나

머리 위로 두 손 들라 하면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는 녀석들입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 손을 왜 들라고 하는지는 조금 후에 얘기 해 줄테니 묻지 말고 기다리세요! "

" 선생님... 저기요... "

" 말하고 싶어도 참으세요. 나중에 들어 줄테니까! "

" ...... "

기어코 벌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머리 속이 다시 어지럽습니다.

' 선생님이 선생님 노릇을 잘 하지 못해 너희들이 잘 싸우지 못하고 서로 골리기만 하고 때리기만 하네요. 너희들이 서로에게 잘못했듯 선생님도 너희들에게 잘못했으니 선생님도 두 손 들고 벌을 서겠어요! '

' 내 몸만큼 소중한 친구 몸을 함부로 하는 녀석들! 친구 몸이 소중한 줄 모르면 내 몸도 소중한지 모르는거에요. 서로 다투는 녀석들도 잘못했지만 다투는 모양을 보고도 못본 척 하는 녀석들도 잘못했어요! '

' 선생님 마음이 너무 아파요! 미워하는 마음이 얼굴에 가득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두 손에 가득하고, 싸우지 않는 녀석들은 관심없는 마음이 얼굴에 가득해요. 그래서 그런 너희들 선생님인 선생님 마음이 너무 아파요! '

정작 입은 닫혀 있지만

입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선생님도 함께 두 팔을 들었다가는

녀석들이 기세등등해질 것 같은 분위기라

함께 들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벌 서고 있는 녀석들 앞에서

기회다 싶어 일장연설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봤자 속 말 다 뱉어낸 선생님 마음만 잠깐 편하지

아이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을 듯 합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은 두 손을 들고 있고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지만

선생님 마음은 돌덩이에 눌린 듯

답답하기만 합니다.

침이 마른 입술이 조금씩 열립니다.

" 몸 사랑 민재는 너희들과 친해졌으면 좋겠데요. 동물사랑 생각깊은 택형이도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데요. 잘 노는 찬이도 친한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데요. 이것이 친구들 마음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해요.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더라도 그 친구 마음은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 거에요. 그 말을 행동으로 잘 옮길 줄 모르는 거에요.... "

힘겹게 침을 삼킵니다.

" 천천히 도원이를 보고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작다고, 까맣다고...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천히 도원이가 흐느끼며 말합니다.

" 친구들이 놀렸어요~ "

" 작은 것이 나쁜 것인가요? 까맣것이 놀릴 것인가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작다고 까맣다고 놀리지 말라는게 아니에요. 친구에게 왕자라고 말하더라도 친구가 그 말을 싫어하면 놀리는 말이 되는 거에요... 친구가 싫다하면 하지 말아야죠.."

큰 창으로 흰 눈 가득한 하얀 벌판이 보입니다.

" 세상은 하얀데 마음은 왜 기쁘지 않을까... 우리가 새 이름을 만들 때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이름인지 생각했던 것 처럼, 멋진 친구를 뽑을 때 다른 생명들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나 생각하는 것처럼.... 오늘부터 소원 들어주기 하자고 한 것도 친구들 마음을 알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너희들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 같아서 선생님 마음이 아파요! 많이 아파요!! "

말을 하고서도

말한 것을 후회하는 순간입니다.

하면 할수록 후회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다시금 입을 다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선생님도 불편하고

아이들도 힘든 시간입니다.

" 손을 내리면 내 팔을 주무르지 말고 옆에 있는 친구 팔을 서로 주물러주세요. 서로 주물러 주면 내 팔을 주무르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좋아질 꺼에요. "

팔을 내리고

친구 팔을 주무릅니다.

옆에 옆에 있는 친구 팔을 주무르며

속닥 속닥 귓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 오늘부터 소원 들어주기를 다시 할 거에요. 선생님이 왜 하자고 하는지, 너희들이 왜 하는지 잊지 마세요. 하루에 두 명씩! 오늘은.... 천천히 도원이와 몸 사랑 민재! "

천천히 도원이와 몸 사랑 민재가 앞으로 나옵니다.

" 소원이 무엇이에요? 어떤 소원이든지 다 괜찮아요. 선생님하고 친구들이 꼭 들어줄 꺼에요 그렇죠?"

" 네~ "

몸 사랑 민재가 말합니다.

" 눈 썰매장 만들고 싶어요! "

천천히 도원이가 말합니다.

" 스키장 만들고 싶어요! "

" 알았어요! "

아이들을 보고 묻습니다.

" 어때요?..도원이와 민재 소원...들어줄 수 있겠어요? "

" 네! "

" 네~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에요...그럼..우리.. 눈 썰매장..스키 장.. 만들러 나갈까요? "

" 네!!! "

흰 눈이 내렸습니다.

옥길동 언덕이 하얗고

울퉁불퉁 밭들이 하얗습니다.

흰 색을 보면 왠지 마음이 밝아지고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 겨울 내내

하얀 눈이 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하얀 마음이

고드름 마냥 꽁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흰 눈 위에서

산 토끼마냥 뛰어 노는 녀석들과 함께

엉덩이 오줌싼 듯 젖는 줄도 모르게 놀았지만

그래도....선생님 마음은

온종일...미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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