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들 축구 수업을 마치고
학부모 상담을 마지막 일정으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습니다.
뱃속이 출출합니다.
혼자 먹기 어색하여
언제나 두 사람 분 식사를 시키다 보니
식성도 두 사람 분만큼 커졌습니다.
젓가락도 없이 허겁지겁 먹다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봅니다.
깨비 깨비 마을의 우걱 우걱 괴물 같습니다.
전화가 옵니다.
눈 오는데 뭐 하냐는
선생님들 전화입니다.
창 밖을 봅니다.
" 눈 안 오는데? "
서울에는 눈이 온다고 합니다.
아마 이곳 광명에도 곧 눈이 오겠지요.
궁상맞게 혼자 밥 먹고 있지 말고
나오라는 선생님들 호출입니다.
툭툭 털고 일어섭니다.
밖으로 나섭니다.
아~
눈이 옵니다.
하얀 눈발이 날립니다.
며칠 전에도 눈은 내렸더랬습니다.
아이들과 청소를 하다말고
눈 온다고 강아지 마냥 폴짝 폴짝
빗자루 들고 베란다로 나서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던 하늘 심술에
좋다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미안했던 모양인지
오늘은 시작부터 ' 펑펑 '입니다.
눈 내리는 하늘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장난꾸러기 혀 놀림 같습니다.
손가락이 간질 합니다.
핸드폰을 꺼내 꾹 꾹 누릅니다.
선생님들에게 눈 소식을 알립니다.
' 눈 온다. 흰 눈! 하늘에서! 안 그래도 하얀 마음 더 하얗게 되겠당^^ 행복한 주말 되셔용 '
울 반 아이들 엄마들에게도
눈 소식을 전합니다.
' 펑펑 흰 눈이 내립니다. 수업 시간이 아닌 것이 원통하네요. 아이들 손 붙잡고 흰 눈 한 번 맞아 보셔요^^ '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 눈 온다! 눈 맞고 눈사람처럼 하얀 사람되자!! '
버스를 탑니다.
눈 소식에 어수선합니다.
내릴 손님은 문 열어달라 소리치고.
기사 아저씨는 손님에게 돈 더 내라 소리칩니다.
창가에 매달린 사람들은 눈 구경에 정신이 없습니다.
' 편지 왔어요~! '
울 반 엄마들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식구들 모두 야~호!! 눈 맞으러 나갑니다. 선생님도 하얀 눈 펑펑 맞으며 행복한 밤 보내세요^^ '
' 이미 맞고 있답니다. 외로우시죠? '
픽~ 웃음이 납니다.
' 네 지금에야 알고 옷 입고 나가려 합니다. 너무 추워요. 옷 단디 입고 눈 맞으세요^^ '
' 넹 감솨~ '
' 외할머님 생신이라서 외숙모네 왔어요. 찬 바람 몰아치는 밤에 눈발이 흩날리니 기분이 참 좋네요. 편안한 밤 되셔요 '
동생에게서도 문자가 옵니다.
' 역시 오빠답다. 감기 조심하구 난 지금 감기 땜에 고생 억수루하고 있거덩. 힘들다. '
동생에게 오빠의 힘을 빌려 줍니다.
" 힘내라. 아자 아자 파이팅! '
몇 년 전 함께 했던
그리운 선생님들에게서도 소식이 옵니다.
' ᄏ ᄏ 2005년 첫 눈 인가여. 하얀 마음 깨끗한 마음 기쁜 주말 되셔요♥ '
'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괜시리 기분 좋아 신이 난 하루... 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뱃속이 든든하고
호주머니가 두둑한 느낌입니다.
바로 곁에 사람은 없어도
마음가는 곳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손에 손에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눈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날입니다.
전화가 옵니다.
울 반 녀석입니다.
친절한 효민이.
헉헉대며 전화하는 모양이
열심히 눈을 뭉치는 중인가 봅니다.
녀석 숨 넘어가는 소리에
선생님도 숨이 가쁩니다.
눈이 와서 좋은 것보다
눈으로 인해
이렇듯 서로 마음 전함이
더욱 좋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점점 겨울이 되고 있습니다.